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을 거론하며 ‘정치보복’을 주장한 이명박 전 대통령에 대해 “분노의 마음을 금할 수 없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이 ‘분노’라는 표현을 써가며 이 전 대통령을 비판한 것은 이례적이다. 문 대통령은 9년 전 노 전 대통령의 영결식에서도 이 전 대통령에게 정중히 사과한 인물이다. 비극적인 순간에도 침착함을 잃지 않았던 그가 이 전 대통령을 향해 날선 비난을 가한 것이다.
노 전 대통령이 서거한 2009년 5월 당시 문 대통령은 노 전 대통령의 마지막 비서실장이자 장례집행위원장이었다. 문 대통령은 노 전 대통령의 서거 발표는 물론 장례 절차를 치르는 내내 담담한 모습을 유지했다. 공개적으로 눈물 흘리는 모습조차 보이지 않았다.
2009년 5월 29일 서울 경복궁 앞마당에서 노 전 대통령 국민장 영결식이 엄수됐다. 그런데 이 전 대통령 부부가 헌화하러 나서자 장내가 술렁였다. 백원우 열린우리당 의원(현 청와대 민정비서관)이 “이명박 사죄하라”고 외치며 뛰어나오다 청와대 경호원들에게 제지당한 것이다. 백 의원은 경호원들에 의해 밖으로 끌려나오면서도 “정치보복으로 살인에 이른 정치살인입니다. 이명박 대통령은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사죄하십시오”라고 반복해서 외쳤다.
당시 문 대통령은 현장을 수습한 뒤 이 전 대통령에게 다가가 “조문 오신 분에게 예의가 아니게 됐다”고 고개 숙여 사과했다. 이 장면은 국민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이후 백 의원은 특수공무집행 방해 및 명예훼손 혐의로 검찰에 고발당했으나 대법원에서 무죄가 확정됐다.
문 대통령은 2010년 4월 29일 백 의원의 1심 재판에서 증인으로 서기도 했다. 문 대통령은 “노 전 대통령의 서거에 대해 이명박 정부가 일정 부분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 분들은 (백원우 의원과) 같은 심정이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통령 당선 전인 2016년 12월 시사IN 인터뷰에선 좀더 솔직한 마음을 털어놨다. 문 대통령은 “그때 마음은 우리 백원우 의원과 꼭 같은 마음이었다”며 “그렇게 외치는 백원우 의원을 정말 껴안아주고 싶은 심정이었는데, 그래도 우리가 상주잖아요. 이명박 대통령은 문상차 온 분이니까 우리가 그에 대한 예의는 다 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한편 박수현 청와대 대변인은 18일 오전 브리핑을 통해 “문재인 대통령은 이명박 전 대통령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을 직접 거론하며 정치보복 운운한 데 대해 분노의 마음을 금할 수 없다고 밝혔다”고 전했다.
이 전 대통령은 전날 기자회견에서 “적폐청산이라는 이름으로 진행되고 있는 검찰 수사에 대해 많은 국민들이 보수궤멸을 겨냥한 정치공작이자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에 대한 정치보복이라고 보고 있다”고 말한 바 있다.
박 대변인은 “이명박 전 대통령이 마치 청와대가 정치 보복을 위해 검찰을 움직이는 것처럼 표현한 데 대해 이는 우리 정부에 대한 모욕”이라며 “대한민국 대통령을 역임하신 분으로서 말해선 안될 사법질서에 대한 부정이고 정치근간을 벗어나는 일”이라고 말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문 대통령이 개인적으로 노무현 전 대통령 죽음을 언급한 데 대한 불쾌감이 있었을 수 있지만 대통령의 발언은 그것을 넘어서는 더 큰 의미가 있을 것”이라며 “문 대통령의 분노는 (MB 성명이) 사법질서를 부정하고 국가의 근간을 흔드는 것과 연관이 있다”고 설명했다.
박상은 기자 pse0212@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