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건표 교수의 연극이야기] 55. 변하지 않는 지번 ‘경남 창녕군 길곡면’

입력 2018-01-08 09:26

한국사회 변하지 않는 지번 <경남 창녕군 길곡면>


작품제목이 ‘경남 창녕군 길곡면’이다. 대한민국 불특정지역을 대상으로 한다. 이 작품은 극단 산수유에 의해 2007년 2인극 페스티발에서 초연되어 작품을 다듬고 결을 달리해 이듬해 연우소극장에서 공연되면서 산슈유 극단 대표 레퍼토리 3부작 <고비>, <12인의 성난 사람들>, <경남 창녕군 길곡면>이 됐다.

한 소년 아버지 살인사건에 대해 12명의 배심원들이 벌이는 토론을 강렬하게 다룬 <12인의 성난 사람들>은 지난해 31일까지 대학로 물빛극장에서 공연되면서 매진사례를 거듭했다. 극단 프로젝트 아일랜드 서지혜 연출 <일상의 광기에 대한 이야기>,<아일랜드>에서 노련한 연기를 보여준 남동진 배우가 주목을 받았고 배우들의 뛰어난 앙상블은 작품의 완성도를 높였다.

1월21일까지 동숭아트센터 꼭두소극장에서 공연되는 <경남 창녕군 길곡면>은 2017년도 공연예술창작산실 올해의 레퍼토리로 선정된 작품으로 배우들의 섬세한 연기, 작품을 몰고 가는 연출의 섬세함으로 저출산, 육아, 결혼문제 등 대한민국 길가를 예리하게 비추면서 공감을 받고 있다. 원작은 연극배우를 겸하고 있는 독일작가 프란츠 크사버 크뢰츠(Franz Xaver kroetz), <오버외스터라이히> 작품을 연출이 번안하고 지번(地番)을 한국사회로 옮겼다.

이 작품은 비정규직으로 배달(운전사)을 하는 남편과 직장에서 생산직 직원으로 살아가는 결혼 3년차 신혼부부가 살아가는 이야기다. 흙 수저로 태어나 고교를 졸업하고 학력 콤플렉스를 겪으면서도 단칸방에서 폼 나게 버틸 수 있는 부부의 행복도 출산문제에 부딪히며 육아, 출산, 경제, 임금, 비정규직 등을 포함한 거대 담론들을 한국사회에서 살아가는 신혼부부 이야기로 담아내고 있다. 150석 객석의 80% 이상이 주부관객이고 20%가 작품의 소문을 듣고 찾아간다. 웃으며, 한구석으로 가슴을 누르고 절여오는 한국사회 현실에 시선을 고정한다.

한국사회 어디에 있을 집, <경남 창녕군 길곡면>에 살아가는 부부에게 달라진 게 있을까?

우선 대한민국 정부는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문재인 대통령까지 네 번 바뀌면서 정치·교육·출산·경제·산업·복지·법률·임금·인권·노동 등 한국사회의 환경과 정책시스템은 파장과 진통을 겪으며 영상·영하의 날씨를 체감하는 온도변화를 겪어야 했다.

변화와 성장지형도를 안고 달리는 대한민국 열차는 60~70년대 넘어 4차 산업혁명의 시대로 진입하고 있다. 삶을 지탱하는 심줄은 여전히 흔들거리고, 불안하다. 임금격차, 비정규직 의료·복지, 기초생활 환경, 일자리 문제는 완치(完治)가 안 되고 있고, 중환자실을 나와 일반병동으로 옮겨 회복을 기다리고 있다. 출산율 감소는 대한민국 인구절벽시대 끝 지점에 서 있다. 정책이 빗나가면 회복하기 힘들다. 문대통령은 “저 출산 문제는 마지막 골든타임” 이라고 선언하며 일과 출산이 병행 될 수 있는 사회가 절실하다고 말할 정도로 심각한 수준에 있다.

행복지수는 출산과 교육이 자유로울 수 있는 단단한 정책과 흔들거리지 않는 안전한 국가시스템으로 촘촘히 연결되어 있는 사회 환경에서 나온다. 그러나 빈(貧)과 부(富)로 갈라지고 있는 계층은 철 사다리를 타고도 넘기 힘들 정도로 벽을 두르고 있다. 100세 고령화 시대에 출산율 감소는 단순한 저 출산의 문제가 아니라 결혼 3년차 두 부부만 살아가도 벅차다. 사교육비는 고공행진을 하고, 생활몸집을 줄여도 가계 빛은 쭉쭉 늘어난다. 물가는 평균 임금대비 생활수준을 웃돌고, 아파트가격은 상상의 나라다. 연극은 두 부부를 통해 변하지 않는 지번 <경남 창녕군 길곡면>을 웃음으로 막아서고, 씁쓸함으로 길곡면 길가를 그려낸다.

