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끓는 여론에… 文 대통령 서둘러 입장 표명

입력 2017-12-29 07:59

문재인(얼굴) 대통령이 한·일 위안부 합의를 사실상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입장을 공개적으로 밝히면서 2년 전인 2015년 12·28 합의는 다시 무효로 돌아갈 공산이 커졌다. 청와대는 ‘재협상’이나 ‘합의 파기’는 아니라고 했지만, 문 대통령의 언급 수위로 볼 때 사실상 재협상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은 28일 오전 10시30분쯤 별도 입장문을 통해 위안부 합의를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문 대통령은 “국제사회의 보편적 원칙에 위배될 뿐 아니라 피해 당사자와 국민이 배제된 정치적 합의였다는 점에서 매우 뼈아프다”며 “또한 현실로 확인된 비공개 합의의 존재는 국민들에게 큰 실망을 줬다”고 말했다. 이어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진실”이라며 “진실을 외면한 자리에서 길을 낼 수는 없다”고도 했다. 박근혜정부에서 이뤄진 합의에 대한 강한 비판이 담겨 있다.

문 대통령의 입장문은 한·일 위안부 합의 검토 태스크포스(TF)의 조사 결과 발표 하루 만에 나왔다. 문 대통령이 직접 입장 발표를 지시했다고 한다. 당초 아침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 주재의 현안점검회의 때만 해도 대통령 입장 발표에 대한 얘기는 없었다. 하지만 오전 9시쯤 대통령 일일현안보고 때 분위기가 바뀌었다. 청와대 관계자는 “당초 신년 메시지 등을 통해 관련 사안을 언급할 것으로 예상됐으나 대통령이 서둘러 입장 발표를 하라고 결정하신 것”이라며 “입장문도 임 실장과 상의해 직접 작성했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이 직접 별도 입장을 발표한 것은 전날 TF 보고서 발표 이후 위안부 합의에 대한 비판 여론이 거세진 점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신속한 현안 대응을 강조하는 문 대통령의 지론도 반영됐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대통령도 이 문제를 심각하게 인식하고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라고 말했다.

시민단체 ‘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 회원들이 28일 서울 종로구 외교부 청사 앞에서 2015년 12·28 한·일 위안부 합의 파기를 촉구하며 시위하고 있다. 최현규 기자

문 대통령은 직접적으로 ‘합의 파기’를 거론하지 않았다. 하지만 최종적·불가역적 합의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한 만큼 앞으로 정해진 수순은 분명하다. 문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위안부 합의 재협상’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청와대 관계자는 “후속 조치에 대한 가이드라인이 될 수 있기 때문에 합의 파기 및 재협상 여부는 현재 답할 수 없다”며 “합의 파기 및 재협상 여부까지 포함한 후속 조치를 1월 중으로 발표할 것”이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입장문에서 “한·일 양국이 불행했던 과거의 역사를 딛고 진정한 마음의 친구가 되기를 바란다. 그런 자세로 일본과의 외교에 임하겠다”고 말했다. 역사 문제와 별도로 양국 간 미래지향적 협력을 위해 정상적인 외교 관계를 회복하겠다는 ‘투 트랙’ 전략도 소개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한·일 관계에 대한 입장은 투 트랙이며, 대통령 입장문도 그런 원론적 차원”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벌써부터 ‘합의 파기는 받아들일 수 없다’며 강력 반발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역사 문제와 별개로 양국 협력이 제대로 이뤄지기는 쉽지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글=문동성 기자 theMoon@kmib.co.kr, 사진=최현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