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스포츠 교류는 늘 ‘좋은 것’이었다. 군사적 긴장을 누그러뜨리고 화해와 협력의 물꼬를 트는 첨병 역할을 해 왔다. 남북은 과거 9차례 국제대회 ‘공동입장’을 했고 두 차례 ‘단일팀’을 꾸려 출전했다. 1991년 세계탁구선수권대회와 세계청소년축구선수권대회에서 한 팀을 이뤄 경기에 나섰다. 남한 현정화와 북한 이분희 선수의 탁구 복식조는 여자 단체전 금메달을 따냈다. 남북 화합의 상징이 된 이들은 국민에게 감동을 선사했다.
누구도 그 가치를 깎아내릴 수 없었던 ‘남북 단일팀’이 평창동계올림픽을 앞두고 첨예한 논란거리로 떠올랐다. 남북이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 구성에 합의한 17일 이는 남한 선수들에 대한 인권침해라는 진정이 국가인권위원회에 제기됐다. 한 아이스하키팬이 도종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을 상대로 진정을 냈다. 그는 “남북 단일팀을 구성하면 국내 선수의 출전 기회가 줄어들 수밖에 없다. 4년에 한 번 돌아오는 기회를 빼앗아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
청와대 홈페이지 국민청원 게시판도 남북 단일팀 논란으로 뜨겁다. 17일까지 올라온 단일팀 관련 청원은 360건이 넘는다. 대부분 반대한다는 내용이다. 지난 12일 ‘아이스하키 단일팀 반대합니다’란 제목의 청원을 올린 이는 “남북 단일팀의 취지는 이해하지만 지금은 아니라고 본다”며 “올림픽을 위해 우리 선수단이 4년간 호흡을 맞춰 준비하고 연습한 시간이 정치적인 이유로 하루아침에 물거품이 돼서는 안 된다”고 했다.
◇ “공정하지 못하다”… 北 선수 합류를 ‘낙하산’처럼 인식
인권위 진정서와 청와대 청원서에 담긴 ‘단일팀 반대론’의 대표적 논리는 “공정하지 못하다”는 것이었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젊은 선수들이 수년간 하나의 성공을 위해 달려온 상황에서 정부가 남북관계라는 명목 아래 단일팀을 추진했다”며 “더 이상 스포츠를 정치적 도구로 보지 않고 스포츠 고유의 룰을 존중하는 문화가 정착된 터라 국민들, 특히 젊은층이 이를 공정하지 않다고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리서치가 지난 9~10일 실시한 여론조사(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 ±3.1%포인트)에서 북한의 평창올림픽 참가를 환영한다는 의견은 81.2%나 됐다. 하지만 ‘한반도기 동시입장’에는 찬성이 50.5%, ‘무리해서 할 필요는 없다’는 답변이 49.4%로 엇비슷했다. 단일팀 문제에선 부정적 의견이 압도적이었다. ‘가급적 단일팀을 구성하는 것이 좋다’는 27.0%에 그쳤고, ‘무리해서 단일팀을 구성할 필요는 없다’는 답변이 72.2%였다.
스포츠계 인사들은 유독 젊은층의 반대가 심한 현상을 놓고 “비인기종목에 대한 정부의 일방적 조치를 불공정이 만연한 사회 현실의 일부로 간주하는 듯하다”며 “막판에 끼어드는 북한 선수를 치열한 취업 경쟁에서 뒷배경을 이용하는 ‘낙하산’과 다를 게 없다고 보는 것 같다. 자신의 일처럼 흥분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북한을 보는 시선의 변화도 감지된다. 이택광 경희대 글로벌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는 “과거에는 민족통일이 국가적 과제로 인식됐고 그 연장선에서 남북단일팀이 호응을 얻었지만 현 젊은 세대는 북한을 같은 민족보다 낡은 독재국가 정도로 인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임윤택 계명대 사회학과 교수는 “합리주의 관점을 갖고 있는 젊은 세대에게 남북 화합은 예전처럼 절박하지 않다. 통일의 현실적 손익계산서를 따져봤을 때 과연 우리에게 이득이 될까라는 의문도 자리하고 있다”고 말했다.
◇ ‘국가’에서 ‘개인’으로… ‘경쟁’이 빚어낸 가치의 이동
남북단일팀은 ‘국가적으로’ 좋은 일이다. 정부는 한반도에 평화를 정착시키는 중요한 과정으로 보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도 진천선수촌을 찾아 “평창에서 남과 북이 하나의 팀을 만들어 함께 경기에 임한다면 그 모습 자체가 두고두고 역사의 명장면이 될 것”이라며 “만약 공동입장을 하거나 단일팀을 만들 수 있다면 북한이 단순히 참가하는 것 이상으로 남북 관계를 발전시켜 나가는 데 훨씬 좋은 단초가 되지 않을까 기대한다”고 강조했다.
아이러니컬하게 단일팀 반대론은 문 대통령 지지도가 높은 젊은 층에서 거세게 일었다. 국가를 위해 좋고, 내가 선택한 정부, 내가 지지하는 대통령이 추진하는데도 그렇다. 이는 젊은 세대가 중시하는 ‘가치’가 과거와 달라져 있음을 보여준다. 아이스하키 단일팀을 정부는 “남북관계 발전의 좋은 단초”로 인식하지만, 이들은 “국가를 위해 개인이 희생하는 상황”으로 이해했다. ‘국가가 먼저냐, 개인이 먼저냐’의 문제에서 ‘개인’을 택하는 인식이 그만큼 사회 저변에 확산돼 있는 것이다.
갈수록 심화되는 ‘경쟁사회’가 이런 현상에 원인을 제공했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몇 해 전 선풍적 인기를 끌었던 TV 예능프로그램 ‘나는 가수다’에서 비슷한 상황이 연출됐다. 쟁쟁한 가수들이 겨룬 첫 경연의 탈락자는 김건모였다. ‘국민가수’의 타격을 우려해 동료 가수들이 반발했고 제작진은 김건모에게 한 번 더 기회를 줬다. 그러자 거센 비난여론이 일었다. “공정하지 못하다”는 이유였고 ‘나는 가수다’는 한 달간 방송을 중단해야 했다.
즐기기 위한 예능에서도 ‘게임의 룰’은 공정해야 한다는 여론, 땀 흘려 경쟁해 지금의 자리에 선 선수들의 기회를 박탈해선 안 된다는 시선. 이 두 가지는 경쟁사회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단순한 오락으로 치부할 수 없고, 국가적 대의에도 양보할 수 없는’ 중요한 가치가 있음을 말해준다. 경쟁은 공정해야 하고 그것이 깨지면 결국 같은 상황이 계속 되풀이될 거란 우려가 남북 단일팀 논란에 깔려 있다.
태원준 기자 wjt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