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화폐(암호화폐) 규제를 둘러싸고 정부와 투자자들 간 갈등이 계속되고 있다. 정부는 시장을 양성화·투명화하는 쪽으로 규제 방향을 잡았지만 여전히 가상화폐 투자가 투기라는 인식이 강하다. ‘거래소 폐쇄’라는 극약처방도 배제하지 않겠다는 방침이다. 반면 투자자들은 정부가 시장에 일관된 신호를 보내지 못하면서 혼란만 가중시키고 있다고 반발하고 있다.
◇김동연 “거래소 폐쇄는 살아있는 옵션”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16일 tbs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해 “가상화폐 투자는 비이성적 투기가 많이 돼 어떤 형태로든 합리적 규제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 부총리는 “거래소 폐쇄도 살아있는 옵션”이라며 “조속한 시일 내에 국민이 보고 행동할 수 있는 종합대책을 내겠다”고 했다. 경제 컨트롤타워인 부총리가 공중파 라디오에 직접 출연해 현안에 대한 정부 방침을 설명하는 것은 이례적이다.
전날 국무조정실은 ‘가상통화에 대한 정부 입장’을 통해 과도한 가상통화 투기와 불법행위에 대해서는 강력히 대응하되, 블록체인 기술에 대해서는 연구·개발 투자를 지원한다는 원칙을 세웠다. 또 시세조작, 자금세탁, 탈세 등 거래 관련 불법행위에 대해서는 엄정 대처하겠다고도 했다. 하지만 “가상통화는 법정화폐가 아니며 어느 누구도 가치를 보장하지 않는다”고 못 박음으로써 부정적 인식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문제는 ‘가상화폐는 투기’라는 정부의 인식이 강하다보니 시장에 전달하는 메시지가 분명치 않다는 점이다. ‘투기 억제, 기술 발전’의 투트랙을 강조하고 있지만 여의치 않을 경우 언제든 가상화폐 거래소를 폐쇄할 수 있다는 으름장을 놓고 있다. 이 때문에 이달말로 예정된 가상화폐 실명거래 시스템 도입 전까지는 시장의 혼란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국무조정실에 이어 김 부총리도 거래소 폐쇄 옵션을 배제하지 않겠다고 발표한 이후 가상화폐 가격은 급락하고 있다. 가상화폐 거래소 빗썸에 따르면 오전 10시 현재 시총 2위 리플 가격은 20% 이상 하락했고, 이더리움과 비트코인 캐시 역시 13% 이상 급락중이다. 시총 1위 비트코인 가격도 8% 이상 하락하고 있다.
◇규제반대 국민청원 20만 돌파
정부의 ‘오락가락 규제 방침’이 계속되자 투자자들은 청와대 국민청원으로 실력 행사에 나섰다. 지난달 28일 시작된 ‘정부는 국민에게 단 한 번이라도 행복한 꿈을 꾸게 해본 적 있습니까’라는 가상화폐 규제 반대 청원에는 16일 오전 9시 현재 20만1000여명이 참여해 답변 요건을 채웠다. 국민청원은 30일 이내 20만명 이상 참여 요건을 갖추면 청와대 답변을 받을 수 있다. 시한을 열흘 가량 남겨두고 요건이 충족된 것은 현재 가상화폐 규제 방침에 대한 투자자의 불만이 그만큼 많다는 것으로 읽힌다.
청원글 작성자는 “국민들은 바보가 아니다. 시대 흐름상 가상화폐는 4차 혁명이 맞다고 판단되기에 투자를 하는 것”이라며 “정부가 정상 투자자들까지 불법 투기판에 참여한 사람들로 매도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 작성자는 또 “거래실명제도, 세금 부과는 당연히 이뤄져야 하는 제도이므로 반대하지 않는다”며 “선진국에서 이미 가상화폐에 투자하고 발전해가는 상황에서 대한민국만 타당하지 않은 규제로 경제가 쇠퇴하지 않길 바란다”고 했다.
정부가 가상화폐에 대한 미숙한 대응을 해놓고 투자자에게 책임을 돌린다는 비판도 나온다. 금융소비자원은 “현재 가상화폐 사태는 시장과 투자자의 문제 이전에 정부의 금융정책이나 가상화폐 준비가 없는 무능이 원인”이라며 “국내 가상화폐 시장의 문제가 있다고 해서 거래소 폐쇄를 운운하는 것은 현실성 없는 정책”이라고 비판했다.
백상진 기자 shark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