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서구 아미동에서 1965년 4월 1일 태어난 박 열사는 부산 혜광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84년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언어학과에 입학해 언어학과 학생회장으로 활동했다. 1986년 노학연대 투쟁에 활동하던 중 1986년 4월 1일 청계피복노조 합법화 요구 시위로 구속됐고, 같은 해 7월 15일 징역 10개월(집행유예 2년)을 선고 받고 출소했다.
2005년 4월 방송된 MBC ‘이제는 말할 수 있다’에 따르면, 박 열사는 공장에 위장취업한 뒤 3주간의 공장 활동 기간 동안 공장의 위치나 근로조건 등을 꼼꼼히 기록한 ‘공장활동 보고서’를 남기기도 했다.
출소 후에도 학생운동을 이어가던 박 열사는 1987년 1월13일 자신의 하숙집에서 치안본부 대공분실 수사관에게 연행됐다. 경찰이 ‘민주화추진위원회사건’ 관련 수배자인 박종운의 소재 파악을 위해 그 후배인 박 열사를 불법으로 체포한 것이다.
다음날 14일 대학문화연구회 선배인 박종운의 소재를 묻는 질문에 박 열사가 계속 답하지 않자 물고문·전기고문이 시작됐고 결국 박 열사는 509호 조사실에서 사망했다.
전두환 정권은 이 사건을 조직적으로 은폐하려고 했으나 우연히 사건의 단서를 접한 중앙일보 신성호 기자의 ‘경찰에서 조사받던 대학생 쇼크사’라는 짧은 기사 이후로 조금씩 알려지기 시작했고, 언론·의학·종교계의 끈질긴 노력으로 진상이 밝혀지게 된다.
박 열사 사망은 이후 1987년 6월 시민항쟁의 주요한 계기가 된 사건으로 평가받는다.
그가 세상을 떠난 지 31년, 주말엔 박 열사를 추모하는 행사가 곳곳에서 열릴 예정이다. 서울 관악구청은 13일 오후 박 열사의 하숙집이 있었던 관악구 대학5길을 ‘박종철거리’로 지정하고 선포식을 연다. 또 하숙집터 맞은편에 세워진 박 열사의 동판 제막식도 함께 개최된다.
민주열사박종철기념사업회도 14일 오전부터 경기 남양주 마석 모란공원 민주열사묘역에서 박 열사 추모제를 연다. 행사에는 박 열사 고문치사 사건의 축소조작을 폭로한 이부영 전 의원 등 관련자들과 김세균 민주열사박종철기념사업회장, 영화 ‘1987’ 제작사 우정필름 이우정 대표, 서울대와 부산 혜광고 재학생 등 100여명이 참석해 고인의 넋을 기린다. 이어 옛 남영동 대공분실인 서울 용산구 경찰청 인권센터 509호 조사실을 방문해 헌화하고 박종철 장학금을 전달할 예정이다.
신재희 기자 jsh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