한국사회 어디에 있을 집, <경남 창녕군 길곡면>의 부부이야기

무대는 결혼 3년차 부부가 살아가는 단칸방을 비춘다. 침대와 작은 식탁하나, 그리고 소소한 생활소품 들이 배치되어 부부의 삶을 좁히고 있다. 연출은 공간을 좁히고 장면을 다 변화 하기 위해 사각프레임에 삶을 병치한다. 무대공간은 열리구조로 활용하기 위해 천장에 커튼 레일을 달아 자유로운 이동만으로도 공간·장면 변화를 환기하고 방을 안고 있는 무대구조로 비춘다.

류 주연 연출은 결혼 3년차 부부가 살아가는 시간변화의 흐름을 시계 초침 소리로 증폭시킴으로써 장면의 연결과 심리적 변화의 효과를 극대화 시킨다. 동일하게 울려대는 시계초침은 부부 삶의 변화를 체감 할 수 없는 반복되어지는 한국사회 신호음이다. 연출은 부부의 삶을 그리기에 불편한 모든 요소들을 제거하고 부부가 살아가는 고민과 소소한 일상의 이야기에 스피커를 대고 잔잔하게 듣는다.

극중 인물 이종철과 아내 박선미로 살아가는 배우 이주원과 주인영은 부부의 일상과 고민, 갈등을 세밀하게 파고들면서 TV 드라마 한편을 보는 것처럼 생활연기가 살아있다. 두 배우의 호흡은 부부 궁합을 이룬다. 툭툭 터져 나오는 즉흥성과 대화의 주고 받음도, 때로는 실수와 대사의 어긋남도 부부일상의 삶으로 돌려놓는다. 이백만원 안팎의 남편 월급으로도 행복하게 살아가는 이들을 비춘다.

막이 열리면 어느 신혼부부가 살아가는 것처럼 알콩달콩하다. 침대에 누워 예능프로그램을 보고 낄낄거리고, 유재석과 연예인 얘기를 하며 ‘놀면서 돈 번다’고 빈정대면서도 즐겁다. 해외여행 한번 못해본 부부에게 방송으로 비추어진 연예인들의 해외원정 촬영과 리얼 예능 타큐는 꿈의 이야기다.

유재석을 따라 부부의 상상으로 날아간 필리핀의 최고급 음식점과 술집, 리조트와 와인은 선망의 대상이다. 이들 행복지수는 상상을 하는 것만으로도 즐겁고 행복하다.

아내 선미는 남편을 보고 홈쇼핑 광고 책자에 나온 최첨단 월풀을 집에 들여 놓으면 좋겠다고 하고, 남편은 설명서를 펴놓고 장점을 설명하면서도 전기 배선 문제로 천장을 뚫어야 한다는 빈정거리는 농으로 받아친다. 집에서 먹는 스테이크와 와인, 이태리식 파스타도 이들 부부에게는 크루즈 여행 부럽지 않는 삶이다. 요리 잘하는 아내가 있어 행복하고, 먹다 남은 와인빈병과 파스타 접시를 생활 소품으로 둔갑시켜 방 분위기를 럭셔리하게 바꿀 줄 아는 아내가 있어 행복하다.

남편이 아반테 승용차 2000cc에 끌려 허세를 부려도 마티즈에 만족하고 기름 값 걱정 때문에 절약하는 알뜰한 아내다. 레스토랑에서 ‘불붙는 요리’를 시키고 싶어도 “좋은 건 그 만큼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남편 말에 ‘쿨’하게 포기 할 줄 안다. 발렌타인 때 남편과 한강에서 유람선을 타고 영화처럼 서울을 감상하는 싶다는 말에 “곧 빙하시대 온다하더라” 남편 구박에도 낄낄대는 부부다.

남편 허세에 맞장구를 받아치고, 할부로 구입한 129만9천원짜리 앙피르 서랍장이 최고 명품으로 방 한구석 든든히 버티고 있는 것만으로 내면의 삶은 누구도 부럽지 않다. 생활의 마법을 부려 상상을 마음의 현실로 바꾸어 놓는 알뜰한 애교만점 아내, 부부관계를 끝내고 아내가 남편에게 “성의가 없네” 라는 말에 웃음이 터지고, 이들 부부의 소소한 일상과 삶의 속도를 따라가면서도 변화되지 않는 ‘시계초침’ 소리에 가슴이 조여 온다.

연출은 부부의 삶이 웃음으로 버틸 때 아내의 예기치 못한 ‘임신’을 밀어놓고 한국사회의 저 출산, 육아, 교육, 노동, 비정규직, 임금 불균형, 갑질 사회 등 묵직한 키워드를 밀어 넣는다. 한국사회에서 비정규직으로 살아가며 아이 한명도 키우기 힘든 현실사회로 던져지는 묵직함을 밀어 넣는다.

