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약이 무효 저출산 대책
연간 출생아 36만명도 위태
정부 예측보다 14년 더 빨라
눈치보는 ‘육아휴직’ 등 한계
기존 정책 사실상 실패
文 정부, 생애주기별 대책 전환
지난해 출생아 수는 36만여명으로 그나마 지켜온 40만명선이 무너졌다. 정부 예상보다 무려 14년이나 빠른 것이다. 중복 출생신고 등을 감안하면 36만명선도 지키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인구 절벽’을 막기 위해 2006년부터 100조원 넘게 쏟아부었지만 백약이 무효였다. 이에 문재인정부는 대대적인 저출산 대책 재정비에 착수했다. 생애주기별 맞춤형 대책으로 실효성을 높이는 데 초점을 맞췄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그동안 정책이 왜 실패했는지를 현장 중심으로 정부가 다시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15일 행정안전부의 주민등록 기준 출생아 수 현황에 따르면 지난해 태어난 아이는 36만2867명으로 집계됐다. 2016년 41만1859명에서 11.9%(4만8992명) 감소한 것으로 사상 최대 감소폭이다. 2016년의 경우 전년 대비 3만2239명 줄었다. 게다가 주민등록 기준 통계의 경우 중복 출생신고를 거르지 못한다는 한계가 있다. 때문에 2월 발표 예정인 통계청의 출생아 수 통계는 더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 실제 통계청은 지난해 출생아 수가 35만6000명에 그칠 것으로 추계하고 있다.
출생아 수 감소분의 절반은 수도권에서 발생했다. 지난해 서울 출생아 수는 6만6282명으로 전년 대비 1만436명 감소했다. 경기도 역시 1만1758명 줄어든 9만5547명으로 10만명선을 지키지 못했다.
2016년 통계청은 장래인구추계를 내면서 출생아 수가 40만명 밑으로 떨어지는 시점을 2031년으로 내다봤었다. 통계청 관계자는 “당시 출생아 수가 밑바닥을 쳤다고 봤고, 어차피 아이를 가지기로 마음먹은 가임기 여성들의 출산율이 회복세를 탈 것으로 봤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현재 저출산 상황은 당시 추계에서 내놨던 ‘최악의 시나리오’를 따라가고 있다. 가장 비관적인 상황을 가정한 ‘저위추계’에서 40만명 붕괴 시점은 2017년이었다. 그마저도 합계출산율(여성 1명이 평생 낳을 수 있는 평균 자녀 수)을 1.14명으로 잡고 있어 현 상황보다 낙관적으로 봤다. 통계청은 지난해 합계출산율을 1.06∼1.07명으로 예상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그동안의 저출산 정책들이 실패한 이유를 다시 곱씹어봐야 할 때라고 지적한다.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정책대학원 최창용 교수는 “이미 나올 수 있는 정책은 다 나왔지만 문제가 해결되고 있지 않다”며 “이는 정책이 민간기업 등 현장에서 제대로 구현되지 않는다는 방증”이라고 지적했다. 예컨대 회사 눈치를 보면서 육아휴직을 사용해야 하는 분위기가 개선되지 않는 한 정부의 육아휴직 장려책은 효과를 볼 수 없다는 말이다.
실제 전국경제인연합회가 2016년 전국 직장인 500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응답자의 44.4%는 정부의 일·가정 양립 정책이 실제 기업에서 제대로 적용되지 않고 있다고 답했다. ‘상사 및 동료들의 눈치’(49.1%)와 ‘승진·평가 등에 불이익’(20.3%) 등이 주요 이유로 꼽혔다. 정부의 저출산 정책과 민간기업 문화 간 괴리가 단적으로 드러나는 예다.
정부 정책도 중구난방이었다. 정부는 2006년부터 저출산 문제 해결을 위해 100조원 넘는 예산을 투입했다. 그러나 구심점 없이 13개 유관 부처가 제각각 정책들을 쏟아내면서 유기적 연계에 실패했다. 뿐만 아니라 저출산 문제를 단순히 보육 차원에서 접근하면서 실효성 역시 떨어졌다는 지적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위원들과 가진 간담회에서 “기존 대책들은 실패했다고 인정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 것도 이런 맥락이다.
정부는 저출산 대책을 생애주기별 맞춤형 대책으로 재구성하고 있다. 청년들이 결혼 자체를 꺼리게 만드는 일자리 문제와 주택 문제부터 출산 후 보육을 위한 직장어린이집 확충, 여성 ‘독박 육아’를 막기 위한 ‘아빠 육아휴직 보너스 제도’까지 출산과 관련된 모든 정책을 촘촘히 설계한다는 목표다.
한국경제연구원 유진성 국가비전연구실장은 “저출산의 큰 원인 중 하나는 혼인 자체가 감소한다는 데 있다”며 “정책이 효과를 보기 위해서는 단기적인 보육 문제 해결에만 집중할 게 아니라 혼인과 노동 문제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목표를 재설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세종=정현수 기자 jukebox@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