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의 아이콘으로 불리던 애플이 ‘배터리 게이트’에 휩쓸려 표류하고 있다. 배터리 교체 비용을 지원하겠다며 수습에 나섰지만 ‘배터리 교체안’은 오히려 신형 아이폰 판매량을 토막낼 부메랑이 될 가능성이 높다.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O)의 책임론까지 나온다.
4일 업계에 따르면 애플은 오래된 아이폰의 성능을 몰래 떨어뜨린 사실이 드러나 천문학적인 금전 손실을 입게 됐다. 앞서 애플은 낡은 배터리가 방전되는 걸 막기 위해 이용자 몰래 아이폰의 중앙처리장치 작동 속도를 늦췄다고 인정하고 보상을 약속했다. 아이폰6와 이후 출시된 기기의 배터리 교체 비용을 기존 79달러에서 29달러로 낮춘 것이다. 애플이 연간 2억대 이상의 스마트폰을 팔고 있는 걸 감안하면 애플은 앞으로 최대 4억7000만대의 아이폰 배터리를 교체하는 데 비용을 지원해야 할 것으로 추산된다.
애플이 날릴 돈은 또 있다. 미국 뉴욕 월가에서는 3일(현지시간) 애플이 구형 아이폰 배터리 교체 비용을 낮춘 건 앞으로 나올 신형 아이폰 판매에 독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배터리를 갈아 끼운 구형 아이폰이 신형 아이폰을 대체하면서 매출 타격이 불가피하다는 의미다. 영국의 글로벌 투자은행 바클레이스의 애널리스트 마크 모스코위츠는 “올해 아이폰 약 1600만대가 판매에 차질이 생기면서 애플은 약 102억9000만 달러(10조9300억원)에 이르는 손해를 볼 것”이라고 내다봤다. 아이폰 이용자 5억1900만명 가운데 약 10%가 배터리를 교체하고 이 가운데 30%가 올해 신형 아이폰을 사지 않을 것이라는 계산이다.
‘꿈의 1조 달러’(1062조원)를 바라보던 시가총액도 곤두박질쳤다. 지난 12월까지만 해도 애플은 세계에서 가장 먼저 시가총액 1조 달러를 돌파할 기업으로 꼽혔다. 하지만 지난 18일 약 968조원이던 시가총액은 이날 약 939조원까지 떨어졌다. 최근 주가가 반등했는데도 시가총액이 29조원 가까이 빠진 것이다.
충성고객이 등을 돌리는 등 돈으로 계량할 수 없는 손해도 막대하다. 전 세계로 애플에 대한 집단 소송이 확산되고 있다. 미국, 이스라엘, 프랑스, 한국 등 5개국에서 15건 이상의 집단 소송이 진행 중이다.
애플을 향한 비판 여론이 커지면서 쿡 CEO의 리더십이 안 보인다는 원성도 높아졌다. 미국의 경제 매체 비즈니스 인사이더는 “쿡 CEO가 배터리 스캔들의 책임을 져야 한다”고 비판했다. 이어 “애플의 사과문에는 쿡 CEO의 서명이 없었다”며 “그가 회사 브랜드 뒤에 숨어 있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글=오주환 기자 johnny@kmib.co.kr, 사진=서영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