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대통령 “한·일 위안부 합의, 내용과 절차 모두 잘못”

입력 2018-01-04 21:08
문재인 대통령이 4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세브란스병원에 입원 중인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김복동 할머니를 찾아 손을 잡고 위로하고 있다. 문 대통령은 위안부 할머니들과의 청와대 오찬에 김 할머니가 참석하지 못한다는 얘기를 듣고 미리 병문안을 했다. 청와대 제공

문재인 대통령은 한·일 위안부 합의에 대해 “진실과 정의의 원칙에 어긋날 뿐 아니라 정부가 일방적으로 추진한 내용과 절차가 모두 잘못된 것”이라고 비판했다.

문 대통령은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 8명을 청와대로 초청해 오찬을 함께하고, 입원한 김복동 할머니를 문병하는 등 강한 대일 메시지를 던졌다. 다만 위안부 합의 파기나 재협상에 대한 구체적 언급은 하지 않았다.

문 대통령은 4일 청와대에서 가진 위안부 피해 할머니 초청 오찬에서 “할머니들의 의견도 듣지 않고, 뜻에 어긋나는 합의를 한 것에 대해 죄송하고 대통령으로서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했다. 이어 “저희 어머니가 91세이신데 대통령이 된 뒤로 잘 뵙지 못하고 있다. 오늘 뵈니 꼭 제 어머니를 뵙는 마음”이라며 “할머니들을 드디어 한자리에 모시게 되어 기쁘다. 국가가 도리를 다하고자 하는 노력으로 봐 달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그러나 “대통령으로서 지난 합의가 양국 간 공식 합의였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고 말해 파기나 재협상이 쉽지 않다는 뜻을 밝혔다. 문 대통령은 오찬에 앞서 서울의 한 병원에서 김복동 할머니를 문병하고 “과거 정부가 공식적으로 합의한 것도 사실이니 양국 관계 속에서 풀어가야 하는데 쉽지 않은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이어 “할머니들께서 바라시는 대로 다 할 수는 없다 하더라도 정부가 최선을 다하겠다”고 부연했다.

이에 따라 정부가 양국 관계 회복 과정과 국내 여론 등을 지켜보며 탄력적으로 위안부 합의 문제를 다룰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된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도 이날 CBS 라디오 인터뷰에서 ‘위안부 합의 파기가 가능한가’라는 질문에 “모든 것이 가능하다. 그렇지만 그 결과에 대해서도 충분한 생각을 하고 결정해야 되겠다”고 답했다.

문 대통령이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를 초청해 오찬을 한 것도 정부의 위안부 합의 대응과는 별개로 할머니들을 위로하는 성격이 강하다. 박수현 청와대 대변인은 “향후 정부 입장을 정하기에 앞서 피해 당사자인 할머니들의 의견을 경청하기 위해 자리를 마련했다”며 “국빈급으로 모셨다”고 말했다. 할머니들은 ‘나눔의집’에서부터 비서실이 제공한 의전차량을 타고 경찰 에스코트 아래 청와대에 도착했다. 할머니들의 건강 상태를 고려해 앰뷸런스도 배치됐다. 문 대통령 내외는 청와대 본관 현관에 미리 나와 할머니들을 맞았고, 김정숙 여사는 오찬 종료 후 할머니들에게 일일이 목도리를 선물하고 직접 매줬다.

할머니들은 위안부 합의 파기를 강력하게 요청했다. 이용수 할머니는 “위안부 합의 이후 매일 체한 것처럼 답답하고 한스러웠다”며 “대통령께 부담 드리는 것 같지만 이 문제는 해결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이옥선 할머니도 “우리가 살면 얼마나 살겠나. 사죄만 받게 해 달라”고 했고, 김복동 할머니도 병원에서 “일본에 위로금을 돌려줘라. 법적 사죄와 배상을 받으면 된다”고 각각 요청했다. 길원옥 할머니는 인사말 대신 노래 ‘한 많은 대동강’을 불렀다.

강준구 기자 eye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