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싱데이(Boxing Day). 본래 크리스마스 다음날(12월26일)을 가리킨다. 영국을 비롯한 호주, 뉴질랜드, 캐나다 등 영연방 국가들은 이 날을 특별 공휴일로 지정한다.
‘박싱데이’란 이름이 붙은 데에는 여러 설이 있다. 크리스마스 다음날 곡물 등을 담은 ‘박스’를 어려운 이웃에게 선물하는 전통에서 유래되었다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
잉글랜드를 포함한 스코틀랜드, 북아일랜드에서는 박싱데이인 12월 26일 축구경기와 사냥, 경마, 크리켓 등을 치르는 전통이 있었다. 마치 우리나라에서 설이나 추석 명절때 씨름을 하는 것과 비슷하다.
박싱데이는 축구에 있어서 그 의미가 특별하다. 크리스마스 이후 약 보름간 펼쳐지는 숨가쁜 경기들이 전통으로 자리잡아 축구만의 ‘박싱데이’가 됐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팀들은 ‘박싱데이’ 기간 평균 주 3회의 경기를 소화해야 한다. 이와 달리 스페인 프리메라리가는 지난달 24일 경기를 끝으로 오는 6일까지 달콤한 휴식기 가진다. 다른 유럽 5대 리그 역시 크리스마스 전후로 약 2주간의 휴가를 떠난다. 특히 독일 분데스리가의 경우 무려 4주간 겨울 휴식기에 돌입한다.
선수는 힘들어도 팬들은 즐겁다. 이번 주(12월31일~1월6일)만 해도 휴식기가 시작되는 6일 전까지 컵대회를 포함해 단 하루도 빠짐없이 무려 24경기가 진행된다. 리그는 6일부터 13일까지 잠시 휴식기를 갖지만, FA컵 일정이 기다리고 있다. 매일매일 경기를 시청 할 수 있다.
살인적인 일정 속에 선수들은 엄청난 체력적인 부담을 감당해야 한다. 하지만 모든 팀들은 죽기 살기로 임해야 한다. 역대 우승팀들을 보면 박싱데이 직후 1위를 기록한 팀이 대부분 우승을 차지했다. 즉 박싱데이 기간의 성적은 시즌 최종 성적표와 직결된다. 우승권에 다가설 수도 반면 멀어질 수도 있다.
모든 선수들이 박싱데이에 피로누적과 부상의 위험을 안고 뛰다보니 강팀들의 이변도 속출한다. 유럽 5대 리그 최다인 19연승(바이에른 뮌헨과 타이) 기록을 노리던 맨체스터 시티는 지난달 31일 펼쳐진 크리스탈 팰리스와의 경기에서 0-0 무승부를 기록하며 대기록 행진을 멈춰서야했다. 이날 경기에서 팀의 핵심 선수들인 가브리엘 제주스(21)과 케빈 데 브라위너(27)를 부상으로 잃었다. 지난 2일 펼쳐진 왓포드 전에서는 카일 워커(28)가 근육 부상을 당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지난달 24일 레스터 시티전을 시작으로 3경기 연속 승리를 거두지 못하며 사실상 우승 경쟁의 종지부를 찍었다. 심지어 첼시에 밀려 2위 자리도 사수하지 못하고 3위로 내려앉았다.
각 팀들의 불만은 상당하다. 맨체스터 시티 펩 과르디올라 감독은 지난 2일 왓포드와의 승리 직후 “우리는 선수들을 죽일 것이다. 협회는 선수들을 고려하지 않는다”며 살인적인 일정에 대한 강한 불만을 나타냈다. 맨시티를 상대했던 크리스탈 팰리스의 휴턴 브라이턴앤호브앨비온 감독 역시 “짧은 기간 동안에 경기를 펼치면 축구의 질에 영향을 미친다”며 우려를 나타냈다.
리버풀의 위르겐 클롭 감독도 지난 2일 번리전 승리 이후, 체력 회복 시간이 부족해 경기력이 좋지 못했다며 빡빡한 일정으로 체력적으로 아주 힘들다고 지적했다.
이런 비판들은 매년 박싱데이 기간마다 잇따르고 있다. 이제 막 전반기를 끝낸 후 반환점을 도는 시점에서 엄청난 경기를 소화해야하니, 남은 시즌 일정에도 차질이 생긴다. 최근 계속됐던 EPL 팀들의 ‘유럽 챔피언스리그’ 부진 역시 이러한 박싱데이 영향이 없잖아 있다는 해석이 많다.
송태화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