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전 대통령이 검찰의 측근 수사에 대해 “정치보복”이라고 성명을 발표했지만 청와대는 별다른 입장을 내지 않았다. 전직 대통령 2명이 동시 수사를 받는 데 대한 부담이 작용한 것으로 해석된다. 여야의 반응도 극명하게 엇갈렸다.
◇청와대, MB 성명에 “노코멘트”
청와대는 17일 이 전 대통령의 성명에 대해 공식 논평을 내지 않았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통화에서 “노코멘트”라고만 했다. 전직 대통령이 직접 낸 성명을 청와대가 반박할 경우 정치보복 논란이 확대될 것을 우려한 것으로 보인다.
김백준 전 청와대 총무기획관과 김진모 전 청와대 민정2비서관이 이미 검찰에 구속된 상황에서 공식 입장을 내는 것은 실익이 없다는 판단도 내린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 수사가 본궤도에 오른 상황에서 실체적 진실을 수사하는 게 중요하다고 본 것이다.
청와대는 적폐청산에 대한 국민적 지지가 높은 상황에서 이 전 대통령 수사의 정무적 해결은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강하다. 여권 핵심 관계자는 “불법이 있다면 실체를 밝히라는 게 국민의 뜻”이라며 “검찰 수사를 통해 이명박정부의 불법 여부가 가려지는 게 맞다”고 말했다. 문재인정부 출범 공신 중 한명인 양정철 전 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도 최근 한 언론인터뷰에서 “지금은 부패나 부정을 단호하게 진상규명하고 사법적 처벌을 해서 다시는 그런 일이 없도록 만드는 게 급선무”라고 말했다.
박근혜정부 국정농단에 대한 국민적 공분은 문재인정부 집권의 큰 버팀목이었다. 청와대 내부에서는 이명박·박근혜정부의 적폐에 대해서는 낱낱이 실체를 밝혀야한다는 기류가 강하다. 문재인캠프에 참여했던 한 인사는 “이명박정부에 대한 수사를 정치적 타협으로 해결하긴 어려울 것”이라며 “불법 여부를 먼저 가려야 한다. 만약 불법이 있다면 사필귀정(事必歸正)”이라고 말했다.
◇한국당 “반드시 부메랑 될 것” VS 민주당 “정치공작 주장 어처구니 없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는 17일 이명박 전 대통령의 기자회견 직후 문재인정부의 적폐청산을 강하게 비판했다. 홍 대표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이번 정권처럼 일개 비서관의 지시 아래 정치보복 목적으로 노골적으로 사냥개 노릇을 대놓고 자행하는 정권은 처음 본다”고 말했다. 이어 “권력이 영원할 것 같지만 한순간”이라면서 “반드시 부메랑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망나니 칼춤 추듯 오만하게 정치보복에만 전념하고 있으니 곧 국민의 추상같은 심판이 올 것”이라고도 했다.
홍 대표가 언급한 비서관은 백원우 청와대 민정비서관으로 보인다. 백 비서관은 문재인정부의 적폐청산 작업을 주도하는 인물로 알려져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국회의원 시절 비서관을 지냈고 노무현정부 청와대에서 민정수석실 행정관으로 근무한 경험도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이 전 대통령의 기자회견을 정면 반박했다. 김현 대변인은 브리핑을 통해 “자신의 잘못을 고백하고 진실을 밝히기는커녕 측근 감싸기에 급급한 기자회견이었다”고 평가했다. 이어 “적폐를 청산하라는 국민들의 명령에 대해 정치공작이라는 이 전 대통령의 주장이 어처구니없을 뿐”이라며 “이 전 대통령은 법과 원칙에 따라 검찰 수사에 협조해야 하고 검찰은 흔들림 없이 수사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국민의당도 “검찰 수사와 사법부 판단에 의해 결정될 문제를 정치 쟁점화하는 것은 국민에 대한 도리가 아니다”라며 “대단히 부적절하고 유감스럽다”고 평가했다. 이어 “이 전 대통령은 검찰 수사에 성실히 임하고 검찰도 엄정하게 수사해 달라”고 말했다.
맹경환 강준구 김판 기자 khmae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