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바이 이강석②]“다시 태어나도 스피드스케이터… 세계新 도전할 것”

입력 2018-01-12 19:33 수정 2018-01-13 00:26
이강석(33)이 12일 서울 태릉국제스케이트장에서 열린 전국동계체육대회 남자 일반부 500m 경기에서 힘차게 질주하고 있다. 이날 100m 구간까지의 기록만큼은 이강석이 1위였다. 최현규 기자

“내일 마지막 경기를 펼치는데 기분이 어떠냐”고 묻자 그는 오래도록 말이 없었다. 그는 “수백 번을 탔던 500m인데, 선수로서는 이제 영원히 마지막이다”고 겨우 입을 열었다. 그는 “스케이트 선수가 됐던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며 “다시 태어나도 세계신기록에 도전하겠다”고 했다.


스피드스케이팅 전 국가대표 이강석(33)이 12일 전국동계체육대회를 끝으로 빙판을 떠났다. 곡선주로를 빠져나가는 그에게 이강석의 부모는 “끝까지”라고 외쳤다. 경기를 마친 뒤 서울 태릉국제스케이트장에서 만난 그는 “후회 없이 달렸다”고 말했다. 그가 2007년 기록한 34초20은 아직까지도 한국 최고기록으로 남아 있다. 그와의 인터뷰는 지난 11일과 12일 이뤄졌다.



-은퇴의 순간, 어떤 경기 어떤 순간이 최고의 장면으로 되새겨지는가
“2007년 세계신기록을 세우던 그 날이다(이강석은 2007년 3월 미국 솔트레이크시티 올림픽 오벌에서 열린 세계종별선수권대회에서 34초25를 기록, 세계신기록을 달성). 모든 선수들이 컨디션이 좋았고, 모든 선수들이 세계신기록을 노렸던 날이다. 얼음판 상태가 좋았기 때문이었다. 1차 레이스는 4위를 했다. 그런데도 느낌이 너무 좋아 ‘2차까지 잘 하면 3위를 하겠다’는 소소한 욕심을 냈다. 2차 레이스를 탔는데 너무 잘 나갔다. 딱 들어갔는데, 전광판에 폭죽이 터지고, ‘월드 레코드’라는 말이 나왔다. 그 직전 세계신기록이 일본의 조지 카토라는 라이벌 선수였는데, 그 이름을 떼고 내 이름을 넣어 솔트레이크시티 오벌에 새 기록판을 달았다.”

-그날 빙판을 질주하던 느낌이 남아 있는가?
“아직도 스케이트를 타다 보면 그때 그 느낌이 문득 문득 다가온다. 미국의 터커 선수와 탄 레이스였다. 힘을 뺀 상태에서 테크닉 구사가 잘 됐다. 마지막 3.4 코너를 빠져나올 때 넘어질 것처럼 불안한 순간이 다가왔지만, 부드럽게 중심이동이 됐다. 넘어지려 한다고 급히 제어하려다 실수가 많았는데, 똑같이 속도가 나는 상황에서도 침착하게 안정적인 동작으로 빠져나왔다. 너무 빠르니까 왼발이 불안했는데, ‘참고 들어가면 좋은 기록 날 것 같아’ 하는 생각이 들었다. 중력을 이기려 하지 않고 몸을 맡기고 최대한 테크닉을 구사했는데 그게 맞아서, 너무 자연스럽게 나올 수 있었다. 그 경기만큼은, 모든 코치들이 ‘어떻게 코너에서 저 속도로 물 흐르듯 나오느냐’고 했다.”

-그날 100m 기록이 본인의 베스트였다.
“그날 9초48을 탔다. 대한민국에 100m 9초4는 나뿐이다.”

-오늘도 100m는 함께 뛴 김성규(27·의정부시청)보다 빨랐다.
은퇴경기를 마친 이강석(33)이 제갈성렬 의정부시청 빙상단 감독과 포옹하고 있다. 최현규 기자

“9초8쯤 됐다. 이번 올림픽 나가는 선수들보다도 빨랐다. 500m 중에서도 스타트 100m는 ‘이강석은 천부적이다’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적어도 100m는 아직도 나만큼 빠른 사람은 없을 것이라는 자부심. 만일 내 100m를 이기려면 내가 가르친 선수가 아닌 한 어렵다는 자부심. 오늘 다른 코치들도 ‘네가 100m는 타고났다. 훈련 안 하고도…’라는 반응들이었다.”

-하지만 100m 이후에는…
“역시 숨이 차고 다리가 굳더라. 실수도 했다.”

