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 포커스] 참고 문헌 찾고 서울의대 입학?…논문 자녀 끼워넣기 뿌리뽑을 수 있나

입력 2018-01-26 00:43 수정 2018-01-26 04:30


교수 자녀란 이유로 유명 학회지 논문에 이름을 올리고 이를 입시에도 활용해 좋은 대학에 진학하는 ‘반칙’은 국민일보 연속보도(2017년 12월 5일자 1면 등)를 통해 처음 알려져 공분을 일으켰다.

교육부는 ‘교수 논문 미성년 자녀 공저자 등록 실태조사’ 결과를 25일 발표했다. 29개 대학에서 82건이 나왔다. 논문 게재 당시 자녀들은 대부분 고 2, 3학년이었다. 전체 82건 가운데 고3이 48건, 고2는 24건으로 대입 수험생이 87.8%를 차지했다. 순수한 학문 연구로 자녀를 참여시켰다기보다 대입 스펙 쌓기용 꼼수라고 교육부가 의심하는 이유다. 성균관대가 8건으로 가장 많았고 연세대 7건, 서울대와 국민대 각 6건, 경북대 5건 순이었다. 분야별로는 이공계가 80건으로 압도적으로 많았고 인문사회계가 2건이었다.

교육부 조사는 아직 초기 단계다. 신고하지 않은 사례는 없는지, 자녀가 실제 논문 작성에 기여했는지, 대학입시에 이를 활용했는지까지 확인하려면 ‘산 넘어 산’이다.

낯 뜨거운 사례들

국민일보가 취재한 교수 18명 중 대다수는 자녀에게 참고문헌 검색이나 실험기구 세척, 영어 번역 등 단순작업을 시킨 뒤 논문에 자녀의 이름을 올리는 방식을 썼다.

2009~2010년 당시 성균관대 의대에 재직 중이던 A교수는 두 차례에 걸쳐 고등학생 아들을 자신의 논문에 저자로 기재했다. 의대 진학을 희망하던 아들은 이런 연구 실적을 생활기록부에 적었고, 수시 전형을 통해 서울대 의대에 입학했다. A교수는 “아들이 방학 동안 주 3회 병원에 나와서 참고문헌을 찾아오고 초록을 번역하는 작업을 맡았다”며 “기여를 아예 하지 않은 건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서울여대 화학과 B교수는 아예 자신의 연구실에 있는 대학원생에게 고등학생 딸을 지도해 달라고 맡겼다. 여름방학 동안 딸이 연구실로 출근하면 대학원생이 연구 내용을 설명하고 실험을 보조하도록 하는 방식이었다. 딸은 해당 대학원생이 제1저자로 작성한 과학논문인용색인(SCI)급 논문에 공저자로 이름을 올렸다. B교수는 “딸이 독자적으로 뭔가를 했다고 보긴 어렵다”면서도 “부당한 과정을 거치진 않았다”고 주장했다.

교육부 조사, 입학 취소까지 갈까

부정한 논문 실적을 대입에 활용한 학생들의 입학 취소가 가능하려면 연구윤리 위반 여부부터 입증해야 한다. 교육부 훈령인 연구윤리 확보를 위한 지침을 보면 ‘연구 내용 또는 결과에 대한 공헌 또는 기여가 없음에도 저자 자격을 부여하는 경우’는 부당한 저자 표시로 보고 연구 부정행위로 규정한다. 교육부가 확인한 82건의 대부분은 “제 자녀는 논문에 이름을 올릴 정도로 연구에 도움을 줬다”고 주장하는 교수들의 방패를 뚫어야 한다.

연구 부정행위로 확인되더라도 대입에 어떻게 활용됐는지는 별개 문제다. 문제의 논문들은 주로 학생부종합전형(학종)이나 특기자 전형에서 활용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교육부는 2014학년도부터 논문 실적을 학생부에 기재하지 못하도록 막았기 때문에 학종에선 큰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자기소개서나 교사추천서 등을 통해 간접 활용됐을 가능성까지 배제하기 어렵다는 게 입시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2014학년도 이전에는 학생부에 버젓이 쓰였으므로 문제의 논문들이 대입 실적으로 광범위하게 활용됐을 가능성이 높다.

