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분석] “한풀이 수사” 외친 MB vs 흔들림 없는 수사 자신감 檢

입력 2018-01-18 04:30

이명박 전 대통령이 17일 문재인정부와 전면전을 선언했다. 검찰 수사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에 대한 문재인정부의 정치보복이라는 프레임을 꺼내들었다. 하지만 검찰은 “법적 절차를 잘 따르겠다”며 흔들림 없는 수사를 다짐하고 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17일 서울 삼성동 사무실에서 검찰 수사를 비판하는 성명서를 읽고 있다. 뒤쪽은 이명박정부 청와대 참모들. 왼쪽부터 김상협 전 녹색성장기획관, 장다사로 전 총무기획관, 최금락 김두우 전 홍보수석, 김효재 전 정무수석, 정동기 전 민정수석, 맹형규 전 행정자치부 장관, 이동관 전 홍보수석. 최현규 기자

◇MB, ‘盧 죽음’ 거론하며 文정부와 일전불사 의지

이 전 대통령의 강경 대응으로 현 정부와 전전(前前) 정부 간 정면충돌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전두환 전 대통령이 1995년 12월 김영삼 당시 대통령의 역사 바로 세우기 작업에 반발해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자택 인근에서 발표했던 ‘골목성명’ 이후 나온 가장 강경한 전직 대통령의 성명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이 전 대통령의 반격은 보수 민심 결집을 통해 검찰 수사에 대한 역풍을 기대하는 포석이 깔려 있다. 이 전 대통령은 자신을 겨냥한 수사가 노 전 대통령 서거에 따른 보복 수사, 한풀이 수사라는 점을 강조했다. 이미 박근혜 전 대통령이 구속 수감된 상황에서 이 전 대통령에 대한 직접 수사가 진행될 경우 숨죽여 있던 보수의 반발이 확산될 것이라는 게 이 대통령 측의 기대다.

이 전 대통령은 검찰 수사를 겨냥해 “측근들을 괴롭히지 말고 나에게 물으라”고 일전불사의 의지를 밝혔다. 자신을 겨냥한 검찰 수사에 대한 모든 책임을 스스로 지겠다는 의미다. 검찰 수사에 회피로 일관했던 박 전 대통령과 차별화를 꾀했다는 분석도 있다. 박 전 대통령은 지난해 10월 16일 형사재판 법정에서 “법치 이름을 빌린 정치보복은 저로 마침표가 찍어졌으면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발언의 타이밍이 늦었다는 지적이 많았다. 이 전 대통령은 측근들이 구속되자 직접 전면에 나섬으로써 측근들의 내부 단합을 꾀했다.

이 전 대통령의 핵심 측근은 “그동안 참았으나 이제는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상황에 도달했다”고 분노를 감추지 않았다. 이 전 대통령 측이 재임 시절 수집했던 노무현정부의 치부를 공개하며 반격에 나설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하지만 이 측근은 “그렇게까지 흙탕물 싸움을 할 생각은 없다”고 말했다.

이 전 대통령은 이날 오전 김백준 전 청와대 총무기획관과 김진모 전 민정2비서관이 국가정보원으로부터 불법 자금을 수수했다는 의혹으로 구속된 사실을 접한 뒤 사무실에 출근하지 않았다. 특히 이 전 대통령은 자신의 재산을 40년 넘게 관리해 ‘MB 집사’로 불리는 김 전 기획관 구속에 크게 분노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전 대통령은 언론의 눈을 피해 측근들과 대책회의를 가진 뒤 성명 발표를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른 핵심 측근은 “이 전 대통령이 성명 발표를 지시했다”며 “마지막까지 이 전 대통령이 원고를 직접 검토했다”고 말했다.

이 전 대통령은 앞으로 검찰 수사나 중요한 정치적 국면마다 적극적으로 자신의 입장을 밝힐 것으로 예상된다. 이명박정부에 몸담았던 법조인 출신 참모들이 현 정부의 적폐청산 움직임에 법적 대응으로 나설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이 전 대통령이 이날 오후 5시30분 서울 강남구 삼성동 사무실에서 읽어 내려간 성명서는 정확히 3분 분량이었다. 이 전 대통령은 취재진의 질문을 따로 받지 않고 자리를 떴다. 그는 긴장한 듯 성명서 중간 이후 부분에서 자주 기침을 했다. 특히 이 전 대통령은 “최근 검찰 수사는 나를 목표로 한 것”, “모든 일의 최종 책임은 저에게 있다”고 말할 때 기침을 했다. 또 다른 측근은 “이 전 대통령이 성명서 말미에 울컥해 목이 멘 것 같다”고 말했다.


