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고 된 대피로·목재 방화문… 참사 위험 널려 있었다

입력 2018-01-03 08:14
서울 소방재난본부 특별조사반이 특별점검을 실시한 결과 한 목욕탕의 피난통로는 아예 합판으로 가로막혀 있었다. 화재 시 화염과 연기를 막아줘야 할 방화문이 목재로 설치돼 있는가하면(아래 왼쪽 사진) 화재감지기는 비닐로 가려져 화재에도 작동할 수 없는 상태였다. 서울시소방재난본부 제공

서울 노원구에 위치한 A목욕탕. 서울 소방재난본부 특별조사반이 지난달 22일 소방 시설 점검차 이곳을 찾았지만 피난통로는 보이지 않았다. 목욕탕 도면을 들고 특별조사반이 피난통로가 그려진 곳을 따라갔지만 벽뿐이었다. 이 목욕탕은 탈의실 공간 한 쪽을 나무 합판으로 막아 수건 등을 쌓아놓는 창고로 활용했다. 까치발을 한 채 합판 너머를 살펴봐야 비상구 표시를 찾을 수 있었다. 2층 여성사우나 비상계단으로 이어지는 피난통로에 목욕물품 선반이 설치돼 다수의 희생자를 낸 충북 제천 노블 휘트니스 스파와 구조가 거의 판박이였다. 참사의 위험은 제천뿐만이 아니라 우리 주변 곳곳에 있었다.

서울시 소방재난본부는 제천 참사 직후인 지난달 22일부터 28일까지 서울지역 319개 목욕탕·찜질방 등을 불시 점검한 결과 120개소에서 330건의 소방관련 법규 위반 사항을 적발했다고 2일 밝혔다. 이번 특별조사에서는 화재경보설비, 피난통로 장애물 설치 여부 등이 집중 단속됐다.

불이 나면 대형 사고로 이어질 법한 경우가 상당수였다. 노원구 B목욕탕은 목욕시설 내 화재감지기가 아예 작동하지 않았다. 비닐로 꽁꽁 싸매 연기를 감지할 수 없도록 해 놨기 때문이다. 목욕탕 내부 수증기 탓에 감지기가 오작동을 한다는 이유였다. 서울시 소방재난본부 관계자는 “연기감지기가 아니라 열감지기로 교체하면 되지만 비용이나 유지관리 등의 문제로 아예 비닐로 막아버린 것”이라고 설명했다.

C시설은 유리문으로 된 출입문이 화재 등 발생 시 자동으로 열려야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유리문이 열리지 않아 피해가 커졌던 제천 참사와 닮아 있었다. D목욕탕은 목욕탕 내 녹색 대피로 유도등이 설치되지 않았다. 비상 시 연기가 자욱한 상황일 때 이곳 이용객들은 출구를 찾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화재가 발생했을 때 화염과 연기를 차단해줘야 하는 방화문을 목재로 변경한 경우도 적발했다. 소방법에 따르면 방화문은 1시간 이상 화재를 막아내야 하지만 목재문은 불쏘시개 역할을 할 수밖에 없다. 소방재난본부 측은 “목욕탕이나 찜질방은 내부 구조가 복잡해 화재로 연기가 차면 피난통로를 찾기가 어렵다”며 “피난통로는 장애물이 없도록 관리하고 유도등 작동 여부도 점검해야 인명피해를 막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서울시는 46개 위법사항 대상에 과태료를 부과하고 74개 대상에는 시설물 원상복구 조치 명령과 기관통보조치를 했다. 또 제2의 제천 참사를 막기 위해 필로티형 주차장에는 스프링클러 헤드를 설치하도록 제도를 개선할 계획이다.

김유나 기자 spri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