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시지 17개·5만원 휴대폰 ‘장발장‘들 풀려나… 文정부 첫 특사

입력 2017-12-29 16:39 수정 2017-12-29 18:21
사진=픽사베이

리모(58)씨는 심야에 슈퍼마켓에 몰래 들어갔다. 먹을 것을 훔치기 위해서였다. 그는 소시지 17개와 과자 1봉지를 훔쳤다. 초범이었다. 그가 훔친 물품은 모두 합쳐 8900원어치였었다. 누군가는 수백억, 수천억을 횡령·배임하고도 집행유예를 선고받는 나라에서 그는 소시지 17개와 과자 1봉지를 훔쳐 징역 8개월을 선고받았다.

문재인 대통령은 29일 취임 후 처음으로 특별사면을 단행했다. 특별사면 대상자 가운데는 리씨처럼 생계형 절도 사범 등이 다수 포함됐다.

사면(赦免)이란 대통령의 고유권한으로 형벌권을 소멸시키는 제도다. 즉 범죄에 대한 처벌을 하지 않는 것이다. 사면에는 특정 죄에 대해 실시하는 ‘일반사면’과 특정 범인을 대상으로 하는 ‘특별사면’이 있다.

이중 특별사면은 일반사면과 달리 국회 동의 없이도 대통령이 명할 수 있다. 대통령이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자의적으로 특별사면을 오·남용할 수 있는 여지가 있는 셈이다. 하지만 이 경우 정치적 비판의 대상이 되고 여론은 악화된다. 이 때문에 특별사면은 명칭대로 생계형 범죄 등 불우한 환경의 수형자나 억울한 수형자에 대해 ‘특별히’ 사용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끊임없이 제기돼왔다.

이번 특별사면에는 이러한 목소리가 반영돼 ‘장발장 사면’이 키워드 중 하나로 꼽혔다. 청와대에 따르면 법무부에서 사면을 ‘서민생계형’으로 진행하자고 건의했고, 문 대통령이 이를 받아들여 사면 기조를 정했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이번 사면은 서민생계형 사범을 대상으로 한다는 원칙을 처음부터 큰 틀에서 그림을 그리고 진행했다”며 “사면심사위원회에서 그러한 원칙 아래 세부기준들을 논의했다”고 말했다.

사면 대상자에는 리씨 외에 생활고 때문에 생필품을 훔치다 적발된 생계형 절도 사범 등 불우한 환경의 수형자들이 포함됐다. 5만원 상당의 휴대전화를 훔쳐 징역 6개월을 선고받은 수형자, 킹크랩 2마리를 훔쳐 역시 징역 6개월을 받은 복역자 등 서민생계형 사범 및 불우 수형자 18명이 포함됐다.

반면 문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 공약으로 내걸었던 대 중대 부패범죄자는 사면 대상에서 배제됐다. 문 대통령은 뇌물·알선수재·알선수뢰·배임·횡령을 5대 중대 부패범죄로 규정하고 이들에 대해서는 사면권을 제한하겠다고 공약했다.

이 때문에 꾸준히 사면 대상자로 거론돼온 한명숙 전 국무총리와 이광재 전 강원도지사가 사면에서 제외됐다. 다만 청와대 관계자는 “이들은 딱 5대 중대 범죄 범주에 해당하지는 않지만 돈과 관련된 정치자금법을 위반했기 때문에 사면에서 배제가 됐다”고 설명했다.

권중혁 기자 gree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