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 큰 대화’ 작심하고 나온 北… 2년만의 회담 ‘속전속결’

입력 2018-01-09 20:07
조명균 통일부 장관(왼쪽)과 이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이 9일 판문점 남측 평화의집에서 만나 악수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남북 고위급 정상회담은 속전속결로 진행됐다. 2년여 만에 마련된 협상 테이블에서 작심한 듯 시급한 의제를 원하는 결론으로 이끌어낼 때까지 한 나절이면 충분했다. 오전 10시 시작된 회담은 오후 8시 최종 종결회담에 들어갈 수 있었다. 1박2일 밤샘 협상마저 결렬됐던 2015년 12월 마지막 회담과 비교하면 매우 이례적이다.

남측 대표단은 9일 오전 8시45분 판문점 평화의집에 먼저 도착했다. 북측 대표단이 ‘걸어서’ 군사분계선(MDL)을 통과해 평화의집에 들어온 시점은 오전 9시30분. 회담은 이로부터 30분 뒤인 오전 10시부터 시작됐다. 남북은 약속한 시간을 정확하게 지켜 회담 테이블에 마주앉았다.

북측 수석대표인 이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 위원장은 모두발언에서 “내외 이목이 강렬하고 기대도 큰 만큼 우리 측은 (회담 내용을) 공개하고 그 실황을 온 민족에 전달하면 어떨까 하는 견해를 갖고 있다”며 “기자들도 관심이 많아 온 것 같은데 확 드러내놓고 그렇게(공개) 하는 게 어떤가”라고 말했다. 그의 ‘통 큰’ 발언에서 심상치 않은 회담 분위기는 이미 짐작되고 있었다.

남북 대표단은 오후 7시25분 수석대표 협의를 끝으로 정규 회담을 마무리지었다. 불과 9시간25분 만에 회담이 끝난 셈이다. 오찬을 위해 회담을 일시 중단했던 낮 12시20분부터 2시30분까지 2시간10분을 빼면 남북이 협상 테이블에서 대화한 시간은 7시간15분으로 볼 수 있다. 이어 오후 8시 최종 발표를 위한 마지막 접촉을 가졌다.

남북은 여기서 2018 평창동계올림픽의 북한 참가, 서해 군 통신선 복원 등을 논의했다. 고위급회담 남측 대표단원인 천해성 통일부 차관은 오후 브리핑에서 “오늘 회담 중 북측이 서해지구 군 통신선을 복원했다고 우리 측에 설명했다”며 “우리 측은 곧바로 서해지구 군 통신 선로를 확인했고, 그 결과 오후 2시쯤 서해지구 군 통신이 연결된 것을 확인했다. 현재 남북 군사 당국 간 서해지구 통신선을 통한 통화가 가능한 상황”이라고 밝혔다.

북한의 평창동계올림픽 참가 의사도 이 회담에서 확인됐다. 천 차관은 앞서 오전 11시30분쯤 시작됐던 수석대표 접촉을 마치고 기자들을 만나 “북한이 평창 동계올림픽·패럴림픽 참가에 긍정적인 입장을 표했다. 구체적인 사안을 협의할 것”이라며 “북한 고위급 대표단, 민족올림픽위원회 대표단, 선수단, 응원단, 예술단, 참관단, 태권도 시범단, 기자단 등이 찾아올 수 있다”고 밝혔다. 북한은 지금까지 한국에서 열린 국제제전 중 모두 3차례 응원단을 파견했다.

한반도 정세와 평창올림픽 출전 등 시급한 현안을 빠르게 해결한 이번 회담은 불과 2년여 전과 비교하면 속전속결로 진행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남북은 2015년 12월 11일 개성공단에서 1박2일로 차관급 회담을 가졌지만 공동보도문을 발표하지 못한 채 종료했다. 차기 회담 일정마저 잡지 못했다. 회담 결과는 ‘완전한 실패’였다.

반면 이번 회담은 이례적으로 빠르게 진행됐다. 남북이 이미 4개월 전부터 평창동계올림픽 참가를 결정하고 회담을 준비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해 강원도 강릉행 KTX에서 한국체육기자연맹 소속 언론사 부장급 간부들을 만나 “과거의 사례를 보면 북한이 참가해도 확약하는 것은 거의 마지막 순간이 될 것”이라고 회담 가능성을 암시했다.

이 열차에 동석한 이희범 평창동계올림픽‧패럴림픽 조직위원장은 지난해 9월을 특별히 지목하며 “당시 제131차 국제올림픽위원회(IOC) 리마 총회에서 토마스 바흐 위원장이 ‘올림픽은 어떤 정치적 긴장국면도 초월해야 한다. 대화의 장으로 여겨야 한다. 플랜B를 언급하지 않겠다. 북한 선수들의 참가에 문을 열어놓고 있다’고 말했다”며 “바흐 위원장의 이 언급이 북한의 평창행을 이끌 터닝포인트가 됐다”고 말했다.

김철오 기자 kcopd@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