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타는 건물에서 가까스로 빠져나온 사람들은 공포에 떨었고 건물 안에 가족들을 남겨둔 시민들은 절규했다. 외벽에 매달려 있던 사람들이 민간 청소업체의 사다리차에 구조되기도 했다. 불길이 진압된 뒤에도 구조대원들은 밤새도록 검게 탄 건물 구석구석을 뒤지며 생존자를 찾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사망자의 숫자만 늘어갔다.
21일 대형 화재로 수십명의 사상자를 낸 충북 제천시 하소동 두손 스포리움 건물은 안팎이 모두 난장판이었다.
오후 3시53분쯤 이 건물은 붉은 화염에 휩싸여 잿빛 연기를 가득 뿜어내고 타올랐다. 한 목격자는 “펑 펑 터지는 소리가 1층 주차장에서 나더니 새카만 연기가 2층에서 나왔다”며 “마치 대포 소리 같은 폭발음이 20여차례나 들렸다”고 전했다.
하늘을 가릴 정도로 연기가 치솟자 시민들이 몰려들었다. 건물 앞에 다가선 한 남성은 “아내가 2층 사우나에 갇혀 있다”며 “어서 구해 달라”고 주변 사람들을 붙잡고 하소연했다. 한 목격자는 “사람들이 난간에 매달려 있었고 2층에서는 로프를 타고 빠져나온 사람도 있었다”고 전했다.
시민의 신고를 받은 제천소방서 소방차와 소방대원이 7분만에 현장에 도착했다. 이 지역 소방차 20여대와 소방대원 50여명, 헬기 2대가 총출동했다. 주차된 차에 막혀 견인차가 끌어내기도 했다. 구조대원들은 긴급히 에어매트를 설치하고 소방호스를 연결하고는 불길에 다가갔다.
한 여성은 주변 사람들을 붙잡고 건물을 가리키며 “살려 주세요”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화재 현장에서 뿜어져 나오는 시커먼 연기를 지켜보던 시민들은 “저쪽부터 먼저 꺼야 하는데”라고 말하며 안타까워했다. 발을 구르며 흐느끼는 이들도 있었다.
1층에서 시작된 불은 건물 8층에 있는 레스토랑까지 빠르게 번졌다. 근처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김모씨는 “4시30분쯤 가게에 연기가 들어오기에 나가 보니 이미 건물 주변은 검은 연기로 꽉 차있었고 불길도 보였다”며 “건물 7층에서 사람들이 난간으로 나와서 손 흔들고 살려달라 외치고 있었다”고 말했다. 소방대원들도 연기 때문에 구조에 어려움을 겪었다. 외벽에 매달려 있는 사람들조차 연기에 가려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외벽청소 일을 하는 이양섭(52)씨는 현장 가까이 있던 친구에게 연락을 받고 회사 사다리차를 몰고 와 45m 높이의 꼭대기층인 8층의 베란다 난간에 대피해 있던 3명을 구조했다. 이씨가 이들을 구한 시간은 오후 5시쯤이었다. 1시간 가까이 외벽에 아슬아슬하게 매달려 있던 시민들이 유리벽을 닦는 사다리차로 구출되자 시민들은 박수를 보냈다.
이씨는 “멀리서 연기를 보고 큰불이라고 생각해 서둘러 왔다”며 “연기 속에서 감으로 사다리를 붙였고, 사람들이 탑승한 것을 확인하고 내려 사다리가 4층쯤 내려왔을 때 새까맣게 된 얼굴 3명을 확인하고서야 다리에 힘이 쭉 빠졌다”고 말했다. 현장을 목격한 이들은 “불길이 너무 빨리 옮겨 붙어 사다리차가 없었으면 다 죽을 뻔했다”며 “이씨도 얼굴이 새까맣게 됐다”고 전했다.
가까스로 건물을 빠져나온 이들은 온몸이 시커멓게 그을려 있었다. “아직 가족이 안에 있다”며 비명을 질렀다. 구조대의 사다리차는 연기 때문에 자리를 잡지 못하고 사다리도 제대로 뻗지 못해 지켜보는 시민들을 안타깝게 했다.
이 건물 2층에는 여성 사우나실이 있었다. 대다수의 사망자가 발생한 곳이다. 1층에서 강한 불길이 치솟으면서 2층에 있던 이들은 탈출할 기회를 놓친 것으로 보인다. 오히려 그보다 위층에 있던 사람들은 옥상이나 비상구를 통해 탈출할 수 있었다. 화재 당시 건물 4층 헬스장에서 운동을 하다가 탈출한 시민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남성분들끼리만 내려온 게 보이고, 여성분들은 내려온 걸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는 “4층에서 운동을 하고 있었는데 바깥쪽에서부터 연기가 들어오고 화재경보벨이 울렸다”며 “3층이 남성 사우나고 2층은 여성 사우나라서 바로 3층으로 갔는데 거기에서 안내를 받아 1층까지 비상구를 통해서 바로 내려왔다”고 전했다. 119구조대가 설치한 에어매트로 뛰어내려 목숨을 건진 사람들도 있었다.
평소 해당 건물의 헬스장을 자주 이용해왔던 김병학씨도 이번 화재를 목격했다. 김씨는 “이 건물은 1층이 주차장, 2∼3층은 목욕탕이라 아래쪽에서 불이 나면 그쪽으로 탈출할 여건이 안 된다”며 “목욕탕을 이용할 때마다 그런 부분이 항상 불안했다”고 말했다. 두손 스포리움은 1층이 기둥뿐인 필로티 구조였다.
사우나와 헬스클럽, 식당이 입주해 있는 이 건물은 화재 당시 얼마나 많은 사람이 있었는지 추정조차 어려운 상황이다. 화재를 진압한 구조대원들이 건물 안에서 잔해를 들출 때마다 사망자와 부상자 숫자가 늘어났다.
건물 주변에는 수십명의 사람들이 가족을 찾지 못해 자리를 떠나지 못하고 있었다. 한 남성은 “어머니가 연락이 안 닿는데 이곳에 자주 오셨다”며 울먹였다. 제천소방서 관계자는 “시간이 갈수록 사망자가 늘어날 것 같다”며 고개를 저었다.
제천=허경구 기자 nin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