고교 졸업 후 비정규직으로 성실하게 살아가도 이들이 바라보는 현실은 대학을 나와도 삶의 속도를 올릴 수 없는, 경계 밖의 한국사회다. 김혜수가 즐겨먹는 올리브 까나페을 똑 같이 만들어 샴페인을 터트려도 이들 부부에게는 TV로 비쳐지는 유재석 웃음처럼, 김혜수의 럭셔리한 생활도 이국적인 예능 다큐의 풍경을 단칸방에 옮겨 놓아도 삶을 동일하게 움직일 수 없는 실제 하지 않는 허상이며 현실은 차갑다.


월급 300만원으로도 필리핀을 돌아, 제주도, 해운대, 번지점프와 보트를 타고 이집트와 뉴욕을 돌아 올수 있는 폼 나는 인생을 살자고 해도 피곤하게 만드는 환상들일 뿐이다. “눈이 하루 종일 올까?”라는 아내에 말에 남편은 “눈이 많이 있으면 많이 온 거고, 그렇지 않으면 아닌 거고.”라고 응수하고, 아내는 “난 세상에 대해 호기심이 많아. 바깥에 눈이 오는지 비가 오는지 이 정도는 느끼고 살아야지.” 라고 말을 꺼낸다. 웃으며 농담으로 받아치는 부부의 대사가 툭툭 던져지며 웃음으로 감싸 안아도, ‘ 기대를 버리지 않는 세상의 호기심’에 응답은 더디다. 한국사회로 향하는 연극 <경남 창녕군 길곡면>은 웃음으로 가리고 현실을 예리하게 파고든다.

대한민국에서 ‘아이’ 한명 기르기, 출산 대작전

갈등의 정점은 출산과 육아에 드는 비용을 감당 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남편은 낙태를 권유하고 생활비를 줄여서라도 아이를 낳고 싶어 하는 아내는 예상 지출 항목을 작성하며 방 한 켠 탁자에서 생활비 몸집 줄이기에 나선다.

정부지원을 받고 구립 유치원을 보내 한 달 유치원비 20만원만 부담하는 현실성을 고려해도 월급으로 출산과 육아 비용을 이들 부부가 감당하기에는 턱없다. 남편은 출산 후 일을 할 수 없는 아내를 고려해 총 생활비용 200만원을 지출 총량으로 가정하고 기초생활비를 제외하고 남은 돈으로 아이를 키울 수 있는지에 대해 부부는 예상 지출 항목을 작성하며 생활비 몸집 줄이기를 한다. 이 장면에서 한국사회가 품고 있는 문제들로 응집된다.

노부부의 용돈, 공과금, 대출금, 자동차 할부금, 기초보험, 앙피르가구 할부금, 반찬생활비용과 문화생활에 드는 최소비용을 포함하고, 아내는 파마 값 3만원과 상식적인 생활비용을 줄여도 남은 돈은 13만 5천원이다. 여기에 분유 값, 기저귀 값, 경조사와 명절비용 등 기초적인 생활비 지출을 플러스하면 소비한계 총량에 다다르고 아이 한명을 기를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결혼 3년차 대한민국 부부에게 출산과 육아비용 문제는 절망만을 안겨줄 뿐이다.

면허증 없으면 배달원도 할 수 없는 남편은 음주단속에 걸린다. 푸념을 늘어놔도 아내는 “안 굶어 죽는다” 며 남편을 품에 안고, 불법 낙태수술 비용 40만원을 날려도 아내의 마음을 쓰다듬는 남편이다. 음주 벌금 100만원 걱정에 부인은 “내가 아직 버는데... 뭘. 우리 통장에 130만원도 있고” 라며 희망을 불어 넣고, 남편이 “어찌됐던 지금이 최상이지...” 받아치는 장면에서는 전류가 흐른다. 결혼한 관객, 연인, 예비부부, 미혼인 청춘의 관객들과 중년을 넘어선 노부부까지 결혼 3년차 부부의 삶을 동일화된 시선으로 살아간다.

아내는 신문을 보며 ‘경남 창녕군 길곡면’에서 가정형편으로 도저히 아이를 가질 수 없는 낙태 반대론자 김모씨가 부인을 목 졸라 살해한 사건을 이야기하는 장면에서는 가슴을 쓰라리게 만든다. <경남 창녕군 길곡면>은 이들과 비슷하게 살아가고 있는 변하지 않는 대한민국 불특정 지번이다. 관객들은 두 배우가 촘촘히 몰고 가는 삶에 몰입하고, 연출의 섬세함에 한국사회로 시선을 돌린다. 볼만한 연극이다.

▶류주연 연출은 극단 백수광부 단원으로 연극을 시작해 2008년에 극단 산수유를 창단했다. 창단공연 <길, 그 여자를 만나다>를 시작으로, <기묘여행>, <주머니 속 선인장>, <허물>, <12인의 성난 사람들>, < 고비>, <1945>등 20여 작품을 연출했다. 제 47회 동아연극상 신인 연출상을 수상했다. 섬세한 연출과 예리한 시선으로 동시대의 문제들을 연극으로 탑승시키고 있다.




대경대 연극영화과 교수(연극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