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아침 서울의 기온은 영하 16도까지 내려갔다. 찬바람까지 강하게 불어 체감온도는 영하 21도였다. 2년 만에 한파경보가 내려진 상태다. 한반도 중부는 꽁꽁 얼어붙었다.
그런데, 서울만 춥다. 위도가 비슷한 일본 도쿄와 중국 베이징의 기온은 사뭇 달랐다. 도쿄는 영하 1도에 머물렀고 베이징도 영하 8도까지 내려가는 데 그쳤다. 서울보다 훨씬 북쪽에 있는 러시아 모스크바도 아침 최저기온이 영하 12도였다.
이날 네 나라의 낮 최고기온도 같은 추이를 보일 것으로 예상됐다. 서울은 한낮에도 영하 8도의 강추위가 계속되지만 도쿄는 영상 6도, 베이징은 영하 4도, 모스크바는 영하 6도까지 기온이 올라간다.
요즘 날씨는 주변국과 비교해 한국이 제일 춥다. 기상청은 일요일인 28일까지 한파가 계속될 것으로 내다봤다. 다음 주 후반에나 평년기온을 회복할 전망이다. 유독 한반도만 혹독하게 추운, 이런 상황은 왜 벌어진 것일까.
◇ 서울 상공 5㎞에 저기압… 시베리아 찬 공기 끌어내려
한반도를 휘감고 있는 찬 공기는 북극에서 내려왔다. 북극 한기가 제트기류의 약화로 남하하고 있는데, 공기가 지나는 길이 한반도를 향해 뚫렸다. 기상청은 서쪽인 러시아 우랄산맥의 거대한 고기압과 동쪽인 캄차카반도의 대형 고기압, 그리고 한반도 중부 상공 5㎞에 자리 잡은 저기압이 북극에서 한반도로 이어지는 ‘공기 통로’를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기상청 관계자는 “서울 등 한반도 중부 5㎞ 상공에 저기압이 자리 잡고 있다. 이 저기압이 북쪽 찬 공기를 계속 끌어내리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북극진동 지수는 음수(-)로 바뀐 상태다. 북극과 중위도 지방의 기압 차이가 줄어들면서 북극 주변을 도는 제트기류가 약해져 북극 한기가 남쪽으로 밀려 내려오는 중이다.
이 찬 공기는 시베리아에 중심을 두고 있다. 시베리아의 야쿠츠크는 요즘 아침 최저기온이 영하 40도 안팎까지 떨어진다. 몽골 울란바토르도 영하 30도를 밑돌고 있다. 시베리아까지 내려온 북극 한기는 좌우로 퍼져 나가지 못하는 형편이 됐다. 서쪽으로는 우랄산맥 상공의 큰 고기압이 가로막고 있고, 동쪽은 캄차카반도 상공의 거대 고기압에 막혔다.
두 고기압 사이로 형성된 좁은 ‘이동로’를 따라 남쪽으로 내려오게 됐는데, 한반도 상공의 저기압이 이 한기를 서울 등 중부지방을 향해 끌어당기는 중이란 것이다. 서울 상공의 저기압은 현재 영하 30도를 밑도는 찬 공기 덩어리를 동반하고 있다.
◇ 미세먼지 벗어나니 최악 한파, 날 풀리면 다시 미세먼지… 겨울이 괴로운 배달원·미화원
기상청은 “주말과 휴일까지는 아침 최저기온이 영하 10도 안팎까지 내려가는 혹한이 이어지고, 이후 기온이 점차 누그러지지만 다음 주 후반은 돼야 평년기온을 회복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체감온도를 더욱 떨어뜨리는 것은 강한 바람이다. 중부지방의 25일 아침 체감온도는 파주 -22도, 남양주 -23도, 포천 -25도, 수원 -22도, 여주 -23도 등이었다.
