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행정처가 정말 깨알같이 조사했군요.”
22일 법원 추가조사위원회의 사법부 블랙리스트 조사 보고서를 본 서울 한 지법의 법관은 “정말 놀랐다”며 이같이 말했다. 어느 정도 조사가 이뤄졌으리라 예상은 했지만 생각보다 문건에 포함된 판사가 많았다는 것이다. 이 법관 이름도 추가조사위가 공개한 행정처 문건에 거론돼 있었다. 그는 “문건에 거론되지 않은 판사들도 ‘나도 언젠가 포함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을 것 같다”고 했다.
법원 분위기는 대체로 어두웠다. 서울중앙지법의 한 판사는 “예전 양승태 대법원장의 사찰 문건이 공개됐을 때 대법원은 ‘중대한 반헌법적 사태’라고 반발했었다”며 “청와대가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 재판의 전망을 문의할 때 대법원은 왜 항의하지 않은 건가”라며 허탈해 했다.
서울동부지법 문유석 부장판사는 조사위의 결과 발표 직후 자신의 SNS에 “참담하다”는 글을 올렸다. 문 부장판사는 저서 ‘개인주의자 선언’ 등을 통해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판사다. 행정처는 그에 대해 ‘사법행정위윈회 위원으로 위촉하는 것 자체로 사법행정위원회 흥행에 도움’이라고 평가했다. 판사들은 평가의 긍정·부정을 떠나서 문건의 존재 자체로 헌법이 보장한 법관의 독립이 침해당했다고 느끼고 있었다.
행정처 문건 내용을 블랙리스트라고 해석할 수 있는지는 평가가 엇갈렸다. 지역의 한 부장판사는 “문화계 블랙리스트처럼 명단을 작성해 특정 판사에게 인사나 재정상 불이익을 준 것으론 보이지 않는다”고 평가했다. 춘천지법 류영재 판사는 자신의 SNS에 “이게 블랙(리스트)이 아니면 뭐가 블랙인가. 블랙리스트 만들 때 이름 붙이고 만드나”라는 글을 올렸다.
조사위는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컴퓨터는 끝내 조사하지 못했다. 행정처 컴퓨터를 사용한 법관의 동의를 얻지 못한 상태에서 컴퓨터를 조사했고, 조사 과정에서 이들을 참여하게 하려했지만 응답이 없었다고 설명했다. 일각에선 조사에 절차적 문제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이날 법원에선 이런 목소리가 잠시 사라졌다.
양민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