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대의 솔로몬’… 천종호 판사가 소년범에게 한 제안

입력 2017-12-26 14:07 수정 2017-12-26 14:10
SBS 다큐멘터리 ‘학교의 눈물’ 방송캡처

“‘어머니 사랑합니다’를 10번 외쳐보라”

‘소년범의 대부’ ‘호통 판사’ 등으로 잘 알려진 천종호 부산가정법원 부장판사는 지난 22일 재판정에 선 앳된 얼굴의 중학생 소년에게 특별한 제안을 했다.

사기 미수 혐의로 법정에 선 A군은 “어머니 사랑합니다”를 10번 외치더니 눈물을 쏟았다. 천 판사는 A군의 어머니 B씨에게도 ‘A야 사랑한다’는 말을 10번 외치도록 했다. B씨는 아들의 이름을 부르며 사랑한다고 외쳤고 눈물을 흘렸다. B씨 품에 안겨 있던 3살짜리 A군의 이부여동생은 “엄마, 울지마”라며 위로했다.

천 판사의 제안으로 법정 안은 얼싸안고 우는 일가족 3명의 눈물이 바다를 이뤘다. 이 광경을 본 판사, 국선 보조인, 재판 실무자, 법원 경위 등도 안타까운 마음에 눈시울을 붉혔다.

A군의 비행은 한 달 전 가출로부터 시작됐다. 아버지가 교통사고로 숨진 후 10년 넘게 자신을 홀로 키우던 어머니 B씨가 재혼하자 A군은 가출을 결심했다. 새 아버지의 각별한 보살핌에도 사춘기에 접어든 A군은 상실감에 힘들어했다.

가출한 후 A군은 돈이 없어 인터넷 물품 사기를 저지르려 은행에서 어머니 B씨의 명의를 도용해 계좌를 만들다가 발각됐다. 은행 측이 법원에 ‘소년보호재판 통고제’를 신청했고, B씨는 아들이 더 이상 비뚤어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 통고제를 신청했다. 소년보호재판 통고제는 비행 학생의 죄를 경찰이나 검찰 조사 없이 곧바로 법원에 알려 재판을 받도록 하는 제도다.

이날 천 판사의 현명한 제안은 법정에서 오빠를 만난 여동생이 반가운 마음에 쪼르르 달려와 안기는 모습을 본 후 나왔다. 천 판사는 “엄숙한 법정에서 천진난만한 아이의 행동에 갑자기 마음이 울컥했다”며 “관계에 문제를 겪는 가족에게 평소 잘 표현하지 않는 사랑의 감정을 드러내도록 하면 의외로 갈등이 쉽게 해소되는 경우가 많아 A군 모자에게도 그런 기회를 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천 판사는 2013년 우리 사회의 학교폭력 현실을 다룬 SBS 다큐멘터리 ‘학교의 눈물’에 출연해 학교폭력 가해 학생들에게 단호한 모습을 보여 깊은 인상을 남겼다. 최근 부산 여중생 폭행 사건으로 재언급되기도 했다.

문지연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