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일하는 뤄첸첸(羅茜茜) 박사는 12년 전 베이징항공대에서 박사 과정 지도 교수였던 천샤오우(陳小武·46)에게 성추행을 당했다고 1일 중국판 트위터 웨이보를 통해 고발했다. 새해 첫날 중국에서 처음으로 시작된 ‘미투(Me Too·나도 당했다)’ 운동이다.
중국 교육부가 학문 성취가 뛰어난 학자에게 주는 ‘창장(長江)학자’ 칭호까지 받은 천 교수는 그간 다수의 여학생에게 성폭행 시도를 한 것으로 드러났다. 뤄 박사는 천 교수를 항공대 기율검사위원회 감찰처에 고발하고, 자신을 포함해 성폭행 피해를 당한 여학생 7명의 증언도 제출했다. 뤄 박사는 피해자 중 한 명은 천 교수의 성폭행으로 임신했으며, 천 교수가 친구에게 돈을 빌려 학생의 입을 막으려 했다고 폭로했다.
뤄 박사는 천 교수의 성추행에 따른 후유증으로 박사학위 과정 내내 우울증과 환청, 환각에 시달렸다고 털어놨다. 그의 용기 있는 고백은 순식간에 수백만 건의 조회수를 기록하며 파문을 일으켰다. 항공대는 테스크포스(TF)를 꾸려 사건을 조사하고 있다고 밝혔고, 천 교수는 조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 정직 처분을 받았다.
현재 미국에 거주하고 있는 뤄 박사는 “지난해부터 전 세계적으로 확산된 ‘미투’ 캠페인이 큰 용기를 줬다”고 영국 BBC방송에 말했다. 수백만명의 여성들이 자신의 성추행, 성폭행 경험을 토로하며 ‘미투’ 해시태그(#)를 걸자, ‘미투’ 캠페인은 혼자만의 싸움이 아닌 전세계 여성의 반성폭력 ‘연대’로 확산됐다.
하지만 그간 중국에서는 이 캠페인이 활성화되지 못했다. 올해가 돼서야 첫 미투 운동이, 미국에 거주하는 중국 여성의 용기로 시작됐다. 중국 내에서는 페미니스트들이 여성들에게 뤄 박사의 길을 따라 용기를 내라며 독려하긴 하지만 반향을 일으키진 못하는 실정이다.
북경에서 ‘평등’이라는 비정부단체(NGO)를 운영 중인 펑위엔은 BBC에 “다른 여성들이 뤄 교수처럼 용기를 내긴 쉽지 않을 것”이라고 전했다. 그는 “중국은 성추행이나 성폭행을 처벌하는 법이 없다”며 “학교나 회사도 이에 대응할 적절한 장치가 마련돼 있지 않다”고 설명했다. 이어 “뤄 박사의 폭로만큼 치밀하게 계획되지 않은 발언은 오히려 무시당할 수 있다”고 말했다.
뤄 박사는 사건을 대중에게 알리기 전 다른 피해자들의 증언을 확보했고, 치밀하게 증거를 모아 학교에게 먼저 알렸다. 학교가 사건 조사에 나서고 천 교수가 정직을 받은 뒤에야 웨이보에 사실을 알린 것이다.
페미니스트 이시팬은 “중국에서 성추행이 일어나면 피해자를 비난하는 분위기가 형성된다”며 어려움을 토로했다. 성추행이 발생해도 피해여성이 의도적으로 접근했다는 인식이 팽배한 탓에 피해자들이 먼저 나서 폭로하기를 꺼려한다는 설명이다.
박세원 기자 sewonpar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