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풍으로 오해할 수 있는 경추척수증이란?

입력 2018-01-09 17:00
사진-분당척병원 척추외과 이철규 원장

#올해로 69세인 P씨는 평소 목 주위가 뻐근하면서, 가끔 손가락에 저린감을 느끼고 있던 중, 몇 달 전부터 다리의 힘이 빠진 듯 바르게 걷지 못한다며 병원을 방문했다. 처음에는 중풍이 온 것으로 여기고, 한방 등 이런저런 치료를 받았으나 증상은 점점 악화되어, 결국 술에 취한 듯이 걷게 되었고, 식사시 젓가락질이 어려운 상태로 내원하게 되었다. 외래에서 환자의 상태를 면밀히 확인한 후, 목에 이상이 있음을 알게 되었고, 경추 MRI 검사를 시행하게 됐는데, 그 결과는 아래의 그림과 같이 경추 3-4번 사이에서 노화된 디스크가 척수신경을 심하게 압박하는 상태로 확인됐다.

이런 경우는 비단 P씨 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많은 노인들이 손발이 저리거나 힘이 빠지는 등 마비 증상이 나타나면, 자식들에게 걱정 시킬까 봐 증상이 아주 심해 질 때까지 참고 견딘다거나, 혹은 정확한 진단 없이 한방치료에 의존하면서 증상을 악화시키는 경우가 많다. 결론적으로 P씨의 정확한 진단은 스스로 내린 중풍이 아니라 경추 척수증이란 다소 생소한 병이다.

경추 척수증 하면 일반인에게는 생소하게 들릴 수 있으나, 평균 수명의 증가로 노인 인구와 함께 환자 수가 점점 많아지고 있는 질환이다.

경추 척수증의 증상은 초기에는 손에 둔한 감각이상이나 저린 듯한 느낌이다. 이런 증상은 목 디스크와 아주 비슷하지만 목의 통증은 별로 없고, 손 저림 증상도 목 디스크처럼 심하지는 않은 것이 보통이다.

다리에 둔한 감각이나 저린 느낌이 있어서 허리 척추의 질환으로 혼동하는 경우도 있고, 몸의 균형 이상으로 보행이 어려워져서 뇌의 질환으로 혼동하기도 한다. 또한 손의 세밀한 동작이 어려워져서 젓가락질이나 단추 채우는 동작이 어색해지고, 다리를 옆으로 넓게 벌려서 걸을 정도로 몸의 균형 감각이 나빠지기도 한다.

사진-노화된 디스크 척수신경

경추 척수증과 목 디스크는 눌리는 신경이 다른데, 목 디스크는 경추에서 손으로 가는 말초 신경이 눌리는 반면, 경추 척수증의 경우에는 광케이블 처럼 사지로 가는 굵은 중추 신경이 눌린다는 점이다.

목 디스크의 경우에는 대개 물리치료, 약물치료로 증상이 호전되고, 수술까지 필요한 경우는 전체 환자의 10% 내외 정도이다. 하지만 경추 척수증의 경우는 다르다. 중추 신경이 눌리고 있기 때문에 물리치료나 약물치료로 잘 호전이 되지 않고, 증상이 대부분 서서히 악화되며, 수술 이외의 방법으로는 증상의 호전이 거의 없기 때문에 대개는 수술을 해야만 하는 병이다. 수술적인 치료는 가능하면 빠른 시기에 하는 것이 좋다. 왜냐하면, 척수증 증상은 서서히 진행되며 나빠지기 때문에 악화될 대로 악화된 상태에서 수술하게 되면 신경이 이미 손상되어 정상으로 회복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때에 따라서는 더 이상 악화되는 것을 막으려는 목적만으로 수술을 하게 될 수도 있다.

경추 척수증에 걸린 환자는 증상이 점점 심해지면 결국 독립적인 생활이 어려워지기 때문에 환자도 힘들어지고, 가족 내에서나 사회적으로도 많은 문제가 될 수 있다.

분당척병원 척추외과 이철규 원장은 “사회가 고령화되면서, 경제활동을 나이가 들어서도 해야만 하는 사회에서, 이렇게 보행도 어려워지고, 손의 사용이 어려워져서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일상생활이 불가능하게 될 정도로 악화되는 것을 막으려면 경추 척수증이란 질환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면서 “또 이런 질환은 조기에 적절한 치료가 필요하며, 그렇게 함으로써 경추 신경기능을 잘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디지털기획팀 이세연 lovo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