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전 대통령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을 거론하며 ‘정치보복’을 주장하자 문재인 대통령은 강도 높은 분노를 표출했다. 문 대통령이 “분노의 마음을 금할 수 없다” “우리 정부에 대한 모욕”이라는 직접적이고 강력한 반응을 보인 것에 대해 모두가 이례적이라는 평가를 했으나 “충분히 그럴 만 하다”는 게 측근들의 입장이다.
문 대통령은 인권변호사 시절부터 30년을 함께해온 노 전 대통령의 동반자다. 2012년 한 예능프로그램에 출연해 “내 별명 중 ‘노무현의 그림자’가 가장 마음에 든다”고 말하기까지 했다.
이같은 노 전 대통령을 향한 문 대통령의 ‘공경’은 2011년 출간된 그의 자서전 ‘운명’에서 더 자세히 볼 수 있다. 그는 노 전 대통령에 대해 “나보다 더 어렵게 자랐고 대학도 갈 수 없었다. 어려운 사람을 대하는 마음이 나보다 훨씬 뜨거웠고, 돕는 것도 훨씬 치열했다”고 회상했다. 이어 “그를 만나지 않았으면 적당히 안락하게, 그리고 적당히 도우면서 살았을지도 모른다. 그의 치열함이 나를 늘 각성시켰다”며 존경심을 드러냈다.
책에는 이 전 대통령이 취임한 후 검찰 수사가 본격화되는 과정에서 느낀 문 대통령 본인의 참담한 심경도 고스란히 담겨있다. 해당 내용을 담은 목차의 제목을 ‘정치보복의 먹구름’이라고 짓기도 했으며, 노 전 대통령이 검찰에 출두한 2009년 4월 30일은 ‘치욕의 날’이라고 썼다.
문 대통령은 “그의 서거가 나를 다시 그의 길로 끌어냈다. (노 전) 대통령은 유서에서 ‘운명이다’라고 했다. 속으로 생각했다. 나야말로 운명이다. 당신은 이제 운명에서 해방됐지만, 나는 당신이 남긴 숙제에서 꼼짝하지 못하게 됐다”는 내용도 담았다.
이처럼 자서전 곳곳에는 노 전 대통령을 향한 애틋함이 담겼고, 그의 비극적인 죽음은 이 전 대통령의 정치보복으로 인한 것이라는 인식이 녹아 있다. 그러나 문 대통령은 이에 대한 분노를 먼저 표출한 적은 없었다. 9년 전 노 전 대통령의 영결식에서도 이 전 대통령에게 먼저 사과한 인물이 문 대통령이다. 노 전 대통령의 마지막 비서실장이자 장례집행위원장이었던 문 대통령은 이 전 대통령 부부의 등장에 술렁이는 장내를 수습하고 “조문 오신 분에게 예의가 아니게 됐다”며 고개를 숙였다.
그러나 이 전 대통령이 정치보복을 운운하며 노 전 대통령의 죽음을 직접적으로 언급하자 문 대통령의 인내심에 한계가 다다랐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문 대통령은 자서전에서 “노 대통령과 우리는 그때 엄청나게 인내하면서 대응했다. 그 일을 겪고 보니 적절한 대응이었는지 후회가 남는다. 너무 조심스럽게 대응한게 아닌가 하는 회한이 있다”고 적었다. 그만큼 속으로 삼켜냈던 분노가 한꺼번에 터진 것이라는 것이다.
청와대 핵심관계자는 “(문 대통령의 분노가) 격한 반응이라 생각하지 않는다”며 “국민이 불안해할 이야기를 일방에선 계속 쏟아내고 있는데 정부 책임감만으로 언제까지 인내만 하고 있으란 말인가. 지금까지 많이 참았다”라고 밝히기도 했다.
앞서 박수현 청와대 대변인은 18일 오전 브리핑을 통해 문 대통령의 입장을 전하며 “대한민국 대통령을 역임하신 분으로서 말해선 안 될 사법질서에 대한 부정이고 정치근간을 벗어나는 일”이라고 말했다. 이 전 대통령은 17일 기자회견에서 “적폐청산이라는 이름으로 진행되고 있는 검찰 수사에 대해 많은 국민들이 보수궤멸을 겨냥한 정치공작이자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에 대한 정치보복이라고 보고 있다”고 말한 바 있다.
문지연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