기상청은 이 같은 체감온도를 관심·주의·경고·위험 중 가장 높은 단계인 ‘위험'으로 분류한다. 장시간 야외활동을 하면 저체온증과 동상 위험이 있다고 경고했다. 이런 상황에서 불가피하게 야외활동을 해야 하는 이들은 난감한 상황이다.
24일 오전 6시 차갑게 얼어붙은 서울 동대문구 정릉천변 도로에는 살을 에는 칼바람이 가득했다. 추위에 진저리를 치며 종종걸음 하던 행인들은 곳곳의 빙판 앞에서 속도를 늦췄다. 곳곳에 쌓여있는 쓰레기봉투를 부지런히 옮기는 이가 있었다. 동대문구 소속 공무관(옛 환경미화원) 조동욱(43)씨였다. 조씨의 방한마스크는 입김 때문에 얼어 붙어 있었다.
그는 “오늘 같은 날은 손가락 끝까지 얼어 구부러지지가 않는다”고 말했다. 발열내의와 발열조끼, 겨울용 작업복으로 무장하고 정릉천과 경동시장 일대를 청소하는 조씨는 추위 속에서도 일을 멈출 수 없다. 오히려 “쉴 새 없이 움직여야 그나마 몸이 온기를 느낀”며 바쁘게 걸음을 옮겼다.
구청은 공무관에게 보온 장비를 보급하고 휴식시간을 늘리는 대책을 마련했지만 체감온도가 영하 20도 밑으로 내려가면 모든 게 속수무책이다. 한 달 경력의 새내기 공무관 한성(38)씨는 아직 추위가 몸에 익지 않았다. 한씨는 동료들과 함께 오전 8시까지 안암역 인근에서 경동시장에 이르는 지역을 깨끗이 청소한다. 추위 때문에 손발이 더 빨라졌다. 한씨는 “몸은 굳어있는데 서둘러 움직이다보면 근육통이 더 온다”고 했다.
30년 경력 공무관 이종호(58)씨도 겨울이 힘든 것은 마찬가지다. 날씨가 조금 풀리는가 싶으면 어김없이 미세먼지가 몰려온다. 공무관들은 추위와 미세먼지가 번갈아 찾아온다며 ‘삼한사미’(三寒四微)라고 부른다. 이씨는 “매연이 먼지랑 뒤섞인 채 도로에 쌓여있어 호흡기와 폐가 안 좋다”며 “최악의 미세먼지까지 와서 가래와 감기를 달고 산다”고 했다.
배달업체 직원들도 올 겨울이 특히 힘들다고 입을 모았다. 한 배달대행업체 강남지점장 박경원(32)씨는 “방한복과 속바지로 중무장해야 배달 오토바이를 탈 수 있다”며 “배달이 밀리면 두꺼운 옷을 입은 채 고층 건물을 오르내리다 땀을 흘려 감기에 걸리기도 한다”고 말했다.
한파가 기승을 부리면 감정노동 강도도 심해진다. 배달원 A씨는 15분만에 짬뽕을 배달했다가 항의를 받았다. 평소보다 늦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맹추위 때문에 국물이 식어버렸다. 곧장 환불 요청이 돌아왔다. A씨는 “이런 날씨엔 아무리 빨리 달려도 음식을 따뜻하게 배달하기 어렵지만 고객 항의는 묵묵히 듣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오토바이를 서둘러 몰다가 곳곳에 낀 얼음을 만나면 아찔하기까지 하다. 미세먼지는 이제 기본이다. 박씨는 “기사 분들이 마스크를 2~3개씩 쓰고 다녀도 호흡기 질환을 달고 산다”고 말했다.
추위가 지나가도 겨울나기는 쉽지 않다. 다음주에는 중국 동남부에 있는 온난기단이 밀려오는데, 여기에는 중국발 미세먼지 가득하다. 국립환경연구원 관계자는 “기압 등의 영향으로 한파와 미세먼지가 3~4일 주기로 교체되는 삼한사미 현상이 계속될 수 있다”고 말했다.
태원준 기자 wjt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