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성의 박병은… “설렘과 기다림, 그 맛에 배우하죠” [인터뷰]

입력 2017-12-31 18:02 수정 2017-12-31 20:07
배우 박병은. 씨제스엔터테인먼트 제공

2017 드라마 캐릭터 중 가장 매력적이었던 남성상을 꼽아보자면, ‘이번 생은 처음이라’(tvN)의 마상구를 떠올리는 이가 적지 않을 테다. 소년다움을 간직한 어른 남자. 때론 장난스럽지만 누구보다 속 깊고 진중한 마상구는 배우 박병은(40)을 통해 생명력을 얻었다.

마상구는 이렇게나 멋진 남자였다. 소개팅 앱 개발 업체 CEO인 그의 제1 경영 목표는 높은 매출이 아닌 직원들의 행복이다. 결코 권위 따위를 내세우지 않는다. 즐거운 회사 분위기를 위해 솔선수범한다. 까칠한 직원(이민기)의 비위를 맞추는 것도 그의 몫. 잘 보여야 하는 투자자라 할지라도 술자리에서 여성에게 치근덕대는 꼴은 두고 보지 못한다.

사랑할 때는 또 어떤가. 상대방(이솜)에게 자신의 마음을 솔직하게 고백하지만 그 사람의 감정까지 강요하진 않는다. 뒷골목에 홀로 숨어 아이처럼 엉엉 눈물을 쏟을지언정. 연인을 위하는 세심함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여자친구가 원하는 건 뭐든 오케이. 몸이 불편한 여자친구의 어머니까지 성심을 다해 보살핀다.

이토록 센스 넘치고 다정다감하며 바른 가치관을 가진 남자라니. 무려 ‘마성의 마상구’라는 수식이 붙었다. 그 치명적 매력에 여심은 요동쳤다. 실제 박병은의 모습과 유난히 닮아 보이는 건 착각이 아니다. 그간 다소 차가운 이미지에 갇혀있던 박병은은 이번 작품을 통해 ‘아는 사람만 알던’ 그만의 매력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최근 서울 강남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박병은은 “마상구는 연애를 잘 아는 마초남처럼 행동하지만 알고 보면 허당기 있는 순수남이다. 이 캐릭터를 처음 받았을 때 ‘귀엽다’는 생각부터 들었다”며 “그 순진하고 귀여운 면모를 잘 표현해야 그가 하는 엉뚱한 행동들도 이질감 없이 받아들여질 거라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드라마 ‘이번 생은 처음이라’ 극 중 장면. tvN 제공

20년 가까이 연기를 해 온 그에게 ‘이번 생은 처음이라’는 배우 인생 중 가장 기억의 남을 작품이란다. ‘이렇게 편하게도 연기를 할 수 있구나’란 깨달음을 처음 얻었다. 유난히 편안하고 자유로웠던 현장 분위기 덕분이었다. 연기에 있어서만큼은 완벽주의인 그로써는 부담감을 내려놓고 촬영에 임한다는 것부터 색다른 경험이었다.

“보통 작품을 할 때는 최대한 집중하려고 노력하는 편이에요. 그간 맡았던 캐릭터들이 냉소적인 인물이거나 다크한 악당인 경우가 많기도 했지만요. 이번에는 명랑 쾌활하고 코믹하면서 멜로도 곁들여진 작품이어서 그런지 릴렉스해진 느낌을 많이 받았어요.”

마상구 역은 그야말로 몸에 꼭 들어맞는 옷이었다. 밝고 쾌활하고 장난스럽기도 한, 그의 실제 성격을 빼닮았다. 박병은은 “나 역시 마상구처럼 할 얘기는 하되 상대방 기분 나쁘지 않게 하는 재주가 있는 것 같다. 사람들을 재미있게 해주는 유머도 없지 않다(웃음). 기본적으로 타인에 대한 연민을 갖고 있는 점도 비슷하다”고 얘기했다.

“단편적이지 않은 다채로운 감정들을 연기할 수 있어서 좋았어요. 개인적으로는 박병은이라는 배우가 좀 더 나아갈 수 있는 계기가 된 것 같아요. 진지하게 휘몰아치는 감정 연기만 한다고 해서 발전하는 게 아니라, 밝고 코믹한 역할을 해도 배우로서 크게 성숙할 수 있다는 걸 느꼈죠. ‘배우로서 또 큰 걸 하나 얻었구나’ 싶습니다.”

흠잡을 데 없는 연기력을 지닌 베테랑 배우의 입에서 ‘발전’ ‘성숙’이라는 단어가 나오기가 어디 쉬운가. 너무 겸손한 말 아니냐는 성화에도 그는 단호하게 말을 이었다. “30대 초중반까지만 해도 ‘연기 이 정도면 열심히 했다. 잘 안다’고 생각했어요. 근데 하면 할수록 ‘내가 진짜 부족한 게 많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계속 배우고 있는 거죠.”

배우 박병은. 씨제스엔터테인먼트 제공

스스로에서 엄격했던 박병은은 이번 작품을 통해 그런 압박감이 많이 해소됐다고 했다. “예전에는 NG 한 번만 내도 괴로웠거든요. 집에 가서 엄청 자책하고. 근데 이번엔 NG를 내도 즐겁더라고요. 다 같이 웃어주는 분위기가 되다 보니까…. 이렇게 즐겁게 NG 낸 적도 처음일 거예요. 여러모로 좋았어요 정말.”

연기 방식 자체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영화 ‘안시성’ 촬영 중인 그는 “카메라 앞에서 내가 자유로워졌음을 느낀다”고 털어놨다. “그렇게 오랫동안 연기를 했는데도 카메라를 잘 아는 게 아니었던 거죠. 내 몸짓과 말과 행동이 이전보다 훨씬 자유로워진 것 같아요. 꾸밈없이 연기하게 되더라고요. 앞으로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아요.”

박병은은 올 한해 그야말로 가열차게 달렸다. ‘추리의 여왕’(KBS2) ‘이번생은 처음이라’ 두 편의 드라마로 시청자를 만났고, 영화 ‘원라인’ ‘특별시민’을 선보였으며, 차기작 ‘악질경찰’ 촬영까지 끝마쳤다. “무엇보다 부모님이 기뻐하셔서 기분이 좋다”는 그는 “내년에도 좋은 작품을 많이 만났으면 좋겠다”는 소박한 바람을 전했다.

“배우로서 큰 목표 같은 건 잘 세우지 않아요. 특별한 새해 계획도 없어요. 주어진 매 작품에 최선을 다하고, 하루하루 열심히 살 뿐이죠. 다만 내년에 어떤 작품들이 찾아올지 기대가 돼요. 그렇게 설레고 기다리는 맛에 배우 하는 것 같아요(웃음)”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