특기자전형의 경우 뽑는 인원이 적긴 하지만 논문 실적을 대놓고 요구하는 곳도 있기 때문에 부정한 논문이 대학에 진학하는 통로로 활용됐을 가능성이 있다. 문제는 학생부종합전형이나 특기자전형이 정성평가를 기반으로 학생을 뽑는다는 점이다. 평가자의 주관을 점수화해 당락을 가르는 시스템이다. 논문이 당락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는 확인하기 쉽지 않다.

교육계의 한 관계자는 “문재인 대통령은 ‘기회는 평등할 것입니다. 과정은 공정할 것입니다. 결과는 정의로울 것입니다’라고 약속했다”면서 “어려움이 있더라도 교육부는 입시 공정성을 근본부터 흔드는 이런 반칙을 발본색원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수시 노린 부도덕 꼼수” 전문가들 한목소리

이인재 서울교대 윤리교육과 교수는 “해외에서는 교신저자로 하여금 공동저자가 어느 정도까지 (논문에) 참여했는지, 자격을 충분히 갖췄는지를 충분히 확인하고 올리도록 하고 있다”며 제도적 미비점을 지적했다. 논문 공저자로 등록된 사람이 미성년자라는 점보다 실제 기여 여부를 확인하는 게 더 중요하다는 의미다. 엄창섭 고려대 연구진실성위원회 위원장도 “이런 문제들을 제기해 연구윤리에 대한 인식을 바꾸고 학생 연구를 장려할 수 있는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

입시 전문가들은 교육부가 연구부정이 실제 입시 부정으로 이어졌을 가능성까지 염두에 두고 엄정하게 조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논문의 연구부정 검증 결과는 아직 나오지 않았지만 수시전형 확대에 맞춰 등장한 꼼수일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 많다.

임성호 종로학원하늘교육 대표는 “논문의 경우 학생부 등에 기록할 순 없지만 자기소개서에는 얼마든지 넣을 수 있다”며 “공론화가 되지 않았을 뿐 변칙·기형적인 사례들이 얼마든지 벌어질 수 있다”고 꼬집었다. 이만기 유웨이중앙교육 평가연구소장도 “(미성년 자녀를)논문 공저자로 끼워 넣은 건 대학입시에 활용하기 위해서일 가능성이 높다”며 “해당 학생이 국내외 대학입시에 쓸 게 아니라면 논문 공저자로 참여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미성년 저자의 경우 소속기관과 학년을 표기하도록 하겠다는 교육부 방침의 실효성 여부에 대해선 의견이 갈렸다. 이 소장은 “이렇게 방침을 세우면 아무래도 (교수나 미성년 자녀들이) 주저하게 되고, 대학도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내다봤다. 반면 이 교수는 “(이번 방침은) 일정 부분 필요한 조치”라면서도 “저자로서의 실질적인 자격이 있음을 확인하는 게 더 중요한데 이게 미성년자 표기만으로 구분되는 건 아니다”고 말했다. 학문 분야마다 연구윤리 기준이 다를 수 있다는 게 이 교수 생각이다. 그는 “‘연구자로서 실질적으로 기여한 사람만 기재한다’는 등 일반적 규정을 두고 나머지는 각 학술단체에서 자율적으로 정하는 것이 더 합리적인 방법일 수 있다”고 말했다.

이번 기회에 수시 전형에 동원되는 갖가지 꼼수를 막는 방법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었다. 임 대표는 “수시의 학생부종합전형에서 자기소개서에 쓰는 내용, 선생님의 코멘트 등을 모두 통제하긴 어려운 만큼 근본적으로 (수시 전형의 공정성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도경 이재연 임주언 이택현 기자 yid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