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시드니올림픽 공동입장 기수 정은순씨 회고
“그때 생각하면 지금도 뭉클
관중들 모두 일어나 기립박수
北 기수보다 깃대 높은 곳 잡아
한반도기 접힐까 행진내내 신경
통일서 관심 멀어지는 세대에게
공동입장·단일팀 구성 큰 의미”
남북은 2000년 시드니 하계올림픽 개막식에서 분단 이후 처음으로 선수단 공동 입장을 선보였다. 당시 우리 측 기수는 여자농구 센터로 맹활약했던 정은순 해설위원이었다. 북측에서는 남자유도 박정철 감독이 나섰다.
정 위원은 8일 국민일보와 통화에서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뭉클한 감정이 든다”고 밝혔다. 정 위원은 기수로 선정됐다는 연락을 개막식 이틀 전에야 받았다. 그는 “너무 부담스러운 역할이어서 처음에는 거부했다”면서 “그런데 당시 유수종 농구대표팀 감독이 ‘가문의 영광’이라면서 강하게 떠밀어 어쩔 수 없이 공동 기수를 하게 됐다”고 했다.
20대 후반의 나이에 운동밖에 모르고 살았던 정 위원이었다. 하지만 남북이 함께 한반도기를 들고 입장하는 순간 메인 스타디움의 관중이 전부 일어서 박수를 치던 장면은 그에게 강한 충격을 줬다. 정 위원은 “스타디움을 한 바퀴 돌고 자리를 잡기까지 관중이 계속 기립박수를 쳤다”면서 “한반도 평화에 대한 염원은 전 세계 공통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행진을 마치고 주위를 둘러보니 남북을 불문하고 선수단 모두가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고 한다.
정 위원은 박정철 감독의 손보다 높은 부분의 깃대를 잡고 입장했다. 이와 관련해 정 위원은 “올림픽 조직위원회를 비롯해 주변에서 ‘무조건 깃대 윗부분을 사수하라. 북측보다 높은 곳을 잡아야 한다’고 요구해 시키는 대로 했다”고 후일담을 전했다. 또 정 위원은 “‘행진하는 동안 한반도기가 접히지 않게 신경을 써라’는 주문도 받았다”면서 “그래서 깃대를 들고 걷는 동안에도 한반도 무늬가 잘 보이도록 틈틈이 깃발을 손으로 폈다”고 회고했다.
남북이 북한의 평창 동계올림픽 참가 방안을 두고 9일 고위급 회담을 여는 가운데 11년 만에 남북 선수단의 올림픽 개막식 공동입장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남북 선수단의 공동입장은 2000년부터 2007년 창춘 동계아시안게임까지 총 아홉 차례에 걸쳐 진행됐지만 이명박정부 1년차 때인 2008년 베이징올림픽부터는 중단됐다.
최근 남북 간 기류를 정 위원은 남다른 감정으로 지켜보고 있다고 한다. 그는 “정치·군사적으로 대립하는 남북이지만 스포츠를 통하면 잘 섞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특히 남북 평화통일에서 관심이 멀어지고 있는 어린이들과 학생들에게 원래 남북이 하나였다는 사실을 인식시켜주는 것만으로도 공동입장, 단일팀 구성은 큰 의미가 있다”고 덧붙였다.
유성열 기자 nukuv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