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가상화폐에 대한 전방위 압박에 나서면서 투자자들과의 갈등이 심화되고 있다. 정부는 가상화폐 거래를 실제 가치에 기반하지 않은 투기행위로 보고 거래소 폐쇄까지 검토하겠다는 입장이다. 반면 투자자들은 정부가 정상적인 투자마저 불법으로 매도하며 무분별하게 칼을 들이댄다고 반발하고 있다. 정부의 파상공세에 이날 가상화폐 가격은 줄줄이 급락세를 나타냈다.
◇박상기 “가상화폐는 도박…거래소 폐쇄”
박상기 법무부 장관은 11일 정부과천청사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가상화폐 거래소 폐쇄를 위한 입법 준비에 착수하겠다고 밝혔다. 박 장관은 “지금 가상화폐 거래는 사실상 투기·도박과 비슷한 양상”이라며 “가격 급등락이나 원인을 보면 다른 상품의 거래나 가격 폭락과는 완전히 차원이 다르다. 버블이 붕괴됐을 때 피해 규모가 클 것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박 장관의 이 같은 발언은 앞서 지난달말부터 범정부 태스크포스에서 논의된 가상화폐 대책과 맥락을 같이하고 있다. 금융당국은 가상화폐 거래 실명제 실시와 함께 타행을 통한 거래자금 입금을 엄격히 제한하는 대책을 발표한 바 있다. 정부는 해외 가상화폐에 비해 한국 가격이 지나치게 높게 형성되는 ‘김치 프리미엄’ 역시 투기적 성격이 강해졌기 때문이라고 보고 있다.
박 장관은 “언론 보도에서 ‘김치 프리미엄’이 등장하는 것도 가상화폐가 비정상적인 것이라는 평가를 내린 것”이라며 “우리나라 가상화폐 거래는 긍정적 측면보다 산업 발전과 개인의 금전적인 면에서 피해를 유발할 수 있는 굉장히 위험한 거래 형태”라고 지적했다.
◇“규제 반대” 청와대 청원 봇물
반면 ‘가상화폐 광풍’에 뒤늦게 뛰어든 투자자들은 정부의 규제 방침에 반대하고 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지난달말 시작된 규제 반대 청원이 이날 오후 1시쯤 4만명을 돌파했다.
청원글 작성자는 “국민들은 바보가 아니다”며 “시대 흐름상 가상화폐는 4차 산업혁명이 맞다고 판단되기에 투자를 하는 거지 마구잡이로 하는 게 아니다”고 주장했다. 이어 “정부가 정상적인 투자자들까지 불법 투기판에 참여한 사람들로 매도한다”며 “정부는 국민을 보호한다고 생각하지만 국민들은 정부가 우리 꿈을 빼앗아간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가상화폐 규제를 담당하고 있는 최종구 금융위원장과 최흥식 금융감독원장을 해임하라는 청원도 확산되고 있다. 청원글 작성자는 “암호화폐 투자자는 관료들이 말하는 개돼지가 아니라 문재인 대통령을 만든 핵심지지층인 국민”이라며 전방위 압박에 나선 정부당국을 성토했다.
◇충격받은 가상화폐, 줄줄이 급락
거래소 폐쇄 등의 정부 압박이 거세지면서 이날 가상화폐는 20% 안팎 급락중이다. 국내 최대 가상화폐 거래소 빗썸에 따르면 시총 1위 비트코인은 오후 2시30분 현재 코인당 20%가까이 하락해 1800만원선이 무너졌다. 최근 한달간 상승률이 300%를 넘었던 이더리움도 26% 이상 가격이 떨어졌고, 리플도 24% 이상 하락했다. 다른 가상화폐들도 25~30% 급락하는 등 약세를 면치 못했다.
주요 가상화폐 시장인 한국의 가격 급락은 전세계 시장에도 영향을 미쳤다. 가상화폐 정보업체 코인데스크에 따르면 박 장관의 거래소 폐쇄 발언이 나온 후 비트코인 가격은 12% 이상 떨어지는 등 충격파가 확산됐다. CNBC는 “한국의 가상화폐 거래는 도박과 비슷하다”며 “한국의 비트코인 가격은 전세계 평균 가격보다 31%나 높아 ‘김치 프리미엄’이라 불린다”고 소개했다.
백상진 기자 shark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