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는 초등학교 6학년 여학생이다. 친구를 사귀지 못한다고 병원을 찾았다. 예쁘장한 외모에 호감이 가는 인상이었다. 학년이 바뀌면 친구들이 다가와서 쉽게 사귀고 잘 지낸다고 한다. 하지만 몇 달이 지나면 어김없이 친했던 친구들이 멀어지고 어느새 혼자만 남는다고 했다. 친했던 아이들이 반복해서 배신을 하니 P는 더욱 상처를 받고 사람에 대한 신뢰감을 잃어 마음에 벽을 점점 높이 쌓아가며 우울해졌다.
차츰 P는 자신이 문제가 있는 사람이고 아무도 자기를 좋아하지 않을거라고 말했다. 그래서 차라리 그림을 그리며 혼자 지내는 게 났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온라인 커뮤니티에 가입하여 그들하고만 소통하며 지냈다. 그림을 서로 그려서 올리고 스토리를 만들어 올리는 카페를 활용했다. P는 원래 그림 그리며 공상하는 것을 좋아해 점점 그 활동에 빠져들었다. 잠도 자지 않고 새벽까지 인테넷을 하다가 아침에 일어나기 힘들어 학교를 가는 것조차 힘들어했다. 아이의 생활이 이렇게 흐트러지다 보니 부모에게 야단을 맞게 됐고, 이후 순했던 아이가 차츰 반항적으로 변해 갔다.
P와 이야기를 해보니 시간이 지날수록 뭔가 대화에 초점이 조금씩 빗나가고 눈 맞춤도 부족한 느낌이었다. 자기만의 세계에 빠져 있는 아이였다. 이런 느낌을 완곡하게 표현하니 “친구들도 저에게 대화가 안 되고 4차원이라고 해요” 라고 말했다. P는 또 “말없이 등을 돌리는 것보다는 그나마 그렇게 말해주고 떠나는 아이들은 고마운 편이에요”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그 말이 어떤 의미인지, 어떻게 고쳐야 하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이유를 찾아보기 위해 몇 가지 검사를 해보았다.
선천적으로 사회성이 떨어지고 다른 사람에게 관심이 부족한 자폐 스펙트럼 장애(아스퍼거 장애)에 대한 검사를 해보았다. 아주 가벼운 자폐 성향이 있는 이들도 사춘기 정도의 나이가 되면 차츰 친구를 사귀어야 하는 필요성도 느끼고 친구를 사귀려는 노력도 하게 되는 경우가 많아 사춘기 이후에는 어렸을 때 보였던 전형적인 증상이 줄어 들기 때문에 감별하는 검사가 필요할 때가 있다. 증상이 가벼운 경우에는 가벼운 대인관계는 맺을 수 있다. 하지만 지속되는 의미 있는 깊은 대인 관계를 맺지 못할 뿐이다. P도 겉으로 보이는 증상은 유사했지만 이런 경우는 아니었다. 다행이었다.
지능검사와 집중력 검사를 해보니 다른 지능에 비해서 집중력이 현저히 부족했다. ‘집중력 장애’였다. 일명 ‘조용한 ADHD’이다. P는 저학년때 까지는 공부도 곧 잘 했고, 행동이 산만하지도 않고 오히려 활동성이 부족한 편이었다. 그림을 그릴 때는 몇 시간 동안 꼼짝 않고 놀라운 집중력을 보였다. 그래서인지 부모는 결과를 보고 깜짝 놀라는 눈치였다. 하지만 ADHD의 30%는 과잉행동, 충동성이 없는 ‘조용한 ADHD’ 이다. 이들은 저학년 까지는 문제가 나타나지 않고 심지어 중학교 때까지도 학교생활에 문제를 드러내기 않아서 뒤늦게 발견되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또래 여자 아이들과 집단치료를 해보니 P의 문제가 확연히 드러났다. 아이들과 대화하는 중에도 시간이 지나자 P는 딴 생각에 빠져들었다. 그러다가 말을 시키면 상황과 맥락에 살짝 벗어난 말을 하니 아이들이 뜨악해 하고 ‘대화가 안 통한다’는 말을 할 만 했다. 특히 여자 아이들은 초등학교 때에도 언어적인 의사소통이 친구관계에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더욱 어려움을 겪게 된다.
P는 천만 다행으로 중학교에 가지 전에 문제의 원인을 찾게 되었다. 그리고 간단한 치료로도 쉽게 치료가 되는 경우이니 얼마나 행운인가? 치료 후 P는 ‘삶이 달라졌다’고 표현했다. 친구들과 잘 지내니 우울함도 사라지고 온라인 커뮤니티도 멀리하고, 덤으로 학업에도 놀라운 변화가 생겼다.
이호분(연세누리 정신과 원장, 소아 청소년 정신과 전문의)
대전=정재학 기자 jhjeong@kmib.co.kr
[이호분의 아이들 세상] ‘조용한 ADHD’와 사회성
입력 2018-01-02 15:47 수정 2018-01-03 09: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