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대 최덕경 교수,‘사시찬요역주(四時纂要譯註)’ 발간

입력 2017-12-28 09:25
중국 당대(唐代) 한악(韓鄂·840~923)이 농민의 생활과 민속을 월령(月令) 형식으로 기술한 농서인 ‘사시찬요(四時纂要)’의 역주서가 최근 2017년 우리나라에서 발굴된 ‘계미자본(癸未字本)’을 저본(底本·문서의 초고)으로 출간돼 관심을 끌고 있다. 계미자(癸未字)는 조선 태종 3년(1403) 계미년에 만든 조선 시대 최초의 구리 활자다.


부산대 사학과 최덕경 교수는 지난 6월 경북 예천에서 발굴된 조선 태종 때의 동판 ‘계미자본’을 저본으로 삼아 최근까지 발견된 ‘사시찬요’의 ‘중각본(重刻本)’과 ‘필사본(筆寫本)’ 등 3종류를 모두 소개한 ‘사시찬요 역주(四時纂要譯註)’를 발간했다고 28일 밝혔다.

특히 이 책에서 저본으로 삼은 ‘계미자본’은 조선 태종 때인 1403~1420년에 인쇄된 희귀본으로 이미 1590년 조선에서 중각돼 1961년 일본에서 출판된 중각본 ‘사시찬요’보다 180여 년이 앞서 있는 것을 이번 역주서에서 처음으로 세상에 소개하는 것이다.

또 이번 역서에는 몇 년 전 새롭게 발견된 필사본 ‘사시찬요’도 함께 소개했는데, 이 필사본은 누가 언제 쓴 것인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사시찬요서(四時纂要序)’부터 12월까지의 내용이 온전히 기록돼 있다.

‘사시찬요’는 비록 당대의 서적이지만 중국에서는 이제까지 당대 이후에도 판각됐다는 기록만 남아 있을 뿐 실물은 발견되지 않았다. 그러던 중 1961년 일본에서 발견돼 처음으로 세상에 알려졌으나, 그것은 1590년 조선에서 목판으로 중각된 판본이었다.

이처럼 ‘사시찬요’는 원래 당대에 출판된 서적이나 한국에서 판각되고, 일본에 의해 세상에 알려지게 된 책이다. 그런 점에서 ‘사시찬요’는 동아시아 3국에서 모두 주목했던 농서였음을 알 수 있다.


최 교수는 “이번 역주서에서 최근까지 발견된 3종의 ‘사시찬요’ 중각본과 계미자본, 필사본을 ‘교기(校記)’를 통해 한꺼번에 상호 대조해 그 내용상의 차이를 밝혀 소개했다”고 말했다.

특히 그는 “당대의 대표적인 농서인 ‘사시찬요’는 동아시아 문명이 생활경제상 어떤 모습으로 투영됐는가를 살필 수 있는 귀중한 자료”라며 “이번 주역서가 기존의 판본보다 가장 원형에 가까운 사료로서 세상에 처음 공개된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최 교수는 “조선 태종 때에 계미자본, 그 후 중간본이 간행되고 필사본 ‘사시찬요’까지 등장했다. 또한 17세기에 ‘사시찬요초’, 18세기에 ‘증보사시찬요’와 같이 ‘사시찬요’의 이름을 모방한 농서들이 속속 등장한 것은 농업생산 제고에 ‘사시찬요’의 역할이 컸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라며 “그런 점에서 계미자본 ‘사시찬요’는 당대(唐代)에 근접한 새로운 농서의 발견이라는 측면을 넘어 조선 초의 농정(農政)과 현실극복의 의지를 살필 수 있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고 강조했다.

부산=윤봉학 기자 bhyo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