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국공신 배넌, 트럼프 등에 칼 꽂다

입력 2018-01-04 21:03
도널드 트럼프(왼쪽)·스티브 배넌. AP뉴시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최측근이자 정권의 핵심 설계자인 스티브 배넌(64) 전 백악관 수석전략가가 트럼프 대선캠프의 러시아 유착 의혹을 “반역적인 행위였다”고 비판하면서 미 정가를 발칵 뒤집어놓고 있다. 당장 트럼프 대통령부터 “배넌이 미쳤다”고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발단은 영국 일간 가디언이 오는 9일(현지시간) 발간될 미국 언론인 마이클 울프의 신간 ‘화염과 분노(Fire and Fury): 트럼프 백악관의 내부’에 실린 배넌의 인터뷰 내용을 입수해 3일 보도하면서부터다. 배넌은 인터뷰에서 대통령의 장남 도널드 트럼프 주니어와 사위 재러드 쿠슈너, 폴 매너포트 당시 선거대책본부장이 민주당 힐러리 클린턴 후보를 흠집낼 정보를 주겠다는 러시아 정보원들을 트럼프타워에서 만난 것은 “반역적이고 비애국적”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이들은 즉각 미 연방수사국(FBI)에 신고했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배넌은 특히 “트럼프 주니어가 러시아 정보원들을 26층의 트럼프 후보 사무실로 데려가지 않았을 가능성은 제로”라며 대통령도 만남을 알았을 것이라고 시사했다.

이에 트럼프 대통령은 격앙된 반응을 내놓았다. 그는 성명을 통해 “배넌은 수석전략가 자리에서 경질됐을 때 정신까지 잃었다”며 “그는 나를 비롯해 내 정부와도 관련이 없다. 이미 내가 공화당 대선후보로 확정됐을 때 캠프에 들어온 직원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이어 “배넌은 나와 1대 1로 거의 만나지 못했으면서도 영향력 있는 척한다”고 덧붙였다.

트럼프 대통령의 변호사는 배넌에게 “대통령 폄하 발언을 중단하라”고 요구하는 한편 백악관의 비밀유지 계약을 위반했다고 통보했다. 하지만 최측근 배넌이 러시아 스캔들을 정면 비판하며 트럼프 대통령에 등을 돌린 것은 향후 보수층에 균열을 가져올 것으로 예상된다.

책에는 이외에도 흥미로운 내용이 많다. 우선 트럼프 자신도 대통령에 당선될 것으로 생각하지 않았고 원치도 않았다는 것이다. 울프는 트럼프가 선거에 패배해도 ‘대통령이 거의 될 뻔했던 후보’로서 온갖 혜택을 다 누릴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고 주장했다.

울프는 또 트럼프의 장녀 이방카가 기회가 되면 대선에 출마할 것이며 당선 뒤 남편 쿠슈너와 공동으로 정권을 운영하기를 희망했다는 내용도 들어 있다. 가디언은 울프의 책에 대해 “배넌이 ‘자방카(Javanka)’로 지칭한 이방카-쿠슈너 부부와 배넌이 벌이는 권력 투쟁”이라고 분석했다.

또 트럼프가 취임 직후 자신의 여행규제 행정명령 집행을 거부한 샐리 예이츠 법무장관 대행에 대해 보좌관들 앞에서 여성의 성기를 의미하는 험한 욕설을 했다는 내용도 상당한 후폭풍이 예상된다. 트럼프는 대선후보 시절 내내 여성 폄하 발언으로 문제가 됐었는데, 이 책에는 트럼프의 다른 유사한 발언이 여럿 담겨 있다.

그런가 하면 토니 블레어 전 영국 총리가 쿠슈너에게 영국 정보부가 트럼프 대선캠프를 도·감청하고 트럼프도 사찰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고 울프는 주장했다. 사실이면 양국 간 외교분쟁으로 비화될 수 있는 사안이다. 또 대통령의 절친인 언론재벌 루퍼트 머독이 주변에 트럼프를 ‘바보’라고 흉봤다는 내용도 소개됐다.

울프는 2016년 ‘할리우드 리포터’에 트럼프 후보에 대한 우호적인 기사를 게재한 이후로 대선캠프에 자유롭게 출입했으며, 관계자 200여명을 인터뷰한 뒤 책을 냈다.

장지영 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