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에 문 열어주는 ‘훈련 연기’… 文의 카드 통할까

입력 2017-12-21 07:40

문재인 대통령이 퇴로 확보가 어려운 대북 ‘베팅’을 이어가고 있다. 문 대통령은 19일 미국 NBC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내년 평창 동계올림픽 기간 한·미 연합 군사훈련을 연기하자는 방안을 미국에 제안했다고 밝혔다.

북한이 그때까지 추가 도발을 하지 않는 전제조건을 달았지만 북한이 도발을 멈출지 현재로선 불투명하다. 이런 상황에서 문 대통령은 먼저 한·미 연합 군사훈련 연기를 카드로 꺼내들었다. 문 대통령은 지난 8월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선 북한 도발의 ‘레드라인’을 언급했다가 불필요한 발언이었다는 지적이 제기됐었다.

문 대통령은 특히 이번에는 미국 정부와 공식 합의가 되지 않은 시기에 훈련 연기 제안 사실을 공개했다. 청와대는 “북한에 보내는 시그널”이라고 설명했지만 한반도 안보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성급한 결정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문 대통령의 한·미 연합 군사훈련 연기 제안은 앞으로 3개월이 남북 및 북·미 관계 전환의 ‘결정적 시기’가 될 것이라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문 대통령은 지난 14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의 정상회담에서도 한반도 정세를 논의하면서 앞으로 3개월이 분수령이 될 것이라는 데 뜻을 같이했다. 한·미 연합 군사훈련 연기를 먼저 미국에 제안한 것은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과 한·미 연합 군사훈련의 동시 중단을 요구하는 중국의 ‘쌍중단(雙中斷)’ 해법과 궤를 같이한다는 분석도 있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최근 한 학술회의에서 문 대통령과 시 주석이 중국식 북핵 해법인 ‘쌍중단·쌍궤병행’에 인식을 같이하는 수준이라고 소개한 바 있다. 평창올림픽을 계기로 한시적인 쌍중단 실험에 나선 것으로도 해석된다.

청와대는 문 대통령의 제안이 북한의 도발 중단을 전제로 한 것이란 점을 분명히 했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20일 “한·미 연합 군사훈련 연기는 북한의 도발 여부가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며 “북한이 도발할 경우 다시 국제 여론이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제재가 뒤따를 수 있다. 그러면 한·미 연합 군사훈련 연기 문제도 영향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이 도발을 강행할 경우 백지화될 수 있다는 취지다.

청와대 관계자는 “우리가 이렇게 준비하고 있다는 내용을 북한에 설명하고, 평창올림픽을 한반도 평화를 정착시킬 수 있는 하나의 계기로 삼고 싶다는 의지”라며 “북한에 대한 사인”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북한이 호응하지 않을 경우 한반도 안보 위기를 고조시킬 수 있다는 우려도 적지 않다.

북한은 평창올림픽 개막식 직전까지 참가 여부를 밝히지 않고 시간을 끌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 관계자는 “마지막까지 우리 애를 태우면서 자신들 몸값을 올릴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일단 북한의 평창올림픽 참가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다. 정부는 북한이 동계스포츠용 장비를 지속적으로 구매해 온 흔적을 포착한 것으로 전해졌다. 북한 국가체육지도위원장이 최룡해 노동당 조직지도부장에서 최휘 당 중앙위 부위원장으로 교체된 것 역시 평창올림픽 참가 준비 작업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홍민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은 “최 부장이 최근 북한 체제의 ‘2인자’ 지위를 확고히 했기 때문에 평창올림픽 업무를 맡기에는 격이 맞지 않는다. 실무 준비를 위해 격을 맞췄을 개연성이 있다”고 말했다.

강준구 조성은 기자 eyes@kmib.co.kr