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지난해 2월 개성공단 가동을 전면 중단한 것은 박근혜 당시 대통령의 일방적인 구두 지시에 따른 것으로 밝혀졌다. 박근혜정부는 폐쇄 명분으로 개성공단 자금이 핵·미사일 개발에 유용됐다고 밝혔지만 구체적 근거가 없는 주장으로 조사됐다.
통일부 정책혁신위원회(위원장 김종수 가톨릭대 교수)는 27일 정부서울청사에서 ‘통일부 정책혁신 의견서’를 공개했다. 혁신위는 개성공단 폐쇄와 5·24 조치, 금강산 관광 중단 등 이명박·박근혜정부 시절 대북정책 전반을 점검하고 정책 개선 방안을 통일부에 전달했다.
혁신위에 따르면 박 전 대통령은 지난해 2월 8일 “개성공단을 철수하라”는 구두 지시를 내렸다. 북한이 지난해 1월 6일 4차 핵실험을 강행하고, 2월 7일 장거리미사일 ‘광명성 4호’를 발사한 데 대한 대응조치였다. 개성공단 주무부처인 통일부 의견은 묵살됐다. 박 전 대통령 지시는 김규현 전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을 통해 홍용표 전 통일부 장관에게 통보됐다.
당시 박근혜정부는 개성공단 폐쇄 결정이 그해 2월 10일 열린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회에서 최종 결정됐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혁신위 발표를 보면 개성공단 폐쇄 방침은 NSC 상임위 이틀 전에 이미 정해진 것으로 보인다.
혁신위는 “5·24 조치에도 중단 없이 운영되던 개성공단이 갑작스럽게 명확한 근거도 없이 전면 중단됐다”며 “국민적 갈등이 심화되고 대북 사업의 신뢰를 잃었을 뿐 아니라 막대한 재정적 손실과 회복하기 어려운 손실도 입게 됐다”고 했다. 또 “개성공단 중단 결정은 초법적 통치행위였다”면서 “안보 위기 상황에서 고도의 정치적 행위를 하는 건 가능하다 해도 폐쇄 조치는 헌법과 법률에 따라 적법 절차를 준수해야 했다”고 지적했다.
박근혜정부는 개성공단 폐쇄 방침을 밝힌 ‘정부성명’에서 “개성공단 임금이 핵·미사일 개발에 전용됐다”고 주장했다. 혁신위는 당시 정부가 개성공단 자금 전용 주장의 근거로 삼은 것으로 보이는 정보 문건을 확인한 결과, 문건은 탈북민 진술과 정황만 기술했을 뿐 구체적인 증거를 제시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탈북민 진술도 일반적 추측에 불과했다고 혁신위는 소개했다.
통일부는 이 같은 정책혁신위원회 의견서를 "겸허한 자세로 받아들이겠다"고 밝혔다. 통일부는 "과거 통일부가 추진해온 대북·통일정책과 관련해 위원회가 사실관계 확인을 거쳐 많은 문제점을 제기했고, 특히 주요 정책을 결정하고 추진하는 과정에서 충분한 의견수렴이나 적절한 절차를 거치지 않았다고 지적하고 있다"며 이같이 밝혔다.
통일부는 "성찰과 반성을 토대로 혁신을 이뤄 대북·통일정책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높일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며 "국민적 합의를 바탕으로 투명하고 공정하게 대북·통일정책을 추진하고, 남북관계 및 통일문제에 대한 정책 결정과 추진 과정에서 통일부가 본연의 역할을 다할 수 있도록 역량과 전문성을 강화하겠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위원회가 제시한 혁신방안에 대해서는 필요한 후속 조치를 해나갈 계획"이라며 "향후 정책 추진 과정에 반영해 나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덧붙였다.
◇ 개성공단 설립~폐쇄 일지
▲2000년 8월 = 현대아산, 북한과 '공업지구 개발에 관한 합의서' 채택
▲2002년 11월 = 북한, '개성공업지구법' 제정
▲2003년 6월 = 개성공단 1단계(330만㎡) 건설 착공식/ 8월 = 남북, 투자보장 등 4개 경협 합의서 발효
▲2004년 6월 = 개성공단 시범공단 준공식…시범단지 15개 입주기업 계약 체결/ 12월 = 개성공단 첫 시제품 생산
▲2006년 5월 = 개성공단 1단계 330만㎡ 토지조성공사 완료/ 11월 = 개성공단 북한근로자 1만 명 고용 돌파
▲2007년 5월 = 남한, '개성공업지구 지원에 관한 법률' 제정
▲2008년 3월 = 북한, 남측 당국 인원 전원철수 요구…남측 당국자 11명 철수/ 11월 = 개성공단 누적 생산액 5억 달러 달성/ 12월 = 북한, 개성공단 상주 체류 인원 880명으로 제한하는 내용의 '12·1 조치' 시행
▲2009년 3월 = 북한, 한미연합(키 리졸브)훈련 기간 육로통행 차단/ 6월 = 북한, 임금 월 300달러·토지사용료 5억 달러 요구…남한, 수용거부/ 9월 = 북한, '12·1 조치' 해제…경의선 육로통행 정상화
▲2010년 5월 = 정부, 천안함 관련 '5·24 조치' 발표…개성공단 제외한 남북교역 중단 및 개성공단 신규투자 금지/ 11월 = 정부, 연평도 포격도발 대응해 개성공단 방북 일시금지
▲2012년 2월 = 개성공단 활성화 조치…남북 당국자 회담 추진/ 4월 = 북한 장거리 로켓(미사일) 발사에도 개성공단 정상운영
▲2013년 3월 = 북한, 판문점 직통전화 차단…개성공단은 정상 가동/ 4월 = 북한, 개성공단 북한근로자 전원 철수…가동 중단
5월 = 개성공단 체류 남측 인원 전원 철수/ 8월 = 남북, '개성공단 정상화를 위한 합의서' 채택…남북공동위원회 구성/ 9월 = 개성공단 재가동
▲2014년 1월 = 개성공단 전자출입체계 완공…시범 가동/ 6월 = 독일 바늘업체 '그로쯔 베커르트' 영업점 설치…외국기업 최초
▲2015년 2월 = 북한, 개성공단 최저임금 5.18% 인상 일방 통보/ 4월 = 정부, 개성공단 임금동결 공문 입주기업에 발송/ 5월 = 정부, 민간·지자체 남북 교류 활성화 방안 발표/ 7월 = 6차 개성공단 남북공동위원회 임금 협의 불발/ 8월 = 남측 개성공단관리위원회-북측 중앙특구개발지도총국 개성공단 최저임금 5% 인상 합의
▲2016년 1월6일 = 북한, 4차 핵실험/ 2월2일 = 북한, 국제해사기구(IMO) 등에 "8~25일 지구관측 위성 '광명성' 발사" 통보/ 2월6일 = 북한, IMO 등에 '광명성' 발사 예고기간 2월7~14일로 변경 통보/ 2월7일 = 북한, 오전 9시30분께 함경북도 철산군 동창리 발사장서 장거리 로켓(미사일) 발사/ 2월10일 = 정부, 개성공단 전면 중단 발표/ 2월12일 = 홍용표 통일부 장관 브리핑 "개성공단 임금 대량살상무기 사용 우려"/ 2월14일 = 홍용표 통일부 장관 '일요진단' 출연 "개성공단 자금 70% 당 서기실 상납. 핵 미사일 전용"/ 5월9일 = 개성공단 기업 헌법소원심판 청구/ 7월29일 = 정부 헌법재판소에 답변서 제출 "고도의 정치적 결단, 적법절차 원칙"
태원준 기자 wjt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