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혈질 이선권은 부드러웠다…남북 고위급 회담 이모저모

입력 2018-01-10 05:00
이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이 9일 판문점 MDL(군사분계선)을 건너 오면서 남측 연락관과 악수를 나누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남북 고위급 회담 북측 수석대표인 이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은 9일 회담 시작 전부터 적극적으로 나왔다. 그는 “회담 실황을 실시간으로 중계하자”며 우리 측에 깜짝 제안을 했다. 25개월 만에 열린 남북 회담의 주도권을 잡기 위한 기선제압용 제안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북한 대표단의 평창 동계올림픽 참가, 남북 군사당국회담 개최 등을 담은 공동보도문은 회담 개시 10시간여 만에 나왔다. 예년의 밤샘 협상에 비교하면 순탄하게 협상이 이뤄진 것이다.

◇이선권, 작심한 듯 “회담 확 드러내놓자”

이 위원장은 판문점 평화의집에서 열린 고위급 회담 전체회의 모두발언에서 “회담을 지켜보는 내외의 이목이 강렬하고 또 기대도 크다”며 “우리 측은 (회담을) 전체 공개해서 실황을 온 민족에 전달하면 어떨까 하는 견해”라고 말했다. 이 위원장은 “기자 선생들도 지금 다 관심이 많아서 오신 것 같은데 확 드러내놓고 하는 게 어떠냐”고 제안했다.

남북관계 역사상 회담 장면을 실시간으로 언론에 공개한 전례는 없다. 우리 측 수석대표인 조명균 통일부 장관은 “공감한다”면서도 “아무래도 모처럼 만나 할 얘기가 많은 만큼 통상 관례대로 회담을 비공개로 진행하자”고 답했다.

회담장 분위기는 전반적으로 화기애애했다. 오전 전체회의 시작 전 조 장관은 이 위원장에게 “날씨가 추운데다 눈이 내려서 평양에서 내려오시는 데 불편하지 않았느냐”고 물었다. 이 위원장은 “이번 겨울이 여느 때 없이 폭설도 많이 내리고 또 강추위가 지속적으로 계속되는 게 특징이다. 그래서인지 온 강산이 꽁꽁 얼어붙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자연계의 날씨보다 북남 관계가 더 동결 상태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라고 했다.

◇부드러웠던 이선권

이 위원장은 자신이 ‘다혈질’이고 ‘직설적’이라는 남측 언론 보도를 염두에 둔 듯 부드러운 이미지를 연출하는 데 공을 들였다. 그는 조카 얘기를 2000년 6·15 남북공동선언과 연관 지으며 “뒤돌아보면 6·15 시대의 모든 것이 귀중하고 그리운 것이었다. 생각해보면 참으로 아쉬운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조 장관이 초등학생 시절 스케이트 선수로 활동했다는 우리 언론 보도도 언급했다.

조 장관은 “시작이 반이라는 말이 있다. 오랜 남북관계 단절 속에서 회담이 시작됐다”면서 “첫걸음이, 시작이 반이라는 마음으로 의지와 끈기를 갖고 회담을 끌어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조 장관은 “동시에 첫 술에 배부르랴 하는 얘기도 있다. 그런 것도 감안해 서두르지 않고 끈기를 갖고 하나하나 풀어갔으면 하는 마음을 갖고 있다”고 했다.


회담은 양측 대표단 5명씩 모두 10명이 참석한 전체회의와 남북 수석대표 접촉에 이어 실무접촉(4대 4 또는 3대 3), 수석대표 접촉, 종결회의 등 순으로 진행됐다. 북측 대표단은 오전 회담을 마친 후 오후 1시쯤 북측 통일각으로 넘어가 점심식사를 한 후 오후 2시14분쯤 다시 도보로 남측 회담장에 돌아왔다.

북측 대표단은 회담에 앞서 오전 9시30분쯤 걸어서 군사분계선(MDL)을 넘어 회담장인 남측 평화의집에 도착했다. 이 위원장은 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은 남측 수석대표인 조명균 통일부 장관에게 “(장관 취임을) 축하합니다”라며 인사말을 건넸다.

북측 대표단 지원단에는 맹경일 통일전선부 부부장이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다. 대남 라인 핵심인 맹 부부장은 2015년 평양을 방문한 이희호 여사를 공항에서 영접했다.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 당시 황병서 최룡해 김양건 등 북한 최고위급 3인방이 전격 방남했을 때 대표단에 포함됐다.

◇‘민심’ ‘천심’ 주고 받으며 화기애애

조명균 장관과 이선권 위원장은 ‘천심(天心)’과 ‘민심(民心)’을 거론하며 회담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 위원장은 회담 전체회의 모두발언에서 “민심과 대세가 합쳐지면 천심이라고 했다”며 “이 천심에 받들려 북남 고위급 회담이 마련됐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북남대화와 관계 개선을 바라는 민심의 열망은 두껍게 얼어붙은 얼음장 밑으로 더 거세게 흐르는 물처럼 얼지도 쉬지도 않고 있다”고 표현했다. 이어 “회담을 주시하면서 큰 기대를 걸고 있는 온 겨레에게 새해 첫 선물, 값비싼 결과물을 드리는 게 어떠한가 하는 생각을 갖고 이 자리에 나왔다”고 했다.

조명균 장관은 적극 화답했다. 조 장관은 “남측도 지난해 민심이 얼마만큼 강한 힘을 갖고 있는지 직접 체험했다”고 말했다. 촛불집회와 탄핵을 통해 정권이 교체된 점을 언급한 것이다. 이어 “민심은 남북관계가 화해와 평화로 나가야 한다는 강한 열망을 갖고 있다는 것을 분명하게 잘 알고 있다”며 “민심이 천심이고 민심에 부응하는 방향으로 회담에 진지하고 성실하게 잘 임해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성은 김경택 문동성 기자, 판문점=공동취재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