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손으로 황소 매달리는 게임 매료
품삯 모아 황소 구입… 5차례 승리
소녀는 황소가 좋았다. 황소를 이끌고 마을을 누비는 집안 어른들이 멋졌다. 또래들에게는 조혼이 현실인 인도의 한 시골 마을, 십대 소녀는 혼담 대신 ‘잘리카투’(인도 전통 투우) 황소 고삐를 잡았다. 그렇게 가업(家業)은 그녀 몫이 됐다.
영국 BBC방송은 16일(현지시간) 결혼 대신 잘리카투와 황소에 인생을 건 인도 여성 셀바라니 카나가라수(48)의 삶과 잘리카투를 둘러싼 논란을 조명했다.
잘리카투는 인도 남부 타밀나두주와 중서부 마하라슈트라주의 전통 투우 경기다. 기원전 4세기부터 2000년 이상의 역사를 지녔다. 신년과 추수절이 겹치는 ‘퐁갈’ 축제(1월 15일 전후) 기간에 열린다.
경기는 투우사가 맨손으로 경기장 입구에서부터 서른 발자국 거리까지 황소에 매달리는 데 성공하면 투우사 승리, 실패하면 황소 승리다. 스페인 투우와 달리 황소를 죽이진 않지만 목숨을 건 경기란 점은 같다. 황소 고삐가 풀리면 젊은이들이 달려들어 황소를 제압하는데, 해마다 사망자가 속출한다.
카나가라수는 그럼에도 잘리카투에 매료됐다. 여성이 결혼 대신 황소를 키우는 것 자체가 극히 드물어 가족 모두 반대했지만 결국 그녀가 이겼다. 일용직 노동자로 일하며 돈을 모았고, 8년 전 황소 ‘라무’를 식구로 들였다.
이후 그녀의 삶은 영광스러운 고생길이었다. 지금은 18살이 된 라무를 이끌고 7차례 잘리카투에 참여해 5번이나 이겼다. 비단 사리(인도 전통의상)와 금화 등 부상도 챙겼다. 자신보다 라무를 더 애지중지하는 헌신 덕이었다. 하루 품삯 200루피(약 3300원) 대부분을 라무 몫으로 썼다. 자신은 한 끼만 먹으면서 건초 외에 코코넛, 바나나, 참깨, 쌀 등 영양식을 챙겨 먹였다.
카나가라수는 “라무는 내게 아들과 같다”며 “상금도 좋지만 우리 가족에게 영예를 안겨줬다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했다. 라무의 활약에 주변에서 10만 루피(약 167만원)에 달하는 거액을 제시하며 소를 팔라고 했지만 거절했다. 가업이 끊기질 원치 않는 그녀는 십대인 조카딸이 자신의 뒤를 잇기 바라며 훈련시키고 있다.
가업 승계만큼이나 잘리카투의 미래 역시 불확실하다. 대규모 사상자가 끊이지 않는 데다 동물학대 논란까지 겹쳐 찬반 논란이 뜨겁다. 이틀 동안 1500명의 선수와 1100마리의 황소가 참여한 올해 잘리카투에서도 관중 등 4명이 사망하고 78명이 부상했다. 인도 대법원은 반복되는 비판 여론에 2014년 동물학대방지법을 근거로 잘리카투를 금지했었다. 하지만 타밀나두주 주민들이 대대적으로 반발하자 2016년부터 지정된 장소에 한해 다시 허용했다.
정건희 기자 moderat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