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분의 아이들 세상] 왕따 당하는 아이

입력 2017-12-27 09:31
이호분 연세누리정신과 원장

A는 초등학교 5학년 여학생이다. 외모가 ‘못생겼다’다는 이유로 집단 따돌림을 당한다고 내원했다.

처음에는 한 두 명의 남자 아이들의 놀림으로 시작되었는데 일파만파로 퍼져나가 이제는 반 전체가 놀리고 친했던 여자 아이들이나 다른 반 아이들도 알게 되고 심지어 학원에 까지 소문이 돌면서 A를 피한다고 했다. A의 외모가 아주 독특한 것도 아니었다. 단지 다른 여자 아이들에 비해 덩치가 좀 클 뿐인데 괴물 보듯이 멀리하고 A가 만진 물건은 더럽다며 만지지도 않는다고 한다.

A는 1년 전 전학을 왔다. 이전 학교에서는 아이들과 별 무리 없이 어울렸고 적극적이면 활발한 편이어서 아무 걱정 없이 전학을 시켰다. 전학 후 A는 따돌림이 괴로웠지만 부모에게 얘기하면 아이들 끼리 하는 으레하는 장난으로 생각하며 그냥 ‘모른척해라’‘농담으로 하는 거니 그냥 농담으로 받아줘라’ 라고만 얘기해주었다.

A는 자신이 힘든 점을 부모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니 야속하기만 하고 화가 나 마음의 문을 닫아 버리고 말을 하지 않았다. 선생님에게 이야기 해볼까도 생각했지만 선생님은 평소에 고자질하는 것을 싫어하고 선생님에게 이야기한 것을 아이들이 알게 될 때 따돌림이 더욱 심해지고 자기를 찌질한 아이라고 더욱 놀리게 될까봐 두려웠다.

활발하고 적극적이던 A가 차츰 변해갔다. 말수도 현저해 줄고 짜증이 많아졌으며, 집중을 못하고 산만해졌다. 당연히 성적도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제서야 부모는 문제를 심각하게 느끼고 병원을 찾았다. 일 년이란 시간이 얼마나 지옥 같았을까?

조사에 따르면 왕따를 당한 학생 중에서 자신이 겪고 있는 따돌림 문제를 부모나 교사 등 어른에게 도움 요청한 경우는 전체의 사분의 일 정도 뿐이라고 한다. 왜 그럴까? 첫째 A의 부모처럼 아이들은 자라면서 으레 장난도 하고 서로 놀리고 싸우는 과정을 겪는다고 생각해서 적극적으로 나서기 보다는 무시하는 어른들이 아직도 많기 때문이다. 둘째, 무력감 때문이다. 어른드른 아이가 겪고 있는 분노, 두려움, 외로움을 이해하고 공감을 표현하지 못하고 해결책만을 제시한다. ‘너도 같이 놀려 주면 되지’ ‘한번 흠씬 두들겨 패 줘라’라는 식의 섣부른 조언은 아이가 실행하기도 어렵고 실행하지 못할 때 더욱 더 자신을 비하하게 된다. 셋째 어른들에게 이야기 하는 것이 ‘고자질’이라고 생각하여 망설이게 되는 것이다. 어려서부터 친구의 나쁜 행동을 어른들게 이르는 고자질은 나쁜 것이고 유치한 행동이라고 배웠기 때문이다. ‘고자질’과 ‘신고’는 엄연히 다른 것이고, 불의한 행동을 눈감아주거나 방관하는 것이 오히려 ‘비겁한’ 행동임에도 이를 구별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어른들은 먼저 ‘판단하는 사람’아닌 아이의 고통을 이해해주는 ‘아이 편’이 되어 주어야 한다. 또 필자의 경험과 여러 연구 결과에 의하면 집단 따돌림이나 괴롭힘에 대한 교사의 역할과 태도가 중요하기 때문에 교사와 긴밀하게 상의해야 한다. 부모나 아이가 스스로 해결하기에는 따돌림이 주는 폭력성은 너무나 강하고 잔인하다. 교사는 사소한 괴롭힘에도 단호한 태도를 보여야 한다.

교사가 약자에 대한 배려나 다양성에 대해 존중하는 태도를 가지고, 가르칠 때 학생들도 집단 따돌림 문화에서 약자의 인권에 대한 민감성을 가지고 약자를 보호하고 편 들어 주는 방어행동이 증가한다. 가해자의 무자비한 행동이 두려워서, 혹은 자신도 따돌림의 피해자가 되지 않을까 방관하게 될 때 방관하는 아이들도 마음에 상처를 받는 것이다. 이 상처는 반복되어 두려움을 확대 재생산하여 따돌림 문화가 만연하게 되고 학습된다. 따돌림 받는 친구를 보호해주고 약자를 편들어 주는 건강한 용기를 아이들이 보고 배우게 하며 평소에 강조해 주어야 한다. 이런 교육을 평소에 받은 학급에서는 따돌림이 현저히 줄었다.

이호분(연세누리 정신과 원장, 소아청소년 정신과 전문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