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 DNA 되살리자] “작은 도전 쌓아 ‘이직’ 큰 결정”… ‘대기업→스타트업’ 박성전씨

입력 2018-01-09 08:49 수정 2018-01-09 14:51
박성전씨가 지난달 30일 트레바리의 안국아지트가 있는 서울 종로구 안국동 카페에서 사진촬영에 응하며 환하게 웃고 있다. 박씨는 새해부터 인터뷰가 진행된 강남구 트레바리 청담아지트의 운영책임을 맡게 됐다. 곽경근 선임기자

잘나가는 광고회사를 떠나
독서모임 기획·운영해 주는
작은 회사 ‘트레바리’에 입사

월급 30% 정도 줄어들고
저녁 근무로 바뀌었지만
일 즐겁고 회의감 안 들어
“하는 일 재미 없으면
인생도 즐거울 수 없잖아요”

“사회가 제대로 준비 안 하고
도전 강요하는 건 무책임”

박성전(26·여)씨는 광고계에서 손꼽히는 '꿈의 직장'에 들어간 지 1년6개월 만에 퇴사했다. 새로 얻은 직장은 독서모임을 기획하고 운영해 주는 스타트업 기업 '트레바리'. 대여섯 명이 일하는 작은 회사였다. 주변의 반응은 둘로 갈렸다. 어른들은 "왜 굳이 그런 길을 가려고 하느냐"고 혀를 찼고 또래들은 "용기가 대단하다"며 부러워했다. 상반된 반응처럼 보이지만 함축된 의미는 같았다. 대기업에서 스타트업으로의 이직이 용기를 필요로 하는 무모한 도전이라는 뜻이었다. 최근 서울 강남구 트레바리 사무실에서 만난 박씨는 "하고 싶은 일을 하겠다고 선택하는 걸 왜 무모한 도전으로 받아들이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그는 "도전에 어마어마한 용기가 필요하다는 인식은 역설적으로 그만큼 사회적 안전망이 갖춰지지 못했다는 뜻"이라며 "이는 분명 사회가 해결할 문제"라고 강조했다.

첫 번째 도전, 6년의 시간 놓아주기

2015년 그는 대학 졸업도 하기 전에 국내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대기업 계열 광고회사에 인턴으로 입사했고 곧 정사원이 됐다. 대학시절을 온전히 광고에 바친 결과였다. 박씨는 “대학생 때는 수업도 거의 안 듣고 광고기획 공모전만 죽어라 나갔다”고 말했다. 이어 “공모전 프레젠테이션을 위한 파일을 만드느라 수업을 제대로 듣지 못한 날이 많았다”면서 “시험공부는 녹음해둔 강의 파일을 몇 배 빠르게 듣는 식으로 했다”고 회상했다.

하지만 업(業)으로 삼은 광고 일은 생각과 달랐다. 매력적인 콘텐츠라고 생각해 매달렸지만 사람들이 피하고 싶어 하는 결과물로 뒤바뀌었다. 대기업에서 일하다보니 큰 기계 속 부품이 된 듯한 기분도 그를 괴롭혔다. 박씨는 “광고 보는 재미에 일부러 영화관을 일찍 찾곤 했지만 사람들은 일부러 광고시간 10분을 넘겨서 입장하더라”며 “‘사람의 마음을 얻고 싶다’는 생각에 광고의 매력에 빠졌는데, 거리가 멀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멈추는 건 그의 첫 도전이었다. 지난해 4월 마지막 출근 날 박씨는 “지금껏 가장 재미있게, 가장 열심히 해본 무언가를 꼽으라면 당연히 광고일 것”이라며 “6년을 사귄 ‘광고’라는 애인과 헤어지는 기분”이라는 글을 남겼다.

독서모임 만들어드립니다

“생각을 하면서 살고 싶다.” 이 생각이 박씨를 트레바리로 이끌었다. 큰 회사에서 생각 없이 정해진 대로 일하던 관성에 대한 반작용이기도 했다. 트레바리는 독서모임을 기획·운영해 주고 수수료를 받는 회사다. ‘세상을 더 지적으로, 사람들을 더 친하게’가 모토다. 여러 사람이 모여 책을 읽고 서로의 생각을 나누도록 서비스를 제공한다. 퇴사 전 박씨도 트레바리에서 기획한 독서모임의 멤버였다. 입사한 뒤 한 권도 읽지 못했던 책을 읽고, 다양한 사람을 만나면서 ‘여기서 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직을 마음먹자 사회의 편견에 부닥쳤다. 사람들은 청년의 도전과 창업을 권장하면서도 막상 스타트업으로 이직한다고 알리자 큰 사고라도 친 것처럼 여겼다. 평소 박씨에게 조언을 해 주곤 하던 어르신은 “그렇게 나갔다가 메뚜기가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끊임없이 이직만 반복하게 될 거라는 의미였다. 어머니도 만류했다. “이러려고 지금까지 공부했느냐”는 이야기까지 들었다.

