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명이 사망한 제천 노블 휘트니스 스파 화재사고가 발생한 지 나흘이 지났다. 하지만 이 사고가 이처럼 많은 이들의 목숨을 앗아갈 만한 사고였는지에 대한 의문이 끊이지 않고 있다. 소방당국의 초기 대응 및 구조과정에 대한 여러 가지 지적이 제기되는 이유다.
대피하기 위한 동선이 가장 짧았던 2층 여성사우나에서 20명의 사망자가 나왔다는 점이 가장 큰 의문이다. 사우나 내부와 탈의실 사이의 유리 슬라이딩 도어의 작동 여부, 비상통로를 막아놓은 물품 등이 논란이 됐다. 만약 비상통로 위치를 알고 있고 안에서 잠겨 있던 방화문을 열 수 있었던 한 사람만 있었다면 상당수 피해자들은 탈출할 수 있었다.
실제로 3층 남성사우나에 있던 10여명은 사고 발생 10분 내에 이발사의 안내에 따라 비상통로를 통해 탈출했다. 하지만 2층 여성사우나에 있던 이들은 탈출하지 못했다. 비상통로의 위치를 모른 채 중앙통로에 유독가스가 올라오는 상황에서 2층 여성사우나에 있던 이들의 탈출구는 외부와 접해있는 사우나 내부의 통유리를 깨는 방법뿐이었다.
소방대가 화재 현장에 도착한 것은 최초 신고 7분 만인 오후 4시. 최초 출동한 소방대원들은 화재 진압대원이었고 이들은 1층 주차장과 건물 옆 대형 LPG통 주변 화재 진압에 집중했다. 구조 전문 대원이 현장에 도착한 것은 오후 4시6분이었다. 이일 충북도소방본부장은 지난 22일 브리핑에서 2층 여성사우나 진입이 늦어진 데 대해 “구조대원들은 출동 직후 건물 뒤에서 매달려 있던 인명을 먼저 구조하느라 불가피한 측면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4시30분까지 구조대원들은 건물 뒤에서 매트리스와 에어매트를 설치하는 작업에 매달렸다. 현장 주변에 있던 사람들은 “2층에 사람이 많다”고 외쳤지만 이들의 목소리는 묻혔다. 소방대원들은 2층 여성사우나에 사람들이 갇혀 있다는 사실을 제대로 알지 못했다.
일각에선 소방대가 건물의 설계도면도 확보하지 못한 채 출동했다고 지적한다. 하지만 소방당국 관계자는 25일 “소방대상물의 위치와 구조, 출동로 등 소방여건을 사전 조사해 놓은 경방카드가 데이터베이스화되어 있어 어디서든 파악할 수 있다”며 “도면 소지를 문제 삼는 건 무의미하다”고 일축했다. 현장상황과 투입 자원의 한계가 더 큰 문제였다는 의미다.
소방관들이 건물 전면에서 2층 통유리창을 깬 것은 오후 4시37분이었다. 건물 옆 LPG통 폭발 등을 우려해 화재를 어느 정도 진압한 후 유리를 깼다는 설명이다.
구조대원들이 비상계단을 통해 2층으로 올라가 안쪽에서 잠겨있던 비상구 문을 부수고 사우나 내부로 진입한 시간은 4시42분쯤이었다. 구조대원이 조금 더 일찍 비상계단을 통해 2층 사우나로 진입했다면 일부라도 생존자를 구조할 수 있었다는 질책도 나온다. 소방대원들은 출동 직후 한동안 1층 화재 진화에 매달렸고, 사람이 없었던 지하를 수색하는데도 시간을 허비했다. 현장에 출동했던 한 소방관은 “출동 초기엔 1층 화재가 맹렬했고 비상통로에도 불길이 거센 상황이어서 진화가 우선이었다”고 말했다. 불길 탓에 당시엔 비상통로로 2층으로 진입하기 어려웠다는 것이다.
희생자들이 유독가스를 흡입해 화재 초기에 사망했을 것으로 보고 있는 소방당국의 판단과 달리 일부 유족은 화재 발생 4시간 뒤에도 희생자와 통화했다는 주장을 내놨다. 건물 6∼7층 사이 계단에서 시신으로 발견된 안모(58)씨의 여동생은 사고 당일 오후 8시1분에 20초 동안 통화한 기록을 전날 공개했다. 유족들은 “전화가 연결됐을 때 아무런 목소리도 듣지는 못했다”며 “당시 생존해 있던 누군가가 전화를 받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한 관계자는 “경황이 없는 상황에서 음성메시지로 전화가 연결됐을 가능성도 있다”고 조심스레 말했다. 그는 “전화를 걸었을 때 받지 않으면 메시지가 나오는데 음성을 남길 건지 번호를 남길 건지 확인하는 시간만 40초 가까이 된다”고 했다. 경찰은 희생자와 유족의 통화 내역을 확보해 희생자들의 최후 생존시간을 밝혀낼 방침이다.
제천=홍성헌 기자 adhong@kmib.co.kr, 사진=서영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