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고위급 회담의 북측 수석대표로 나선 이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장이 9일 저녁 회담을 정리하는 마지막 접촉에서 남측에 ‘불만’을 표시했다. 두 가지였다. 이 위원장은 ①남측 대표단이 ‘비핵화’를 언급한 데 대해 강한 불만을 드러냈고 ②서해 군 통신선 개통 사실을 남측이 공개하며 시점을 잘못 알렸다고 지적했다.
두 가지 ‘불만 사항’은 모두 남한 언론이 관련 내용을 보도한 뒤에 제기됐다. 특히 군 통신선 개통 시점에 대해선 직접적으로 “언론에 잘못 알렸다”는 식의 문제제기를 했다. 이는 모두 북측이 남한 언론의 회담 보도를 면밀히 모니터링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만큼 ‘이번 회담이 어떻게 비쳐지느냐’에 매우 민감하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남북 고위급 회담의 ‘공동보도문’은 다음과 같이 작성됐다.
남북고위급회담이 2018년 1월9일 판문점에서 진행되었다. 회담에서 쌍방은 북측 대표단의 평창 동계올림픽경기대회 및 동계패럴림픽 대회 참가 문제와 온 겨레의 염원과 기대에 맞게 남북관계를 개선해 나가기 위한 문제들을 진지하게 협의하고 다음과 같이 합의하였다.
1. 남과 북은 남측 지역에서 개최되는 평창 동계올림픽대회 및 동계패럴림픽대회가 성공적으로 진행되어 민족의 위상을 높이는 계기로 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적극 협력하기로 하였다. 이와 관련하여 북측은 평창 동계올림픽대회에 고위급대표단과 함께 민족올림픽위원회대표단, 선수단, 응원단, 예술단, 참관단, 태권도시범단, 기자단을 파견하기로 하고, 남측은 필요한 편의를 보장하기로 하였다. 쌍방은 북측의 사전 현장 답사를 위한 선발대 파견문제와 북측의 평창 동계올림픽 참가와 관련한 실무회담을 개최하기로 하고, 일정은 차후 문서교환 방식으로 협의하기로 하였다.
2. 남과 북은 군사적 긴장상태를 완화하고 한반도의 평화적 환경을 마련하며 민족적 화해와 단합을 도모하기 위해 공도응로 노력하기로 하였다. 남과 북은 현 군사적 긴장상태를 해소해 나가야 한다는데 견해를 같이 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군사당국회담을 개최하기로 하였다. 남과 북은 다양한 분야에서 접촉과 왕래, 교류와 협력을 활성화하며 민족적 화해와 단합을 도모하기로 하였다.
3. 남과 북은 남북선언들을 존중하며, 남북관계에서 제기되는 모든 문제들을 우리 민족이 한반도 문제의 당사자로서 대화와 협상을 통하여 해결해 나가기로 하였다. 이를 위해 쌍방은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남북고위급회담과 함께 각 분야의 회담들도 개최하기로 하였다.
2018년 1월9일
판문점
북측의 평창올림픽 참가, 남북 군사회담 개최,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각 분야 회담 개최 등 ‘이산가족 상봉’을 제외한 큰 틀의 합의가 성공적으로 이뤄졌다. 그런데 북측이 여기에 ‘사족’을 달았다. 마지막 정리회담 자리에서 이선권 수석대표의 ‘불만’이 제기됐고, 남측은 이를 언론에 공개했다. 북측 대표의 불만을 남측이 공개했다는 건 북측이 그러기를 원했음을 시사한다.
남측 대표단이 밝힌 이선권 수석대표의 불만은 남측의 비핵화 언급과 군 통신선 개통 시점 문제였다. 남측 수석대표인 조명균 통일부 장관이 회담에서 비핵화란 용어를 쓴 것은 오전 전체회의 기조발언 때였다. 조 장관은 “상호 존중의 토대 위에서 협력하면서 한반도에서 상호 긴장을 고조하는 행위를 중단해야 한다”며 “조속히 비핵화 등 평화정착을 위한 대화를 재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평창올림픽 논의로 시작된 남북대화를 지속·발전시켜, 한반도 비핵화라는 어려운 과제 해결을 시도하자는 제안이었다. 문재인 대통령의 ‘한반도 평화구상’과도 궤를 같이한다.
북측은 당시 조 장관의 제안에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천해성 통일부 차관은 “우리 측의 기조발언에 포함된 내용에 대해 북측은 특별히 그 문제에 언급하거나 특별한 반응을 보이지 않고 경청하는 모습을 보였다”고 밝혔다. 천 차관은 ‘북한이 대북제재 완화나 개성공단 재개 등에 대해 언급했느냐’는 질문에 “명시적으로 이야기하지 않았다”고 답했다.
조 장관의 언급으로 비핵화 문제 등이 당장 남북대화 테이블에 오를 가능성은 희박했다. 남북 대화가 궁극적으로는 북한 핵문제를 해결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는 원칙적인 입장을 강조한 것이었다. 북한 역시 핵 문제를 주제로 남측과 설전을 벌이기보다는 언급을 자제하는 방식으로 대화 국면을 이어가겠다는 뜻을 보였다는 평가가 나왔다.
그런데 저녁 8시에 시작된 마무리 회담에서 이선권 대표가 이 부분을 문제 삼았다. 남측 대표단은 “이 대표가 강한 불만을 표시했다”고 전했다. 오전 기조발언에 저녁이 돼서야 반응을 보였다는 것이다. 이는 남한 언론에 ‘비핵화 언급’과 그에 대한 ‘북측 반응’이 충분히 보도된 뒤였다. ’남측의 비핵화 대화 제의를 북측이 경청했다’는 톤의 보도가 이어지자 북측 대표단이 ‘뉴스의 흐름’을 바꾸려 반응한 것일 수 있다. 그만큼 회담에서 합의되는 문구를 넘어 회담이 여론에 비치는 모습까지 북측이 신경 쓰고 있음을 말해준다.
군 통신선 개통 시점 문제는 더욱 그렇다. 이선권 대표는 “왜 그렇게 (언론에) 공개했느냐”고 남측 대표단에 불만을 드러냈다. 남측이 어떻게 공개했는지, 남한 언론에 어떻게 보도됐는지 확인하지 않았다면 제기할 수 없는 내용이었다. 북측은 서해 군 통신선을 이미 지난 3일 개통했는데 왜 ‘오늘’ 개통한 것처럼 전했느냐고 따졌다. 통신선이 개통됐다는 사실에 비하면 미시적인 부분일 수 있는 문제를 지적한 것이었다.
태원준 기자 wjt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