우려는 현실로 다가왔다. 월급이 이전 직장보다 20∼30% 줄었다. 그러나 박씨는 “사람을 중요시하는 회사여서 스타트업으로 이직한 것치고는 많이 줄지 않은 편”이라고 했다. 근무시간도 독서모임 시간이 진행되는 저녁때로 바뀌었다. 남들이 한참 자고 있을 새벽이 퇴근시간이다. 박씨는 “지금 일이 정말 ‘빡센’ 건 맞다”며 웃었다.

하지만 일이 즐겁다.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일에 대한 회의감도 들지 않아서다. 그는 “일을 하면서 겪은 긍정적 경험을 매일 만나는 수십명과 함께하고 있다는 생각에 보람을 느낀다”며 “흘러가는 대로 살지는 말자는 게 나와의 약속인데, 그렇게 산다는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이직이라는 도전도 삶의 즐거움을 찾기 위한 과정이었다. 박씨는 “현대인에게는 일이 인생의 일부거나, 혹은 대부분이기 때문에 무엇보다 즐거운 일을 해야 한다”며 “퇴근 후의 시간보다 일하는 시간이 3배는 더 많은데 일이 재미없으면 인생도 즐거울 수 없다”고 강조했다. 돈이나 남의 시선보다 재미와 의미가 더 중요하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레고에는 여러 모양의 조각들이 있다”

박씨는 “대학시절 학교에서 밤새 공모전 출품작을 만드는 것도 하나의 도전이었고 혼자 몇 달 동안 배낭여행을 떠난 것도 도전이었다”며 “작은 도전의 경험이 쌓이면서 이직이라는 큰 결정도 내릴 수 있었다”고 말했다.

우리 사회는 여전히 도전을 크고 거창하게만 생각한다. 하지만 창업이나 이직처럼 인생을 뒤흔들 만한 선택뿐만 아니라 일상에서 한 발짝 나아가는 모든 시도가 도전이 될 수 있다.

무조건 도전하라고 등 떠미는 사회에 대한 회의감도 드러냈다. 도전에 실패해도 견딜 만한 여력이 있는 사람이 아니면 한국사회에선 ‘결심’ 자체도 힘들다. 박씨 자신에겐 적어도 머리를 누일 부모님 집이 있었고, 당장 돈을 벌지 못해도 몇 달은 생활이 가능한 최소한의 안전장치가 있었다.

그는 “사회가 아무것도 준비하지 않았으면서 (청년들에게) 도전해야 한다고 강요하는 건 무책임하다”고 꼬집었다. 이어 “어느 정도 안전망을 갖췄는데도 남의 시선 때문에 머뭇거리는 사람들도 있다”면서 “이들의 도전을 지지해 주는 분위기가 조성되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도전의 결과에 지나치게 매일 필요가 없다는 얘기도 했다. 박씨는 “실패해도 내가 하고 있는 모든 경험들은 나라는 사람을 설명하는 하나의 요소가 된다”며 “회사가 망해도 경험은 남고, 도전이 실패해도 나는 남는다”고 했다.

그래도 좋은 뜻을 가진 회사가 성공하면 좋은 선례가 될 수 있다는 측면에서 그의 목표는 당연히 성공이다. 그는 “‘독서모임을 운영하면서 수익을 낼 수 있다’는 발상 자체에 의문을 품는 이들이 많은데, 그게 가능함을 증명하고 사회적으로 의미가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고 했다.

박씨는 문유석 판사의 ‘개인주의자 선언’ 속 한 구절인 ‘그냥 레고에는 여러 모양의 조각들이 있는 거다’라는 문장을 인용했다. 사회가 정해둔 기준에 따라가려고 애쓸 필요 없다는 의미다. 모두가 도전에 강박을 가질 필요가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박씨는 “하루에 몇 분이라도 쪼개서 나를 들여다볼 시간이 있었으면 한다”며 “그 후 도전을 하고 싶다면 그 분야의 사람을 많이 만나보고 이야길 들어보는 것부터 시작했으면 좋겠다”고 조언했다.

임주언 기자 e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