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연구원 나지원 박사는 여시재가 국내 5대 협력연구기관과 공동기획으로 추진 중인 세계 싱크탱크 동향분석과 관련, ‘미국 ODA 정책의 퇴보: 최대 공여국의 흔들리는 위상’이라는 이슈를 제기했다.
나 박사는 이 글에서 “미국 대선을 앞두고 있던 지난 2016년 9월 20일, 미국의 국제 개발원조 전문 싱크탱크인 글로벌 개발 센터(Center for Global Development, CGD)에서는 미국의 대외 공적 원조를 총괄하는 기관인 미국 국제개발처(United States Agency for International Development, USAID)의 성과를 극대화하기 위한 차기 정부의 과제를 제안하는 브리프를 발간했다”면서 “미국의 원조 관련 유수 민간재단과 세계은행의 관계자 등이 참석한 라운드테이블의 논의 결과를 정리한 이 보고서는 USAID가 실천할 수 있는 분야를 크게 세 가지로 분류하고 있다. 첫 번째는 미국 개발원조 정책과 USAID의 활동을 백악관(대통령)이 주도적으로 진행하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고 두 번째는 USAID의 개발원조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의회와 협력하는 것이며 끝으로는 변화한 개발원조 환경에 맞게 USAID의 운영과 활동 역량을 개혁하는 것이다.”라고 소개했다.
그는 “이 보고서의 저자인 스콧 모리스(Scott Morris, CGD 선임연구원, 미국 개발 정책 이니셔티브 소장)와 케이시 더닝(Casey Dunning, USAID CGD 정책연구원)은 오바마 행정부 하의 USAID 국제 개발원조 정책을 ‘이니셔티브’(initiative), 즉 사안별 기획 중심의 접근법에 치중한 측면이 있다고 분석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 대표적인 사례로는 지구적 기아와 식량안보 문제 해결에 치중하는 기획인 ‘미래 식량 확보’(Feed the Future)와 미국의 공적 원조 수단을 통해 아프리카 대륙의 전력 생산과 공급에 대한 민간 투자를 확충하려는 기획인 ‘파워 아프리카(Power Africa)’가 있다. 이러한 사안별 해결 방식이 개발원조가 필요한 국가들에 주는 실질적인 혜택과 원조의 효과성 증대에 미치는 긍정적인 영향을 높이 평가하면서도 저자들은 이러한 접근법의 성과를 더욱 제고하기 위해 필요한 다섯 가지 개선 방안을 차기 정부에 제언했다.”고 밝혔다.
그는 “첫 번째는 신임 행정부 취임과 함께 USAID 처장을 지명함으로써 개발원조에 대한 신임 정부의 비전을 제도화하는 것이다. 두 번째는 의회와의 협력 강화다. 원조개발에 대한 예산은 국내 정치적으로 지지를 얻기가 쉽지 않은 만큼 예산심사와 의결권한을 가진 의회의 협력이 긴요하다. 저자들은 정책 수립 단계에서부터 의회 지도부가 참여하게 함으로써 의회의 지지를 얻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세 번째는 USAID 조직 내부의 역량 강화다. 어느 정부 부처 혹은 관료제 조직이나 마찬가지겠지만 USAID 역시 인사와 프로그램 관리에 여러 가지 허점을 노출한 부분이 많았기 때문에 이를 개선해야 한다는 것이다. 네 번째는 USAID와 여타 유관기관 및 협력 기관과의 관계와 권한, 책임의 명확화다. USAID의 정책 수립 및 집행 능력과 예산 권한 확대함으로써 특정한 사업에 할당된 예산을 보다 유연하게 활용할 수 있도록 해야 현장의 실질적인 필요에 맞출 수 있고 원조의 효과를 증진할 수 있다고 저자들은 조언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또 “이 보고서는 지난 2010년 오바마 대통령이 내린 대통령 정책 지령 6호 (Presidential Policy Directive-6, PPD-6)를 체계화해야 한다고 주문한다”며 “PPD-6는 미국 대통령이 최초로 순전히 개발 문제만을 다루는 정책 지령을 내렸다는 점에서 뿐만 아니라 개발을 국방과 외교에 버금가는 국가안보 이슈로 격상시켰다는 데에 역사적 의의가 있다. 미국이 20세기 중반 이후 세계 최대의 원조 공여국이었음에도 행정부 차원에서 그 전까지 구체적인 원조 정책이 단 한 번도 제시된 적이 없었다는 사실은 일견 뜻밖이다. 그러나 원조를 도덕적으로는 옳지만 국익에는 (기껏해야 간접적으로밖에) 도움이 되지 않는 시혜, 혹은 이상주의적 외교의 한 형태라고 보는 관점이 적지 않았던 점을 고려하면 미국의 대외정책에서 원조개발 정책이 부차적인 입지에 머물러 있었던 것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고 해석했다.
특히 그는 “이 지령을 통해 개발은 전략적, 경제적, 도덕적으로 우선순위를 차지하는 의제가 되었다”며 “환경, 테러리즘 등 지구 전체적인 위협과 과제가 등장하고 세계 경제에서 불평등이 심각한 문제가 되며 새로운 자원 개발 수요가 증가하는 상황에서 개발원조는 더 이상 타인 혹은 외국을 돕는 문제가 아니라 자국과 자국민의 이익에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문제가 된 것이다.”라고 역설했다.
