예수님은 하나님의 어린양이시며, 우리의 죄를 대신 지신 희생양이시다. 구약에서 제물로 바치던 양의 이미지와 신약에서 목자이시며 하나님의 보좌에 앉으신 어린양의 이미지를 함께 보여주는 이 그림은 우리에게 너무나 강렬한 감동을 주며 우리를 묵상으로 인도한다.
예로부터 화가들은 어린 양과 예수님을 요한의 선언(“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요1:29)이나 양을 지키는 선한 목자(“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요10:11)로 많이 그리는데 프란치스코 데 수르바란은 하나님의 어린양(“모세가 이스라엘 모든 장로를 불러서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나가서 너희의 가족대로 어린 양을 택하여 유월절 양으로 잡고”·출 12:21~23)이신 그리스도가 인류의 죄를 대신 짊어지신 희생 자체를 어린 양 한 마리로 표현했다. 제단에서 곧 도살될 양 한 마리로 예수 그리스도를 그린 것이다.
꼼짝 못하게 묶인 어린 양은 이제 죽어 피를 흘릴 처지이고, 모든 것을 체념하고 완전히 무력한 상태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 참담한 순간에 오히려 평온한 눈과 표정을 하고 있어 더 충격적이고 극적이다. 제단과 양 이외에는 아무 소품도 장식도 없다. 배경의 검은색과 대비되는 양의 흰색은 더욱 깨끗하게 그리스도의 무죄함을 전해준다. 흠 없고 점 없는 예수님이 보배로운 피(“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이니라”·벧전 1:19)를 쏟음은 마땅히 형벌 받을 우리의 허물 때문이다.(사 53:8)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도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 잠잠한 양같이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그는 곤욕과 심문을 당하고 끌려갔으나 그 세대 중에 누가 생각하기를 그가 살아있는 자들의 땅에서 끊어짐은 마땅히 형벌 받을 내 백성의 허물 때문이라 하였으리요.”(이사야 53:4~8)
#프란치스코 데 수르바란(1598~1664)
스페인 출신. 강한 명암 대비는 경건한 신앙과 종교적인 열망을 잘 나타낸다. 영적 서정성과 고요함으로 수도사들의 묵상을 돕는 그림을 많이 남겨 ‘수도사의 화가’란 별명을 얻었다. 그의 또 다른 대표작은 ‘십자가를 맨 예수’(1653, 프랑스 오를레앙 성당),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 앞의 화가 성 누가’(1635~40, 스페인 마드리드 프라도 미술관)가 있다.
‘레몬, 오렌지, 장미가 있는 정물’(1633, 미국 캘리포니아 패서디나 노턴 시몬 미술관)에서 볼 수 있듯이 그의 정물화는 절제된 구성으로 신비로운 기도와 명상을 이끌어내는 힘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