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물선 스텔라데이지호 침몰 실종자 가족들이 "진상을 규명해 달라"며 2일 '새해 1호 민원'을 냈다. 스텔라데이지호가 남미 우루과이 인근 해역에서 침몰한 지 277일이 지났지만 실종자 22명의 생사 여부는 오리무중인 상태다.
이날 오후 2시 스텔라데이지호 침몰 사고로 실종된 허재용(33) 이등항해사의 누나 허영주 스텔라데이지호 가족대책위원회 공동대표는 새해에도 정부에 전달할 서한문을 들고 다시 청와대 분수대 앞에 섰다.
허 공동대표는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하던 지난해 5월 10일, 청와대 1호 서한문을 전달했던 저희 스텔라데이지호 실종 선원 가족들이 2018년 새해 첫 서한문을 다시 전달하게 됐다"며 "국민들의 염원과는 반대로 정부에서는 아무런 실질적인조치를 취해주지 않고 있다"고 탄식했다.
그는 청와대에 전달하기 위한 서한문을 읽어 내려갔다. 허 공동대표는 "정부가 '황천항해(폭풍과 태풍 등의 악천후 속에서의 항해)'라고 말했다"며 "그런데 스텔라데이지호는 남대서양에서 낮 1시3분에 기상상태도 좋은 날씨에 항해했다. 그런데 갑자기 배가 두 동강이…"라고 결국 말을 끝맺지 못했다.
그는 사고 당시 스텔라데이지호에 탑승했던 동생을 떠올리는 듯 흐느꼈다.
허 공동대표를 비롯해 스텔라데이지호 가족·시민대책위원회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사고 원인에 대한 철저한 조사를 바란다"며 "지난해 4월 9일 미군 초계기가 찍은 사진을 반드시 확보해서 가족에게 공개해 달라. 또한 사고 원인과 실종 선원들의 생존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블랙박스를 조속히 수거해 달라"고 정부에 요구했다.
이어 "선사인 폴라리스 쉬핑과 박근혜 정부의 초기 대응과 성급한 수색 종료에 대한 수사를 촉구한다"고 강조했다. 대책위는 지난해 8월부터 12월까지 10만1492명의 서명을 받은 '스텔라데이지호 구조 골든타임 의혹 진상규명과 선원들의 무사귀환을 위한 국민 서명'과 서한문을 청와대에 전달했다.
이 자리에 함께한 천주교서울대교구정의평화위원회 나승구 신부는 "실종자 가족들이 정부와 대통령에게 자기를 구하기 위한 애원을 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으로서 당당한 요구를 하는 것"라며 "한 나라의 국민이 실종되고 사고가 어떻게 됐는지도 모르는 상황에 빠졌을 때, 정부에게 진상규명을 요구할 권리가 있다"고 밝혔다.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황필규 변호사는 "피해자 가족은 정부에 무엇을 해달라는 게 아니라 청와대와 정부가 해야 할일을 책임지고 하라는 것이다. 특별하게 다뤄달라는 게 아니라 청와대와 정부가 책임지는 모범을 보여 달라고 한 것"이라며 "책임질 수 없는 무한 책임을 묻는 게 아니라 주어진 책임을 다한 것인지 평가하고 반성해 오늘부터라도 다르게 어떻게 실행할지 여부를 묻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예하운선교회 김디모데 목사는 "스텔라데이지호는 문재인 정권의 1호 민원으로 접수됐다. 그러나 별 소식이 없다"며 "세간에서는 '머리와 몸통'이 바뀌었는데 '손발'은 바뀌지 않았다고 한다. 대통령이 의지를 보여도 전 정권 실무 공무원들이 오히려 실종자 가족들에게 상처를 주고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3월 31일 우루과이 인근 남대서양 해역에서 한국인 선원 8명과 필리핀 선원 16명이 승선한 스텔라데이지호가 침몰했다. 이 가운데 22명의 선원이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
스텔라데이지호 대책위는 "미군 초계기에 의해 발견된 구명벌에 대해 4월 10일 오후부터 쏟아지기 시작한 '구명벌이 아니라 기름띠였다'는 근거 없는 보도가 나온 후 사실상 정부의 수색이 중단됐다"며 진상 규명을 요구하고 있다. 이 보도의 근거가 된 스텔라코스모호가 보낸 영문 공문 중 한 구절이 오역됐다는 것이다.
특히 미군 초계기가 발견한 구명벌 영상과 사진을 공개하고 스텔라데이지호 심해 수색을 통해 블랙박스를 확보할 것을 정부에 촉구하고 있다.
앞서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 후보 당시 스텔라데이지호 수색과 사고원인 규명을 '민원 1호'로 공약했다.
최민우 기자 cmwoo1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