꼼수 부리다… 애플, ‘배터리 게이트’로 10조 날릴 판

입력 2018-01-05 08:21
애플 고객들이 4일 서울의 한 애플공인서비스센터에서 직원들과 상담하고 있다. 애플은 오래된 아이폰의 성능을 몰래 떨어뜨린 사실이 드러나 논란이 일자 배터리 교체 비용을 낮췄으나 성난 여론은 누그러지지 않고 있다. 서영희 기자

혁신의 아이콘으로 불리던 애플이 ‘배터리 게이트’에 휩쓸려 표류하고 있다. 배터리 교체 비용을 지원하겠다며 수습에 나섰지만 ‘배터리 교체안’은 오히려 신형 아이폰 판매량을 토막낼 부메랑이 될 가능성이 높다.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O)의 책임론까지 나온다.

4일 업계에 따르면 애플은 오래된 아이폰의 성능을 몰래 떨어뜨린 사실이 드러나 천문학적인 금전 손실을 입게 됐다. 앞서 애플은 낡은 배터리가 방전되는 걸 막기 위해 이용자 몰래 아이폰의 중앙처리장치 작동 속도를 늦췄다고 인정하고 보상을 약속했다. 아이폰6와 이후 출시된 기기의 배터리 교체 비용을 기존 79달러에서 29달러로 낮춘 것이다. 애플이 연간 2억대 이상의 스마트폰을 팔고 있는 걸 감안하면 애플은 앞으로 최대 4억7000만대의 아이폰 배터리를 교체하는 데 비용을 지원해야 할 것으로 추산된다.

애플이 날릴 돈은 또 있다. 미국 뉴욕 월가에서는 3일(현지시간) 애플이 구형 아이폰 배터리 교체 비용을 낮춘 건 앞으로 나올 신형 아이폰 판매에 독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배터리를 갈아 끼운 구형 아이폰이 신형 아이폰을 대체하면서 매출 타격이 불가피하다는 의미다. 영국의 글로벌 투자은행 바클레이스의 애널리스트 마크 모스코위츠는 “올해 아이폰 약 1600만대가 판매에 차질이 생기면서 애플은 약 102억9000만 달러(10조9300억원)에 이르는 손해를 볼 것”이라고 내다봤다. 아이폰 이용자 5억1900만명 가운데 약 10%가 배터리를 교체하고 이 가운데 30%가 올해 신형 아이폰을 사지 않을 것이라는 계산이다.

‘꿈의 1조 달러’(1062조원)를 바라보던 시가총액도 곤두박질쳤다. 지난 12월까지만 해도 애플은 세계에서 가장 먼저 시가총액 1조 달러를 돌파할 기업으로 꼽혔다. 하지만 지난 18일 약 968조원이던 시가총액은 이날 약 939조원까지 떨어졌다. 최근 주가가 반등했는데도 시가총액이 29조원 가까이 빠진 것이다.

충성고객이 등을 돌리는 등 돈으로 계량할 수 없는 손해도 막대하다. 전 세계로 애플에 대한 집단 소송이 확산되고 있다. 미국, 이스라엘, 프랑스, 한국 등 5개국에서 15건 이상의 집단 소송이 진행 중이다.

애플을 향한 비판 여론이 커지면서 쿡 CEO의 리더십이 안 보인다는 원성도 높아졌다. 미국의 경제 매체 비즈니스 인사이더는 “쿡 CEO가 배터리 스캔들의 책임을 져야 한다”고 비판했다. 이어 “애플의 사과문에는 쿡 CEO의 서명이 없었다”며 “그가 회사 브랜드 뒤에 숨어 있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글=오주환 기자 johnny@kmib.co.kr, 사진=서영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