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콩 회항' 사건으로 기소된 조현아(43·여) 전 대한항공 부사장에게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이 확정됐다. 2015년 6월 대법원에 상고된 지 2년6개월여 만이다. 대법원은 쟁점이 됐던 ‘지상 회항’에 대해 항로 변경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봤다. 지상에서 17m를 운항한 뒤 항공기를 탑승 게이트로 되돌린 혐의(항공보안법상 항로변경죄)는 무죄로 판단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21일 항공보안법 위반 및 업무방해 등의 혐의로 기소된 조 전 부사장의 상고심에서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재판부는 "행위를 처벌하려면 법에서 범죄로 규정하고 있어야 하나 항공보안법상 항로가 무엇인지 어디에도 규정돼 있지 않다"며 "항공기가 지상에서 이동하는 경로는 항로에 포함된다고 해석하기 어렵다는 것이 대법원 다수 의견"이라고 밝혔다.
이어 "항로는 하늘길이라는 뜻이며 국립국어원에 따르면 항공기가 통행하는 ‘공로(空路)'라고 규정하고 있다. 지상에서 다니는 길을 가리켜 항로로 사용되는 예는 확인되지 않아 항공보안법상 항로가 지상에서의 이동 경로를 포함하는 것으로 사용됐다고 보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또 "항공기가 운항 중이라는 이유로 지상에서 다니는 길까지 항로로 해석하는 것은 죄형법정주의 원칙에 어긋난다"며 "지상에서의 이동을 함부로 변경한 것은 기장에 대한 업무방해죄로 처벌할 수 있어 처벌 공백이 생기는 것도 아니다"라고 판단했다.
조 전 부사장은 지난 2014년 12월5일 미국 뉴욕 JFK국제공항발 인천행 대한항공 항공기 1등석에 탑승해 기내 서비스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며 화를 내다가 항공기를 강제로 되돌린 혐의로 기소됐다. 당시 항공기는 이륙을 위해 게이트를 떠나 이동 중이었으나 조 전 부사장 지시로 되돌아갔고 이로 인해 출발이 24분가량 지연됐다.
이 과정에서 조 전 부사장은 박창진 사무장과 여승무원 김모씨에게 폭언과 폭력을 행사해 이륙 점검 업무 및 승객 서비스를 방해하고 박 사무장을 비행기에서 강제로 내리게 한 혐의도 받았다.
이번 사건의 쟁점은 당시 지상에서 운항 중이던 항공기를 탑승 게이트로 돌아가게 한 것이 항공보안법상 항로 변경에 해당하는 지 여부였다. 항공보안법 42조는 '위계나 위력으로 운항 중인 항공기의 항로를 변경하게 해 정상 운항을 방해한 사람을 1년 이상 1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1심은 조 전 부사장이 지상에서 항공기를 돌려 출발점으로 돌아가게 한 17m의 거리를 항로로 인정하고 항공보안법 위반 혐의와 업무방해·강요 혐의를 유죄로 판단, 징역 1년의 실형을 선고했다.
반면 2심은 항로는 항공기가 다니는 하늘 길이고 지상인 계류장 내에서의 이동은 항로로 볼 수 없다며 1심을 뒤집고 항로 변경죄를 무죄로 판단해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조 전 부사장의 항공기 내 업무방해와 강요 혐의는 1심과 같이 유죄로 인정했다.
태원준 기자 wjt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