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 국립망향의동산에 세워진 한국인의 일제 강제노역과 조선위안부 문제를 사죄한 내용이 담긴 '사죄비'를 '위령비'로 무단 교체한 일본인 60대 남성에게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이 선고됐다.
대전지법 천안지원 형사3단독 김상훈 판사는 11일 오후 공용물건 손상죄와 건조물침입 혐의로 한국 검찰에 기소된 일본인 A(69)씨에 대해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을 통해 "A씨는 사죄비의 소유가 누구에게 있는지 명확하지 않아 공용물건 손상 혐의가 적용되지 않는다고 주장하지만, 한국 형법은 소유주와 상관없이 공용물건을 훼손하면 범죄가 성립해 A씨의 유죄를 인정할 수 있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이어 "A씨는 3차례에 걸쳐 한국에 입국해 사죄비가 있는 천안 망향의동산을 사전답사하는 등 범행을 치밀하게 준비해 죄질이 매우 불량하다"며 "다만 A씨가 고령이고 자진 입국해 경찰, 검찰 수사를 받고 장기간 일본으로 출국하지 못하고 있다"고 양형이유를 설명했다.
A씨는 지난 3월 20일 오후 9시쯤 천안 국립망향의동산 내 무연고 묘역에 있는 강제노역 '사죄비'에 '위령비'라고 쓰인 석판을 덧대는 방식으로 훼손한 혐의를 받고 있다.
공공물건 손상 등의 혐의로 지난달 21일 한국 법정에 선 A씨는 당시 무단 교체 사실은 인정하지만, 사죄비의 소유권이 일본인으로 알고 있어 명확한 소유권을 확인하고 싶다며 사실상 혐의를 부인했다.
A씨는 "'사죄비'를 세운 일본인 아들의 요청으로 (본인이) 변경한 것은 인정한다"며 "하지만 일본 내에서는 이 사죄비의 소유가 국가가 아닌 사죄비를 세운 아들로 인식하고 있다. 사죄비의 소유권이 불분명해 이를 명확하게 하고 싶다"고 변론했다.
애초 '사죄비'를 세운 일본인의 아들이라고 자처한 일본인 B(68)씨도 A씨에게 '위령비'로 무단 교체를 교사한 혐의로 함께 검찰에 기소됐지만 이날 법정에 나오지 않았다.
앞서 검찰은 A씨에 대한 첫 공판에서 "국제적으로 인정한 일제의 강제노역과 위안부 문제 등 사죄의 글을 세긴 '사죄비'를 훼손해 한·일 갈등 등의 문제를 유발할 수 있다"며 징역 1년을 구형했다.
천안 국립망향의동산에 세워진 '사죄비'는 태평양전쟁에서 조선인을 강제노역하고 위안부 동원 임무를 맡았던 일본인 요시다씨가 1983년 한국인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 참회의 뜻으로 망향에 세웠다.
이 비는 정부가 일제에 강제로 징용됐거나 위안부 등으로 끌려갔다가 일본 등 해외에서 원혼이 된 동포 중 연고가 없는 이들을 모셔 놓은 '무연고 합장 묘역' 내 유일하게 눕혀져 있다.
하지만 이 사죄비는 한글로 '위령비, 일본국, 후쿠오카현·요시다 유우토'라고 쓰인 '위령비'로 뒤바뀌었다.
천안 국립망향의동산은 무단 교체한 위령비를 철거하는 한편, 일본인의 만행을 알리기 위해 '사죄비'와 철거한 '위령비'에 이어 안내판을 제작해 함께 일반인에게 공개하고 있다.
최민우 기자 cmwoo1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