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현 “마지막 세트 흔들린 이유? 세리머니 생각했다” 웃음

입력 2018-01-24 15:54 수정 2018-01-24 17:27
AP뉴시스

정현(58위·한국체대)이 한국 테니스의 역사를 새로 썼다. 24일 호주 멜버른의 로드 레이버 아레나에서 열린 2018 호주오픈 남자 단식 8강전에서 테니스 샌드그렌(97위·미국)을 세트 스코어 3-0으로 완파했다. 이로써 정현은 한국 테니스 역사상 처음으로 그랜드슬램 4강 진출이라는 진기록을 세웠다.

샌드그렌은 정현이 지금까지 만났던 알렉산더 즈베레프(4위‧독일)와 노박 조코비치(14위·세르비아)보다 상대적으로 하위 랭커였다. 정현은 2세트를 연달아 이기고 3세트 초반부터 게임을 리드했다. 게임 스코어 5-3에서 40-0으로 매치포인트를 잡았지만, 집중력이 흔들린 듯 듀스를 허용했다. 다시 침착하게 경기에 임한 정현은 치열한 랠리 끝에 6-3으로 승리했다.

경기 후 코트 인터뷰는 여유롭고 유쾌했다. 정현은 마지막 세트 상황에 대해 “40-0이 됐을 때 무슨 세리머니를 할까 생각했다”며 웃었다. 솔직한 정현의 대답에 관중석에서도 웃음이 터져나왔다. 정현은 “듀스에 이어 브레이크 포인트까지 몰렸다. 경기에 집중하느라 결국 아무런 세리머니를 못했다”고 털어놨다.

‘오늘 경기를 위해 특별히 준비한 것이 있느냐’는 질문에 그는 “오후 1시 경기가 처음이었기 때문에 단지 경기에 집중하려고 노력했다”고 말했다. 이어 관중석에 앉은 코치와 가족 등을 일일이 호명해 감사 인사를 전했다.

정현의 다음 상대는 8강전을 치르는 로저 페더러(2위·스위스)와 토마시 베르디흐(20위·체코) 중 한 명이다. 정현은 4강 상대로 누구를 만나고 싶은지 묻자 잠시 고민한 후 “모르겠다. 50대 50. 누구든 상관없다”고 답했다.


정현은 이날 카메라 렌즈에 ‘충 온 파이어’라는 메시지를 남겼다. ‘충’은 정현의 성씨를 뜻한다. 외국인들이 ‘정’(Chung)을 ‘충’으로 발음하기 때문에 정현은 자신을 ‘미스터 충’이라고 부른다. ‘불붙었다’는 의미의 ‘온 파이어(on fire)’는 스스로에 대한 응원과 자신감으로 읽힌다.

이날 승리로 정현은 22일 발표 예정인 남자프로테니스(ATP) 세계 랭킹 30위 안에 진입하게 됐다. 기존 한국인 역대 최고 순위는 이형택(42)이 보유한 36위다.

다음은 코트 인터뷰 전문.

Q. 3세트 마지막 게임에서 40-0 매치포인트 때부터 극적인 플레이가 터져 나왔다. 그 순간에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나.

40-0로 리드했을 때부터 경기 끝나고 어떤 세레모니를 할까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듀스까지 가고 브레이크 포인트까지 몰리자 세리머니 생각은 잊고 경기에 집중했다. 결국 아무 세리머니도 하지 못했다.


Q. 그 게임에서 상대와 슬라이스 백핸드 13개를 연속으로 주고받는 장면은 마치 연습을 하는 것 같았다

브레이크 포인트 위기에 몰렸기 때문에, 일단 공을 넘기고 뛰는 것 밖에는 할 수 없었다.


Q. 4번 시드 즈베레프를 꺾은 뒤에 조코비치까지 이긴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런 경험으로 인해 오늘 경기는 평소와 다른 마음가짐으로 임했나.

늘은 이번 대회 처음으로 낮 1시 경기였기 때문에 집중력을 잃지 않으려 했다.


Q. 네빌 고드윈 코치와 함께 태국에서 동계훈련을 했는데, 고드윈 코치가 이번 대회 성공에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했나.

그는 나에게 항상 코트 안팎에서 즐기는 법을 알려주었다. 훌륭한 팀과 함께할 수 있어서 행복하다.


(짐 쿠리어가 플레이어 박스에 있는 팀을 소개해달라고 하자 정현이 코치, 에이전트, 가족들을 한 명씩 소개)

Q. 베르디흐와는 경기해본 적이 있고, 페더러와는 대결한 적이 없다. 당신의 첫 번째 그랜드슬램 준결승전 상대를 골라본다면

(곤란한 표정을 지으며) 50대 50이다. 누가 이기고 올라오던지 상관없다(웃음).


Q. 16강전 때와 마찬가지로 한국 팬들에게 한국어로 감사의 메시지를 전해달라

이곳에서 응원해주신 한국 팬들, 지금 한국에서 응원해주신 팀 스태프, 친구들과 팬 여러분께 정말 감사드린다. 아직 대회가 안 끝났으니 계속 응원해 주셨으면 한다. 금요일날 뵐게요.

박상은 기자 pse0212@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