-실수란?
“발을 놨을 때(스케이트가 빙판과 접촉할 때) 날이 흔들리는 장면이 있었을 것이다. 불안하게 되고, 속도가 죽게 된다. 넘어질뻔 하기도 했다. 몇 번이나 그런 흔들림이 느껴져서 ‘힘이 없어졌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끝까지 타자. 후배들에게도 보여 주고 모든 사람들에게 보여주자’ 생각하며 끝까지 밀었다. 모든 힘을 다해서. 후회 없이 탔다.”

-오늘 함께 뛴 김성규는 의정부시청 빙상단에서 본인이 지도하는 선수다.
“수년간 기록이 침체돼 있었는데 나의 지도 이후 기록이 쭉쭉 올라가고 있다(웃음). 기대해도 좋을 선수다. 지난해 국내 10위권 선수였다면 이제 3위권이다. 오늘은 김성규가 평소 자신의 기록보다 좋지 못했다. 나랑 달려서 내게 ‘말린’ 것 같다(웃음).”

-500m란 어떤 의미인가.
“변수가 많은 종목이다. 나를 보라. 세계랭킹 1위든 뭐든 중요치 않다. 압박감 없이 최대한 자신의 컨디션을 유지하며 편안하게 레이스에 온힘을 쏟아부은 선수가 1위를 한다. 모태범의 금메달을 다들 예상했던가? 모태범이 1위를 했는데 언론에 내 사진이 나온 적도 있다. 500m에 참가하는 선수들이 ‘나는 참가에 의의를 둘래’ 하는 생각을 안 했으면 좋겠다. 선수 스스로 겸손하기보다는, 한번 사고를 쳐 보자는 생각을 해야 한다. 500m는 그날의 컨디션에 따라 확 치고 올라갈 수 있다.”

-후배들에게 어떤 말을 해주고 싶나.
“나는 혼자 탄 게 아니다. 나는 조지 카토(일본)를 분석해서 그의 기록을 깼다. 그의 장점이 필요했기 때문에 그가 타는 모습을 분석했다. 지금 선수들은 남이 잘 하는 것을 안 보려 하는 듯하다. 내가 타고나서 잘 탔던 게 아니라, 저 선수의 어떤 걸 흡수해야 할지 생각했기 때문에 좋은 성적을 낼 수 있었다.”

-운동일지를 쓰기로 유명하다.
“쓸데없는 내용이라 생각되더라도… 오늘 잠을 몇 시간 잤는데 다리가 후들거렸다면 그 사실조차도 기록해야 한다. 결국 데이터다. 그걸 읽고 나서 몇 시간 자야 하나 생각할 수 있고, 안 후들거릴 수 있는 거다. 운동의 기록은 나중에 심리적인 위안도 준다. 지금 잘 타는 선수들이 내 이야기를 들었으면 좋겠다. 랭킹 1위의 순간은 금방 지나가고, 무섭게 따라잡힌다. 할 수 있을 때 좀더 분석하고 연구하는 것이 필요하다. 내가 잘 한다고 안주하지 않고, 기록하고 발전해서 더욱 압도적인 수준이 돼야 한다.”

-의정부시청 소속으로만 쭉 선수생활을 했다.
“내가 그냥 바보같이… 의정부에서 태어난 내가 의정부를 빛냈다는 생각을 주제넘게 해 봤다. 그래서 다른 팀에서의 스카웃 제의가 있었는데도 혼자만의 책임감으로 의정부를 떠나지 않았다. 고향팀에 대한 소속감, 애정이 있었다. 앞으로도 의정부시청 빙상단 코치로서, 의정부가 제일 잘 타도록 하겠다. 안병용 시장님의 전폭적인 지지에 대해서도 감사드린다. 빙상단에 관심이 많으시고 격려도 많이 해 주신다. 빙상은 의정부가 메카라는 생각을 갖고 계신다.”

-이제 빙판을 떠난다. 행복한 선수였나.
“내게 ‘500m 간판'이라 칭찬해주시는 분들이 많았다. 그렇게 생각해 주신 분들 한분 한분께 감사드리고 싶다. 비록 은퇴하지만 나의 모든 노하우와 기술들을 후배들에게 다 전달해서, 나의 기록을 깨도록 만들겠다. 스피드스케이팅의 단거리 붐을 끌어올리고 싶다. 이강석이 가르친 아이들이 이상화 모태범 이후의 세대교체를 일으키게 하겠다. 33살까지 500m 빙판 위에서 버티게 해 주셔서 감사하다.”

-다시 태어나도 스피드스케이팅 선수의 길을 걷겠는가.
“그렇다. 또 세계신기록에 도전할 것이다.”









이경원 이상헌 기자 neosar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