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목소리가 달라졌다… “핵단추, 내 책상에”

입력 2018-01-01 11:05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은 이번에도 육성 연설로 신년사를 발표했다. 취임 후 6년째 자신의 목소리를 직접 담아 ‘신년 과업’을 주민들에게 알리고 있다. 그동안 김정은의 목소리는 김일성을 닮았다는 평가가 많았다. 할아버지와 비슷한 외모를 내세운 그는 김일성의 목소리까지 흉내 내는 듯했다.

숭실대 소리공학연구소 2013년 김정은의 신년사 음성을 분석했다. 발성(發聲) 속도나 기본 성대 톤 등에서 김일성의 말투를 모방하려는 모습이 엿보였다. 김정은의 성대 톤은 평균 117헤르츠(Hz)의 중저음으로 김일성과 비슷했다. 목소리 울림도 김정은과 김일성이 90% 이상 흡사했다. 연구소는 “30대 청년(김정은)이 80대 노인(김일성)의 음성을 따라하다 보니 어색한 ‘노인 발성’을 한다”고 했다.

그러나 2018년 신년사에서 김정은의 목소리는 과거와 많이 달랐다. ‘젊은 사람’의 음색을 감추지 않았고, 발성 속도도 한층 빨라졌다. 자료화면 위로 음성만 흐를 때는 아나운서의 내레이션처럼 들릴 만큼 빠른 설명조의 목소리로 연설했다. 뭔가 자신감이 생긴 듯한 뉘앙스가 목소리의 색깔에 묻어났다. 이를 중계한 국내 방송사 해설진은 “과거와 어딘가 달라진 모습이 신년사 육성에서 드러난다”고 입을 모았다.

◇ 신년사 두 메시지 “내 책상에 핵단추… 평창 파견”

김정은의 신년사는 예상을 벗어나지 않았다. ‘핵무력 완성’을 선언하면서 “결코 전쟁을 걸어오지 못할 것”이라며 미국을 견제한 뒤 파격적인 ‘대화 공세’로 마무리했다. 김정은은 “평창올림픽에 대표단을 파견할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 이를 위한 회담을 거론하며 “시급하다”고까지 했다.

김 위원은 취임 후 6년째 ‘육성 신년사’를 발표했다. 조선중앙TV를 통해 방송된 신년사 육성 연설에서 “국가 핵무력 완성의 역사적 대업을 성취했다”고 선언했다. 이어 “핵 단추가 내 사무실 책상 위에 놓여 있다는 것은 위협이 아닌 현실”이라며 “미국 본토 전역이 우리의 핵 타격 사정권 안에 있다. 미국은 결코 나와 우리 국가를 상대로 전쟁을 걸어오지 못한다”고 강조했다.

이는 핵무기를 이미 실전배치했음을 시사한 것으로 해석될 수도 있는 발언이다. 김정은은 “그 어떤 핵 위협도 봉쇄 대응할 수 있으며 미국이 모험적 불장난을 할 수 없게 제압하는 강력한 억제력으로 됐다”고 덧붙였다. “핵탄두와 탄도로켓의 대량생산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고도 했다.

김정은은 신년사 뒷부분에 “북남관계를 개선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꺼냈다. 공화국(북한) 창건 70돌이 되는 2018년에 남한에서 평창동계올림픽이 열린다는 점을 언급하며 “의의 있는 일”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평창올림픽은 민족의 위상을 높이는 좋은 계기”라면서 “평창올림픽에 대표단을 파견할 용의가 있다”고 말했다.

대표단을 보내려면 남한 정부과 협의를 해야 하고, 그런 회담에 응할 뜻이 있다는 사실도 분명히 밝혔다. 오히려 회담을 하자고 적극적으로 제안하는 듯한 뉘앙스도 담겨 있었다. 김정은 위원장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 시급하다”는 취지로 평창올림픽 대표단 파견을 위한 대화의 필요성을 말했다.


◇ 가장 중요한 연설에 담은 ‘대화 공세’

북한은 매년 1월 1일 최고통치자의 신년사를 발표한다. 북한은 ‘당과 국가의 수반이 새해를 맞이하여 하는 공식적인 연설문’이라고 신년사를 정의하고 있다. 새해 국정과제를 포함한 국정운영 청사진을 대내외에 밝히는 자리다. 김정일은 신문 지면을 통해 이를 활자로 발표했으나 김정은은 영상과 육성으로 한다.

노동당 간부부터 노동자에 이르기까지 모든 주민이 의무적으로 이를 시청하거나 청취해야 한다. 신년사는 북한 주민에 대한 통치수단이기도 하다. 중앙기관을 비롯한 각 시·도 단체 및 농장·기업소별로 신년사 관철 결의모임과 궐기대회를 1월 한 달 동안 진행한다. 신년사는 최고지도자가 당·정·군·민 모두에게 직접 부과하는 과업인 셈이다.

이런 ‘의미’를 갖는 신년사에서 김정은은 ‘대화’를 공세적으로 제시했다. 핵 개발은 마무리됐으니 이제 그것을 지렛대 삼아 본격적인 ‘협상’에 나서겠다는 의지를 여과 없이 내보인 것으로 풀이된다.

◇ “북남관계 개선… 외세와의 핵전쟁 연습 그만둬야”

김정은 위원장은 "남조선에서 열리는 겨울철 올림픽 대회는 민족의 위상을 과시하는 좋은 계기가 될 것이며 성과적 개최를 진심으로 바란다"고 이례적인 ‘덕담’을 했다. 이어 "이러한 견지에서 대표단 파견을 포함해 필요한 조치를 취할 용의가 있다"며 "이를 위해 북남 당국이 시급히 만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새해는 (북한) 공화국 창건 70돌이며, 남조선에서는 겨울철 올림픽 대회가 열리는 것으로 북과 남에 다같이 의의 있는 해다. 민족적 대사를 성대히 치르고, 민족의 존엄과 기상을 내외에 떨치기 위해 동결상태인 북남관계를 개선해 뜻깊은 올해를 사변적 해로 빛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해 ‘전제조건’ 같은 발언을 내놨다. "북남 간 첨예한 군사적 긴장 상태를 완화하고 평화적 환경부터 마련해야 한다. 외세와의 모든 핵전쟁 연습을 그만두어야 하며, 미국의 핵 장비를 끌어들이는 행위를 일체 집어치워야 한다."

이 같은 발언은 남한이 지난해 7월 제안했지만 북한이 무응답으로 일관했던 군사당국회담에 응할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그 회담이 열릴 경우 북한이 남한에 요구하려는 사안을 일부 언급한 것으로 풀이된다. 북한이 줄기차게 얘기해온 ‘한·미 군사훈련 중단’을 김정은은 신년사에서 ‘외세와의 핵전쟁 연습’이란 표현으로 거론했다.

태원준 기자 wjt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