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분의 아이들 세상] 스마트폰에 빠지는 아이들

입력 2018-01-23 11:04
이호분 연세누리정신과 원장

아이들이 왜 그렇게 스마트폰에 집착할까? 요즘 부모들에게 스마트폰은 계륵과 같다. 사주지 않을 수도 없고 사주면 골칫거리를 스스로 키웠다는 자책을 갖는다. 아이들에게 스마트폰 속 세상은 몹시 매력적이다. 자극적인 재미를 주는 게임도 있고 커뮤니티에 들어가면 관심사도 공유하면서 소속감도 느낀다. 현실에서 받아보지 못한 인정도 공감도 받는다. 힘들고 어려운 현실에서 도피 할 수도 있고 우울함을 잊을 수도 있고 어른에 대한 반항을 표현 할 수도 있다.

P는 고등학교 1학년 여학생이다. 스마트폰에 너무 집착하고 공부에는 통 관심이 없어 성적도 점점 하락한다고 병원을 찾았다. 거의 잠자는 시간 빼고는 스마트 폰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방에서 잘 나오지도 않을뿐더러 식사만 겨우 하고는 침대에 누워서 스마트폰을 하고 잠도 제대로 자지 않는다. 아침에 일어나기도 힘들고 지각을 밥 먹듯이 했다. 부모가 이를 제지하면 싸움이 되고 며칠이고 말도 하지 않으니 부모가 지고 만다고 하였다.

P는 원래 공부도 잘하고 매우 순종적인 아이였다. 어려서부터 남보다 발달도 월등히 빠르고 머리도 좋아서 칭찬을 많이 받는 등 기대를 한 몸에 받아 왔다. 공부도 거의 혼자서 알아서 하는 편이었다. 그러던 P가 언제부턴지 스마트 폰에 집착을 하고 통제를 전혀 못하기 시작했다. 처음엔 그러다 말겠지 하고 지켜보았지만 갈수록 심해졌다.

P는 무표정했다. 어떤 감정도 드러내지 않으려는 듯이 방어하고 있었다. 누구도 자신의 마음의 방에 초대하지 않으려는 듯 냉담했다. 아무런 의욕도 없고 관심도 없는 눈빛이었다. ‘우울증’ 이었다. 부모는 의외라는 반응이었다. 스마트 폰을 할 때면 의욕이 넘친다고.... 그러면서 아마 성적에 대한 스트레스가 원인이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이야기 하였다. 사실 고등학교에 와서 성적이 예전만큼 나오지 않아 부모도 걱정을 하고 아이에게도 스트레스를 주었다고 했다. 하지만 아이의 말을 달랐다. 물론 성적에 대한 불만도 있었지만 친구들에게 상처를 받았다고 하였다.

P는 어른들에게는 인정받는 아이였지만 어려서부터 또래와는 썩 잘 지내지 못했다. 소수의 아이들과 교류하면서 지내왔는데 고등학교에 와서 그 중에 한명과 갈등이 생긴 후에 그 친구들로부터 따돌림을 받기 시작했다. 새로운 친구를 사귀려고 해도 잘 되지 않았고 무엇보다 그들에게 느낀 배신감에 마음을 여는 게 좀처럼 쉽지 않았다. 우울하고 매사에 의욕이 사라진 P에게 온라인 세상은 도피처가 되어주었다. 온라인 커뮤니티에 들어가면 쉽게 사람을 만날 수 있고 관심을 가져주기도 했다. 게임을 하면 잠시라도 울적한 감정을 잊을 수가 있고 짜릿한 쾌감도 있었다.

사실 P가 부모에게 ‘우울하다’는 메시지를 전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친구들과의 문제도 이야기를 했었다. 하지만 부모는 이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누구나 살아가면 겪을 수 있는 일’이라 말했다. 자신의 감정이 무시당했다고 느낀 P는 부모와도 상의 하지 않고 혼자서 끙끙 앓고 친구들과의 문제를 해결해 보려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자 무력감에 빠져 공부도 친구도 부모도 포기 한 채 지냈다. 부모가 자신의 말을 경청해 주거나 마음을 공감 못한 채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일쯤으로 ‘일반화’ 해버리고 흘려버릴 때, 아이들은 자신의 감정은 ‘대수롭지 않은 것, 고로 자기 자신도 아무것도 무가치한 존재’라고 느낀다. 그렇게 자신의 감정을 무시한 부모에게 분노가 생기고 은연 중에 부모가 싫어하는 행동으로 복수하게 된다. 그것도 모르고 부모는 ‘스마트폰은 그만해라’라는 말을 노래를 부르듯이 반복하게 된다.

스마트폰 사용을 조절하게 하는 것은 어릴 적부터 조금씩 자제력을 키워주고 부모가 단호한 태도로 규칙을 정해 주면서 바르게 사용하도록 습관을 잡아 주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정도가 심하다면 마음에 상처나 외로움이 있는지도 살펴보아야 한다.

이호분 연세누리 정신과 원장, 소아청소년 정신과 전문의

대전=정재학 기자 jhjeo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