◇‘MB 문고리’ 진술 확보한 檢 “수사로 말하겠다”

검찰은 17일 이명박 전 대통령의 보복수사 주장에 대해 “법적 절차를 잘 따르겠다”며 원칙적 입장만 밝혔다. 말을 아꼈지만 수사를 통해 모든 것을 말하겠다는 검찰 나름의 자신감이 깔려 있다.

검찰 수사는 이미 이 전 대통령의 턱밑까지 다다른 상태다. 검찰은 이명박정부 시절 국가정보원 특수활동비 4억원을 불법 수수한 혐의로 이 전 대통령의 최측근인 김백준 전 청와대 총무기획관을 구속했다. 이 전 대통령의 공적·사적 돈 관리를 맡아 왔던 김 전 기획관 신병 확보는 국정원 특활비 상납사건뿐 아니라 이 전 대통령의 실소유 논란이 일고 있는 다스(DAS) 관련 수사에도 결정적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이미 국정원 자금 불법 수수 과정에 이 전 대통령이 관여됐는지 등과 관련해 김희중 전 청와대 제1부속실장, 김주성 전 국정원 기조실장 등 핵심 측근 인사들의 진술을 상당 부분 확보했다. 김 전 기조실장이 이 전 대통령에게 독대를 요청해 김 전 기획관에게 국정원 자금을 건넨 사실을 보고했다는 진술까지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전 부속실장 역시 국정원 자금 1억원을 수수한 혐의로 조사받는 과정에서 국정원 자금 일부를 2011년 10월 이 전 대통령 부부의 해외순방 여비로 전달했다고 시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불법 수수한 국정원 자금이 이 전 대통령에게 직접 흘러들어갔다고 볼 수 있는 부분이다. 검찰은 김 전 실장이 김윤옥 여사를 보좌하는 행정관에게 국정원 자금을 전달한 정황도 포착해 사실관계를 파악 중이다.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부장검사 송경호)는 이날 구속된 김 전 기획관을 다시 불러 이 같은 의혹에 대해 추가 조사를 진행했다.

이 전 대통령의 청와대 ‘문고리’로 꼽히는 인사들이 수사에 협조적으로 나오는 가운데 그동안 혐의를 부인해 왔던 김 전 기획관까지 구속을 계기로 진술 태도에 변화를 보일 경우 수사는 더욱 급물살을 탈 전망이다. 이 전 대통령이 이날 직접 나서서 검찰을 비난하는 한편 ‘더 이상 국가를 위해 헌신한 공직자들을 괴롭히지 말라’고 강조한 것도 측근들의 전열을 재정비하려는 의도로 해석된다. 대한변협 관계자는 “적폐의 책임소재를 명확히 하고 재발을 막기 위해 수사를 하는데 자신이 수사 대상이 됐다고 보복이라고 주장하는 것에 동의할 수 없다”면서 “자신이 처한 상황의 불리함을 생각하고 저항을 한다, 그렇게 보인다”고 말했다.

이 전 대통령이 구체적 혐의를 반박하기보다 정치적 갈등을 부각하려 한 만큼 검찰도 수사 관련 언급은 최대한 자제했다. 검찰 관계자는 “현재는 김백준·김진모·김희중 전 비서관의 범죄 혐의를 수사 중”이라며 말을 아꼈다. 그는 이 전 대통령 측의 ‘표적·기획 수사’ 주장과 관련해서도 “나오면 나오는 대로 한다. 미리 기획하고 방향 잡고 진행하지는 않는다”면서 “어떤 로드맵 같은 것은 당연히 없다”고 강조했다. 검찰의 다른 관계자도 “특정인을 목표로 한 수사는 하지 않는다”면서 “수사는 나오는 대로 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문무일 검찰총장이 이 전 대통령을 소환조사할 것이냐는 질문에 “법적 절차를 잘 따라서 하겠다”고 답한 것과 궤를 같이한다.

그러나 수사 흐름으로 볼 때 이 전 대통령에 대한 직접 수사는 피할 수 없는 상태다. 핵심 관계자들의 신병이 확보된 만큼 수사 속도도 빨라질 것으로 보인다. 서울동부지검 다스수사팀(팀장 문찬석 서울동부지검 차장)은 이날 다스 협력사 IM 본사와 관계자 주거지 등을 압수수색했다. IM은 이 전 대통령의 친형인 이상은 다스 회장의 아들 이동형씨가 최대 주주다.

글=조민영 하윤해 이종선 기자 mymin@kmib.co.kr, 그래픽=이은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