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균 나이 일흔. 마음만큼은 청춘인 노인들의 좌충우돌 황혼기가 가슴에 잔잔한 파동을 일으킨다.
영화 ‘비밥바룰라’(감독 이성재·24일 개봉)는 평생 가족을 위해 살아 온 네 아버지(박인환 신구 임현식 윤덕용)가 가슴 속에 담아둔 각자의 버킷리스트를 실현해나가는 내용. 노년배우들이 중심이 되어 그들 자신의 이야기를 펼친다. 상업영화로서는 과감한 도전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영화는 과장이나 포장 없이 97분의 여정을 완수해냈다.
극 중 네 친구를 이끄는 건 남다른 행동력의 소유자 영환(박인환)이다. 어릴 적부터 친구들과 함께 살길 꿈꿨던 그는 손수 집을 마련하고 친구들을 하나둘 불러 모은다. 첫사랑을 못 잊는 현식(임현식)에게 용기를 북돋워주고, 형편이 어려워 가족을 떠난 덕기(윤덕용)를 직접 찾아 나서며, 치매 아내를 돌보는 순호(신구)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민다.
영화는 순하고 착하게 흘러간다. 자극적인 지점이 거의 없다. 예상을 크게 벗어나지도 않는다. 단조롭고 안정적이다. 극적인 스토리와 화려한 화면에 익숙한 관객들에겐 심심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바로 그게 이 영화의 색깔이다. 담백해서 거북하지 않고 뒷맛이 오래 남는다. 온기를 안고 상영관을 나서면서 문득 부모님을 떠올리게 되는 식이다.
박인환은 19일 서울 강남구 메가박스 코엑스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나이가 들면 친구들이 하나둘 떨어져나고 소외되기 마련인데 이 작품에선 친구들과 자주 어울린다.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모습에 공감이 많이 됐다. 나름의 꿈이나 희망에 다가가는 과정이 좋았다”고 말했다.
이 영화의 네 주연배우가 가지는 공통점은 여러 작품에서 평범한 아버지의 모습으로 주로 대중을 만나왔다는 점이다. 박인환은 “누군가의 아버지 혹은 누군가의 할아버지 역할을 주로 하게 되는데 ‘비밥바룰라’는 노인들이 중심이 되는 작품이어서 선뜻 참여하게 됐다”고 털어놨다.
신구는 “누구나 따뜻하게 볼 수 있는 영화이고, 노인 친구들이 모여서 하나의 목적을 위해 노력한다는 이야기 또한 좋아서 출연하게 됐다”고 얘기했다. 임현식은 “어느덧 70을 넘었는데 그동안 나는 내 나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노인 그룹에 들어가는 게 싫었다. 하지만 이 작품을 통해 노인 생활이 얼마나 재밌고 정다운지 보여주고 싶었다”고 했다.
‘비밥바룰라’처럼 노인의 삶을 다룬 영화들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덧붙였다. 임현식은 “이제 시작인 것 같다. 노인영화가 많이 만들어졌으면 좋겠다. 해보니까 장래성도 있고 재미도 있더라. 노인영화도 장사가 잘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젊은 극 중 영환의 아들 역을 맡은 김인권은 “젊은 관객들도 모두 부모님이 계시지 않나. 내 아버지, 내 어머니가 이런 동심을 품고 그 세월을 버티셨구나 싶을 거다. 그런 감동을 느낄만한 지점이 충분하가도 생각한다”고 했다.
“요즘 어둡고 힘든 얘기가 많은데, 이 영화는 분명히 따뜻하고 재미있습니다. ‘인생은 그래도 살아볼 만한 가치가 있는 것 아니냐’는 긍정적인 삶의 모습을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비밥바룰라’를 통해 작게나마 위안을 받고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셨으면 좋겠습니다.”(박인환)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