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경환 자유한국당 의원이 4일 새벽 서울구치소에 수감됐다. 법원은 그가 국가정보원에서 뇌물 1억원을 받았다는 검찰의 판단을 받아들였다. 강부영 영장전담판사는 “범죄 혐의가 소명되고 증거를 인멸할 염려가 있다”며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박근혜정부의 최고 실세였던 그는 정권 교체 후 가장 먼저 구속된 현역 의원이 됐다.
◇ ‘박근혜 대통령’과 수시로 통화한 실세
최경환 의원은 수많은 ‘친박’ 정치인 중에도 박근혜 전 대통령의 절대적 신임을 얻은 핵심 실세로 꼽힌다. 박근혜 정권에서 여당 원내대표와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을 역임했다. 국회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자리를 맡았고 행정부에선 예산과 재정 운용을 총괄하며 ‘돈줄’을 쥐고 있었다.
행정고시 22회인 최 의원은 기획재정부의 전신인 경제기획원·재정경제원을 거쳐 1999년 예산청에서 관료 생활을 마쳤다. 2004년 17대 총선에서 한나라당 소속으로 경북 경산·청도에 당선돼 정계에 입문했다. 같은 해 당 수도이전대책특별위원회 간사를 맡으며 당시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와 인연을 맺었다.
박 전 대통령이 처음 대권에 도전한 2007년 한나라당 대선 경선 때 캠프 종합상황실장을 맡아 전폭적인 신임을 얻기 시작했다. 이명박정부 시절인 2009년에는 지식경제부 장관을 지내기도 했다. 2012년 박근혜 대선후보 비서실장을 거쳐 박근혜정부에서 여당 원내대표와 경제팀 수장을 지냈다. 서청원 의원과 함께 친박계 구심점 역할을 했다.
검찰은 국정원이 최 의원에게 금품을 건넨 배경에 그가 가졌던 예산편성권과 국회 영향력이 있다고 본다. 최 의원이 국정원 측에 특활비 상납 및 증액을 요구한 정황도 일부 파악했다. 그는 박 전 대통령과 수시로 통화가 가능한 몇 안 되는 인사였다는 점에서 박 전 대통령을 정점으로 하는 특활비 유용 의혹에 깊이 연루됐을 것이라는 게 검찰의 판단이다.
◇ 경제사령탑이었는데… 흔적도 없어진 ‘최경환 정책’
그랬던 그가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 가장 먼저 구속된 현역 의원이 됐다. 정권 교체를 전후해 가속화한 친박 세력의 정치적 몰락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다. ‘최경환 구속’은 2018년 1월 4일의 일이지만, ‘최경환 정책’은 지난해 이미 사망선고가 내려졌다. 한 나라의 정권 실세이자 경제사령탑이 다년간 추진했던 핵심 정책은 지금 흔적도 찾아보기 어렵다.
최경환 의원은 2014년 경제부총리에 취임하자마자 주택담보인정비율(LTV)과 총부채상환비율(DTI)을 대폭 완화했다. 보통 사람이 돈 빌릴 때 최대 걸림돌이던 규제를 풀었다. 가계부채가 1000조원을 넘어서 경고등이 켜진 시점에 오히려 대출 문턱을 크게 낮췄다.
그렇게 한 배경에 부동산이 있었다. 저성장의 늪에서 경제를 살리는 방법으로 아주 고전적인 ‘부동산 띄우기’를 시도했다. 박근혜정부의 트레이드 마크인 ‘창조경제’가 이렇다 할 실체를 갖추지 못한 터에 과거 정권마다 경기부양이 필요할 때 꺼냈던 카드를, 그리 ‘창조적이지 않은’ 수단을 다시 집어 들었다. 대출 규제 완화는 ‘빚내서 집 사라’는 뜻이었다. 세금까지 동원했다. 양도세 부담을 줄이는 등 부동산 거래를 촉진하는 정책을 폈다.
최 의원은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를 여러 번 찾아가 금리인하를 촉구하기도 했다. 경기 부양이 필요하니 돈을 풀자는 거였다. 미국과 일본의 양적완화 정책에 대응한다는 차원이었지만, 한국은행은 아직 금리 정책을 방향을 놓고 고심하고 있을 때였다. 최 의원의 옆구리 찌르기는 결국 저금리 기조로 이어졌고, 역시 돈 빌리기 쉬운 환경을 조성했다.
이런 ‘최경환 정책’은 불과 3년 만에 180도 바뀌었다. 문재인정부가 넘겨받은 경제 상황은 가계부채가 1400조까지 치솟고 부동산은 열풍을 넘어 과열 상태였다. 이를 잠재우기 위한 대출 규제와 고강도 부동산 대책이 잇따라 나왔다. LTV DTI는 다시 강화됐고, 투기과열지구를 다시 적용했으며, 양도세는 거꾸로 올렸고, 한국은행은 금리를 인상하기 시작했다.
경제 환경이 바뀌면 정책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최경환 정책’의 소멸을 가져온 것은 환경 변화보다 정책 판단의 문제에 더 가깝다. 경제에 다른 접근법을 가진 정권이 들어서면서 경제를 달리 진단했고 그것이 정책 변화로 이어졌다. 그 과정에 흔적조차 남지 않은 최경환 정책의 운명처럼 그 역시 정치 무대에서 한동안 사라지게 됐다.
태원준 기자 wjt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