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사는 첫 손님과 마지막 손님에게 특히 정성을 다해야 돼,
그 원칙을 못 지키면 장사는 망하는 거야!”
“나름대로 신기술을 개발하면서 손님 개개인에 맞춤서비스를 하다 보니 꾸준히 단골 고객이 늘더라구!”
서둘러 마감을 하고 한 달 만에 다시 찾아 이용의자에 앉은 기자에게 이발소 주인 이남열(69)씨는 다양한 이야기보따리를 풀어 놓는다. 꼭 한 달 전 취재차 서울에서 가장 오래되었다는 이곳 만리동 ‘성우이용원’을 찾았다가 장인의 현란한 가위질 솜씨와 이발 후 흡족해하는 손님들을 보면서 내 머리도 자연스럽게 이 씨와 인연을 맺었다.
2018년 1월 22일 오후, 일기예보대로 강추위를 앞두고 눈발이 오락가락했지만 금방이라도 떨어져 나갈 듯 한 이발소 문을 조심스럽게 열고 들어서자 시간이 박제된 것 같은 4평의 공간이 한 눈에 들어온다. 성우이용원이 개업했을 당시인 1920년도 후반 이발소 모습을 그대로 재현하고 있었다.
조발(調髮)이라고 쓰인 낮설은 요금표, 50대 후반의 기자도 기억이 날 듯 말 듯한 바론상사의 이발의자는 곳곳이 터지고 헤져 테이프로 감싸여 있었다. 이발소 안을 따뜻하게 덥혀주는 구식 연탄난로와 솔을 비벼 거품을 낸 자국이 선명한 양철물통, 나무 칠이 벗겨진 격자 유리창 아래 50년은 족히 넘었을 타일이 박힌 세면대와 세월의 때가 덕지덕지한 파란색 물조리개, 낡은 선풍기까지 과거 어느 시점으로 시간은 멈춰서 있었다. 거기에다 이곳을 찾은 손님들을 한 번 더 놀라게 하는 것은 장인이 사용하는 이발도구들이다. 이 씨가 가장 애지중지하는 것은 140년 된 독일제 쌍둥이표 면도칼과 가위다. 면도칼은 나이가 들어 이발을 그만두게 된 일본인 이발사한테 1966년에 1,200원을 주고 구입했다. 이 면도칼은 이 씨가 마음이 차분한 날, 70년 된 최상품 미국제 말가죽에다 정성껏 손질한다. 또 다른 애장품인 가위는 이 씨가 젊은 시절 일주일 동안 한 푼 안 쓰고 모은 돈 700원을 주고 구입했다. 요즘 가위들은 몇 년 쓰면 날이 무뎌지지만 이 명품 가위는 숫돌에 손질만 잘 하면 자신이 죽을 때까지 써도 전혀 문제가 없단다.
그 외 잘 사용하지는 않지만 바리깡은 50여 년, 심지어 드라이어는 언제 구입했는지 기억 조차 가물가물하다.
성우이용원의 창업자는 일제강점기 때 조선 사람 가운데 두 번째 이발면허증을 딴 서재덕씨로 이 씨의 외할아버지다. 이 씨의 아버지인 이성순 씨도 일본인에게 이발 기술을 배운 후 국립극장에서 일을 하다 서 씨의 눈에 들어 사위가 되고 1935년 이발소를 물려받았다. 5남 2녀 중 꼼꼼하고 손재간이 좋아 아버지 눈에든 다섯째 이남열씨는 중학교 1학년(14살)인 1962년부터 아버지에게 바닥 청소를 하며 이발 기술을 배웠다. 1970년 이용사 면허증을 취득하고 벌써 56년 경력의 이발사가 된 이 씨는 자신만의 기술을 터득하는데 30년이 넘게 걸렸다고 한다. 한번 머리를 손질하는데 5∼6종의 가위를 사용하는 장인은 보통 이발소보다 2배 이상 시간을 소요해 정성껏 머리를 깎고 다듬는다.
“자랑 같지만 여기는 일부러 지방에서 올라오는 손님은 물론 그룹회장님도 단골 고객이 많아요, 내가 시키는 대로 머리를 숙이라면 숙이고 들라면 들고 이발사 마음이지! 내 기술은 동양에서는 아무도 따라오지 못해! 우리 이용기술은 일본에게 배운 건데 나는 거기에 한국적 기술을 접목해 누구도 흉내 낼 수 없거든! 내 실력을 인정해 일본에서도 나를 비싼 값에 모셔갈려구 하고 모기업에서는 교수로 초빙해서 내 기술을 통째로 전수받고 싶어 하지!” 이 씨는 최고 이발사라는 긍지와 자부심이 대단해 보였다.
이발 중간에 이 씨는 갈라진 손끝에 동여맨 테이프가 느슨해지자 새 테이프로 다시 한 번 단단히 동여맸다. 맨손으로 머리를 감기고 이발을 하다보면 아무리 약을 바르고 로션을 듬뿍 발라도 비누 독이 올라 손끝이 갈라지는 것은 막을 수가 없다. 시간 나는 대로 손가락에 박힌 머리카락도 바늘로 후벼 파낸다. 어쩔 수 없는 직업병이다. 그렇다고 손을 보호하기 위해 고무장갑을 낀 적은 없단다. 하루 일과가 끝나는 저녁 시간 아내 이욕연(60)씨가 이발소 문을 열고 들어서자 이용기술 일인자이자 재담도 일등인 장인이 아내를 위해 슬쩍 립서비스를 던진다. “아내는 누가 뭐래도 남자와 나이 차이가 좀 있어야 해! 그래야 젊은 기운도 받고 아직 입맛이 살아있는 아내가 맛있는 것도 많이 해 주거든!” 못들은 척 하지만 싫지 않은 아내 눈치다.
마지막 손님이었던 기자도 떠나고 땅거미가 내려앉은 이발소에는 이 씨의 아내가 하루 종일 쌓인 수건들을 빨아 널면서 빗자루를 손에든 남편과 마주보며 소박한 웃음을 짓고 있었다.
곽경근 선임기자 kkkwa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