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21일 오전 경기도 성남 경기창조경제혁신센터 내 ‘바이시큐’ 사무실은 공과대학 연구실 같은 모습이었다. 책상 위에 드라이버와 나사 등 공구, 컴퓨터 칩, 노트북과 커피잔 등이 어지러이 놓여 있었다. 캐주얼 차림의 직원도 직장인이라기보다 대학생 같았다.
하지만 책상 옆에 로드 자전거 두 대가 서 있는 건 보통 연구실 모습과 달랐다. 자전거 앞바퀴마다 정중앙에 알람시계 모양의 검은 알루미늄 원통이 붙어 있었다. 직원이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자 원통은 푸른빛을 깜빡였다. 직원은 “자전거 앞바퀴 살을 고정시키는 잠금장치인 바이시큐가 방금 막 풀린 것”이라고 설명했다.
평균 나이 25살에 대학 동기 4명이 세운 스마트자전거 잠금장치 스타트업 ‘바이시큐’가 일본 미국 등 자전거 선진국 시장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 기업 가치가 2조원이 넘는 것으로 평가되는 중국의 공유자전거 업체 ‘모바이크’와도 협업을 꿈꾼다.
이종현 바이시큐 대표는 “젊은 업체에 ‘경험 부족’은 약점이자 특권”이라며 “‘실패가 두려워 자전거 페달을 안 밟으면 넘어질 뿐’이란 명언을 떠올리며 바이시큐를 운영한다”고 말했다.
바이시큐가 개발한 동명의 스마트 잠금장치 바이시큐는 스마트폰으로 잠그고 풀 수 있는 자전거 자물쇠에 자동차 계기판 역할을 더한 장치다. 외부에서 충격을 주면 자전거 주인의 스마트폰과 바이시큐에서 비상 알람이 울리도록 한 게 기본 기능이다. 여기에 스마트폰으로 실시간 주행속도, 거리, 소모 칼로리, 경사, 바닥 상태 등을 알려주는 자전거용 계기판 기능을 더했다. 바이시큐의 무게는 400g, 예상 가격은 11만원대로 올 상반기 출시될 예정이다.
아울러 올해가 가기 전까지 서울시의 ‘따릉이’나 중국의 ‘모바이크’처럼 공유자전거에 부착할 기업간거래(B2B) 제품을 선보일 계획이다. 기존 소비자용 바이시큐에 위성항법시스템(GPS) 기능을 보강해 공유자전거 이용자가 자전거 위치를 스마트폰으로 파악하고, 자전거를 훔칠 수 없게 할 예정이다. 바이시큐를 사용하면 현재 따릉이처럼 자전거 거치대를 따로 만들 필요가 없고 실시간 주행속도 측정 등 여러 부가 기능을 활용할 수 있게 된다.
바이시큐는 국내보다 외국 시장 진출에 더 집중하고 있다. 특히 자전거 강국인 일본과 미국이 눈여겨보는 시장이다. 바이시큐는 지난해 10월 미국 유명 크라우드펀딩 업체 ‘킥스타터’에서 35일 동안 ‘바이시큐’ 예약판매를 시작해 애초 목표량의 배인 600여개를 팔았다. 일본에서는 현지 공유자전거 업체로부터 납품 계약을 맺자는 러브콜을 받고 있다.
바이시큐의 모태는 2016년 5월 이 대표가 만든 창업 동아리다. 이 대표 등 아주대 공대생 4명이 학교 앞 카페에서 커피를 시켜놓고 제품 바이시큐의 원형을 설계했다. 한 달 운영비는 4명이 5만원씩 갹출한 20만원이었다. 겉으로 보기엔 여느 대학 조모임과 비슷했지만 4명 모두 적당히 ‘이력서용’ 경력만 만들고 그만둘 생각은 없었다. 바이시큐는 설립 다음달 공모전 지원하듯 도전한 경기창조경제혁신센터의 창업지원 행사에서 가능성을 인정받았다. 이후 스타트업 액셀러레이터의 투자와 중소벤처기업부의 정책자금 지원 등을 받아 운영비를 마련했다.
바이시큐는 도전 역사의 ‘결정적 순간’으로 2016년 12월 말 세계 IT 전시회 모바일월드콩그레스(MWC)에 지원했을 즈음을 꼽는다. 당시 시제품도 없었던 바이시큐는 회로와 프로그램도 들어 있지 않은 ‘속 빈 강정’인 바이시큐를 완성된 시제품인 것처럼 꾸며 MWC에 지원했다. 일단 참가 승인을 받았지만 눈앞이 캄캄했다. 2개월 밤낮을 일해 겨우 시제품을 만들었다. 하지만 부스 공개 당일까지 이따금씩 블루투스 연결이 끊기고 잠금장치가 안 잠기는 미완성품이었다. 그래도 태연한 척 제품을 번갈아 바꿔가며 관람객들을 끌어모았다.
‘맨땅에 헤딩’ 같은 도전은 또 있었다. MWC 공식 미디어 MWL TV에 대뜸 메일을 보내 스튜디오에 서고 싶다고 했다. 기대 이상으로 MWL TV는 흔쾌히 승낙했고 바이시큐는 미완성 제품을 생방송으로 소개하는 행운을 잡았다. 중국 유명 스마트폰 업체 화웨이 등이 오르던 무대에 막 걸음마를 뗀 기업이 선 것이다. 바이시큐는 이 무대에서 큰 관심을 받았다.
이 대표는 “도전은 ‘하면 좋은 게’ 아니라 ‘해야만 하는 것’이라고 느낀다”며 “무모해 보여도 우선 부딪쳐야 사람도 기업도 한 발 더 내디딜 수 있다”고 강조했다.
오주환 기자 joh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