문제는 실제로 미국 정부가 대외 원조 사업을 위해 지출한 예산의 규모는 이와 같은 계획과 구상에 여전히 미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예산 정책 우선순위 센터(Center for Budget and Policy Priorities)의 데이비드 레이시(David Reich)와 클로이 조(Chloe Cho) 연구위원에 따르면 미국 공적개발원조(official development aid, ODA)의 핵심 프로그램이라 할 수 있는 국제 개발 및 인도주의 지원 부문 프로그램에 할당된 연방 정부 예산은 2017년 예산 기준 292억 달러이다. 2010년에 비하면 소폭 증가하기는 했지만 여전히 연방 정부 전체 예산의 1%에도 미치지 못하는 미미한 금액이다.”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물론 절대적인 액수로 본다면 미국이 여전히 세계 최대의 공여국(donor country)인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OECD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은 세계 2위의 공여국인 독일보다 1/3 이상의 금액을 대외 원조에 지출하고 있지만 미국의 경제 규모가 독일보다 다섯 배 이상 크다는 점을 고려하면 조금 다른 그림이 보인다”고 경고했다.
그는 “독일이 국내총생산(GDP)의 0.7%를 ODA에 지출하는 반면 미국은 0.18% 수준으로 독일의 1/4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이다. 다른 OECD 국가들과 비교해보면 이러한 격차는 더욱 극명하게 드러난다. 미국의 경제규모 대비 ODA 지출은 OECD 회원국 29개국 중 고작 22위에 불과한 것이다.”라고 밝혔다.
그는 대외원조 핵심 지역이라 할 수 있는 아프리카 원조에서는 중국이 미국을 빠르게 추격했고 일부 부문에서는 심지어 추월하기도 하는 등 ‘원조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는 양상이라는 점을 주목했다.
그는 “대략적인 수치를 보면 미국이 여전히 이 지역에서도 수위(首位)의 원조공여국이지만 중국은 원조보다는 직접 투자 형식으로 이 지역 국가들의 개발을 지원하고 있는 것”이라면서 “2014년 현재 미국의 대아프리카 해외직접투자(FDI) 규모는 이미 2위로 뒤쳐졌다. 2016년 브루킹스 연구소가 개최한 미국-아프리카 기업 포럼(U.S.-Africa Business Forum)에서도 이러한 점과 함께 원조와 개발 부문에서 아프리카에 대한 미국의 영향력과 규모가 겉으로 드러나는 것보다 취약할 수 있음이 지적되었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 연장선상에서 카네기 국제평화재단(Carnegie Endowment for International Peace)은 미국이 중국에게 국제개발 분야의 우위를 내어주어서는 안 된다고 경고하면서 그 이유를 열거하고 있다. 무엇보다 중국이 공격적으로 개발지향적 경제정책을 펼치고 있는 상황에서 중국의 개발정책과 원조정책에 매력을 느끼면서 그 영향력 아래로 서서히 끌려들어가고 있는 지역과 국가들을 고려하면, 미국은 기존의 국제개발원조를 유지하는 데에만 급급할 것이 아니라 이 지역의 경제적 기회와 거버넌스 향상이라는 보다 거시적인 목표를 세우고 접근해야 한다고 주문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트럼프 행정부가 지난 2017년 3월 내놓은 2018년도 예산안은 이러한 경고와는 정반대의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충실한 대외원조가 국가안보와 지구안보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점은 일선에서 전쟁을 벌이고 있는 군인들이 개발원조의 가장 큰 지지세력 중 하나라는 사실에서도 간접적으로 증명된다”며 “다수의 미군 장교들이 개발원조는 인도주의 차원에서 득이 될 뿐만 아니라 여러 분쟁과 갈등의 근본원인에 대한 해법이 될 수 있다고 평가하고 있다.”고 상기시켰다.
그는 “경제적 자유지상주의(libertarianism)와 대외적 고립주의를 표방하는 미국 보수 집단은 이러한 대외원조의 이득보다는 비용을 강조하면서 트럼프 대통령의 행보를 뒷받침하고 있다”고 질타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현재 미국의 ODA 정책은 여러 모로 기로에 서 있다”면서 “당초 세계 각국이 약속했던 GDP 대비 2% 선의 지출에는 한참 미치지 못하는 예산 규모를 반전시키고 본격적으로 개발원조를 대외정책과 안보, 경제성장을 아우르는 국가 주요 정책으로 격상시키려던 오바마 대통령의 야심찬 계획은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사실상 없던 일이 되었으며 도리어 기존보다 예산과 규모가 더욱 축소되는 상황에 이르렀다”고 설명했다.
이어 “미국 국내의 연구기관과 학자들은 이러한 대외 원조의 후퇴에 대해 단기적 비용 절감에 매몰되어 장기적으로 국익을 해치는 꼴이라고 비판하고 있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각국의 문제는 알아서 해결해야 한다는 명분으로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를 옹호하면서 의견이 갈리고 있다”며 “이처럼 국내적으로 개발원조 정책이 갈팡질팡하는 사이, 중국은 빠른 속도로 대외개발원조와 투자의 규모와 범위를 확대하면서 미국의 입지를 위협하고 있다. 미국과 중국의 패권경쟁이 아직 첨예해지지는 않았지만 소프트파워(soft power)의 다양한 영역에서는 이미 사실상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ODA와 관련 해외투자 분야야말로 중국의 미국 추월을 알리는 신호탄이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재차 경고했다.
인천=정창교 기자 jcgyo@kmib.co.kr
여시재 싱크탱크 동향분석을 살펴보니 “미국 공적개발원조 퇴보, 국제사회에서 흔들리는 미국의 위상”
입력 2018-01-21 22: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